[글로벌 오피니언리더] 교황 첫 회고록 "나도 아름다운 여인에 흔들린 적 있어"

"신학생 시절 삼촌 결혼식에서 만난 한 여인에게 매료됐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영리해서 머리가 핑 돌 정도였죠. 일주일 동안 그 여인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기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근 즉위 11주년을 맞은 프란치스코(사진) 교황의 내밀한 고백입니다. 교황이 여인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은 남미 최초의 교황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회고록 '인생: 역사를 통해 본 나의 이야기'가 곧 출간됩니다. 올해 87세인 교황은 이 책에서 이탈리아 언론인 파비오 마르케스 라고나와 인터뷰 형식으로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최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일부를 발췌해 보도한 데 이어 AFP 통신도 16일(현지시간) 교황의 첫 회고록에 담긴 내용을 미리 공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책에는 교황이 한 여인 때문에 사제의 꿈을 접을 뻔했던 일화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축구광이었던 그의 축구 사랑을 보여주는 세세한 에피소드가 기록돼 있습니다.

교황은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고국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끈 디에고 마라도나에 대해서는 한 장(章) 전체를 할애했습니다. 마라도나는 당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손으로 결승골을 넣으면서 '신의 손'이라는 유명한 별명이 붙었습니다. 교황은 "몇 년 전 바티칸에서 교황으로서 마라도나의 알현을 받았을 때 농담 삼아 그에게 '어느 쪽이 죄지은 손이냐'고 물었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군사독재 시절인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군사독재 종식 뒤 일부에선 그가 정권의 인권 유린을 묵인하는 등 군사정권의 협조자였다고 주장했지만, 교황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아울러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뒤를 이어 스스로 물러나길 원하는 비판자들이 적지 않지만, 자신은 건강하다며 자진 사임은 "먼 가능성"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최악의 모욕에는 귀를 막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나에 대해 말하고 쓰인 모든 것을 들여다본다면 매주 심리학자의 상담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교황은 회고록에 대해 "특히 젊은이들이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유익함을 얻을 수 있도록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고 기대했습니다. 회고록은 다음 주에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