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는 인구절벽 해소 도구가 아니다’라는 이주민들의 외침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날’(3월21일)을 나흘 앞둔 17일 국내 이주노동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자신들이 겪은 다양한 차별 사례와 한국 정부의 모순적인 행태를 증언했다. 열악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단체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고용주들이 숙식비로 매달 40만원을 떼가는 것은 약과다. 건설공사 현장에서는 하루 일당 15만원 가운데 7만원을 소개료로 뜯기는 이주민 노동자들이 있다. 사업주는 툭하면 임금을 체불하고, 법무부는 체류 기간을 넘긴 이주민을 무조건 범법자로 간주한다.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40만명을 쫓아내겠다면서 앞으로 매년 16만명씩 새로 데려오겠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면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한국 사회에 이주민은 전체 인구의 5% 수준인 250만명이다. 이주민의 상당수는 내국인이 꺼리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것도 저임금에 장시간, 사업장 변경 자유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 이주민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제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정부와 공공기관이 앞장서 불법과 착취를 조장하고 있다. 지난 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가사·돌봄 서비스를 해줄 이주노동자를 늘리되,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더 낮게 차등 적용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외국인에 임금 차별을 두어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인다는 발상은 국제 협약과 기준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내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에 위배된다. 재정 확충을 위해 해외 유학생들을 다수 유치한 한신대는 지난해 통장 잔고증명 유지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22명을 강제로 출국시켰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한다는 말이 있다. 부끄럽게도 지금 한국은 과거 강대국에 받았던 차별을 약소국 출신 이주민에게 고스란히 전가하고 있다.
이주민들은 한국 사회가 자신들을 인구절벽 해소의 ‘도구’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뼈아픈 지적이다. 이주민 노동력 착취가 인구절벽, 노동력 부족, 지역소멸의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이주민도 한국인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모든 분야에서 이주민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주민이 살기 힘든 사회는 내국인도 살기 힘들다. 이주민이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정의로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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