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진짜 이유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다큐멘터리상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마을이 초토화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 ‘노 아더 랜드’에 돌아갔다. 시상대에 오른 공동연출자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실 아드라와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유발 아브라함은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언급하며, 독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일 정치권은 이를 크게 문제 삼았다.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은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고통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하마스에 있다”며 “(감독들이) 용납할 수 없는 상대화를 저질렀다”고 비난했고, 자유민주당의 한 정치인은 베를린영화제 국고 지원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들 발언에 박수를 쳤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클라우디아 로트 독일 문화부 장관은 자신은 팔레스타인인 아드라가 아닌 이스라엘인인 아브라함에게 박수를 쳤다고 해명했다. 이따금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우려’를 표하는 자유주의자조차,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반발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즉각 해명해야 하는 상황은 독일의 현 지형을 잘 드러내 준다.
독일의 기준대로라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부 장관도 반유대주의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최근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인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진 다음에야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를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아미 아얄론 전 신베트(이스라엘 정보기관) 국장도 반유대주의자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지지는 이스라엘 내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에서 “애국주의 세력과 유대인 우월주의 세력 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불행하게도 독일은 이 투쟁에 중립적이지 않다. 독일의 의도가 무엇이든, 독일의 입장은 유대인 우월주의 세력에 확실한 힘을 실어준다.
한 예를 들어 보자. 몇년 전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의 한 학교에서 랍비들이 학생들에게 ‘유대인 학살을 제외하면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옳았다’라며, 다행스럽게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나치즘을 행하고 있다고 가르친 게 알려져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런 극단적 입장은 이스라엘에서도 소수만이 명시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지만,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행하는 ‘국가폭력’의 기본 전제를 잘 드러낸다.(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이 사건 이후에도 이 학교를 방문해 연설했다.)
철학자 세일라 벤하비브가 주장하듯, 현재 이스라엘 정부를 이루고 있는 이들은 유대 파시즘의 유산을 직접 계승한 인물들이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우익 세력은 조직, 방법론, 정치 철학, 사회적 호소력 측면에서 나치 및 파시스트 정당과 유사한 해방당(헤루트)을 창당했는데, 이들의 후예가 바로 지금 이스라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우파 정당 리쿠드이다.
유대인이 우월하다는 이들 세력의 믿음은 나치즘과 직접적인 연속선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독일이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심층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영국 정치 평론가 오언 존스는 거꾸로 된 형태의 나치즘을 계속 이어나가는 독일을 거부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반팔레스타인적인 인종주의를 승인하고 있으며, 심지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유대인들까지도 반유대주의자로 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윽박지르며 좋은 유대인과 나쁜 유대인을 구분 짓던 장면이 떠오른다. 독일은 나치즘과 역사적으로 연결된 이스라엘의 어두운 세력을 전폭 지원하며, 지금도 계속해서 유대인들을 모욕하고 처벌한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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