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PF 옥석 가리기'에···황금알 부지도 자금조달 비상
브리지론 금리 최대 12% 달해
착공 준비 마친 오피스 부지도
투자자 못구해 끝내 사업 접어
금융권, 대출 보수적으로 승인
건설업계 자금난 더 심화 우려
강남구 역삼동에 오피스텔 사업을 계획했던 A 시행사는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자 시장 상황 변화에 맞춰 개발 방향을 오피스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며 기존 브리지론 대주단과 마찰까지 빚었다. A 시행사가 15곳의 채권자로 이뤄진 대주단에서 조달한 브리지론 금리는 7%에서 최대 12%에 달한다. 한 달 이자만도 12억 원이 넘는다. 부동산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행사가 일부 출자 전환을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면 충분히 정상화할 수 있지만 진행 중인 다른 사업장이 많아 출자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며 “강남 오피스 물건 자체는 비교적 안정적 시장인 만큼 공매 과정에서 부지 가격이 내려가면 자산운용사 등의 부지 매입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감플러스(신사역역세권복합개발PFV)가 시행하는 신사역 3번 출구 인근 2976㎡ 규모 토지도 최근 공개 매각을 진행했다. 시행사가 2021년 토지 매입을 위해 조달한 브리지론 만기가 가까워지면서 사업을 이어가는 대신 자금 회수를 선택한 것이다. 이곳 역시 2022년 이후 당초 오피스텔로 계획했던 일부 부지를 오피스로 변경해 인허가를 받았다.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인허가를 받아 오피스 등 업무시설을 최대 바닥 면적 3000㎡까지 지을 수 있다. 2023년 4월 강남구청으로부터 조건부 심의 의결을 받으면서 착공 준비를 마쳤으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사업이 좌초됐다. 그 사이 브리지론도 네 차례나 만기를 연장하면서 사업성도 크게 악화했다.
우량 투자처로 손꼽히던 강남권 오피스 개발사업마저 잇따라 좌초하는 것은 금융권이 PF 대출 부실 우려에 충당금을 적립하는 대신 공매를 통해 사업장을 정리하는 것이 연체율 관리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주요 개발사업들의 사업성이 인건비와 자재 값 인상으로 인한 공사비 상승으로 급속도로 악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 매입한 높은 땅값도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강남권 오피스 사업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내몰린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며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이 겹치면서 금융권이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부지도 손절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금융권이 보수적으로 PF 대출을 승인하면서 자금난에 허덕이던 사업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개발사업에 돈줄을 대는 금융사들의 연체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높은 이자를 노리고 손실 가능성이 큰 중·후순위에 주로 투자한 증권과 캐피털,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캐피털사들의 부동산 PF 연체 잔액은 1조 1000억 원에 달했다. 증권(8730억 원)과 저축은행(5000억 원)도 PF 연체 잔액이 많다.
개발 업계의 자금난은 금융감독원이 최근 저축은행중앙회 등을 통해 부동산 PF 대출에 대한 회수 예상가액을 다시 평가해 충당금을 더 적립하거나 부실 사업장 정리를 신속하게 하도록 요청한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산운용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충당금 적립 대신 경·공매를 통한 자금 회수가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면서 “특히 착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브리지론만 여러 번 연장돼 사업성이 악화한 곳들이 1순위”라고 전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강남·용산권역의 오피스 개발사업마저 PF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만큼 앞으로 건설 업계의 자금난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강남권 오피스의 공실률은 현재 사실상 0%에 가까운 상황이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회사 CBRE에 따르면 강남권 오피스 시장의 지난해 4분기 공실률은 0.7%에 불과하다. 실질임대료 역시 전년 대비 15% 오른 ㎡당 월 3만 5882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하고 있다.
실물 자산의 거래 가격도 부동산 경기가 꺾인 상황에서도 나 홀로 상승세다. 지난해 거래된 삼성동 위워크 빌딩은 직전 거래(2020년, 780억 원) 대비 22% 오른 950억 원에 팔렸다. 역삼동 케이지 타워 역시 2018년 946억 원에서 2023년 1236억 원으로 31% 상승한 채 손바뀜이 이뤄졌다.
부동산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공사 원가가 올라 이미 개발사업의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PF 자금줄까지 말라버리면 향후 부동산 공급이 회복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신미진 기자 mjsh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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