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정의 와인클럽] 콜라 건배하는 트럼프, 와이너리 사들여 왜 잡초만 키웠나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4. 3. 1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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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 여왕의 대저택 "이젠 내 거야" 와이너리 호텔로 개조해 대박

◆ 매경 포커스 ◆

"첫 홀에서 티샷을 네 번 하고, OB를 낸 공을 속칭 '알까기'로 페어웨이에 슬쩍 놓아둡니다."

2016년 국내에 재출간된 '거래의 기술'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맨얼굴'을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트럼프 골프장의 캐디들은 트럼프를 '펠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축구 황제 펠레를 의미합니다. 골프장에서 골프공을 발로 하도 많이 차고 다녀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를 '막장 골프'나 치는 허풍쟁이 사업가 또는 '막말'을 일삼는 독설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앞서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상태입니다. 미국 유권자는 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일까요? 트럼프는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요? 트럼프가 망가진 와이너리를 인수하는 과정을 통해 그가 얼마나 주도면밀하며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인지 살펴봅니다.

2017년 한미정상회담 만찬주로 한국 전통주 풍정사계가 선정됐다. 술을 마시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술 대신 콜라를 마셨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내가 도박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도박이라곤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슬롯머신을 즐기기보다는 아예 소유하는 것을 좋아한다."(도널드 트럼프, '거래의 기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도박은 물론 음주도 하지 않습니다. 2017년 한미정상회담 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만찬주로 한국 전통주 풍정사계(楓井四季)의 '춘(春)'을 내놓았습니다. 트럼프는 와인잔에 콜라를 채워 마셨다고 합니다. 트럼프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그의 형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형 프레드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1981년 43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프레드는 잘생기고 성격도 좋았지만 항상 취해 있었다고 트럼프는 회상합니다. 그런 형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트럼프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럼프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미 버지니아주 트럼프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트럼프 와인.

버지니아주 트럼프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트럼프 와인은 2019년 한국에도 수입돼 롯데백화점 등에서 판매됐습니다. 트럼프 와인 중에는 스파클링 와인과 비오니에로 만든 화이트 와인 등이 유명합니다. 레드와인으로는 메를로를 중심으로 한 보르도 스타일 와인이 생산됩니다. 지금은 트럼프의 아들 에릭이 트럼프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와이너리를 인수한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여기에 1980년대 미국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한 퍼트리샤 클루기가 등장합니다.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타운 앤드 컨트리' 등 미국 언론이 조명한 퍼트리샤 클루기의 스토리입니다.

1989년 메트로미디어의 창업자이자 방송 재벌인 존 클루기는 순자산 52억달러로 미국 최고 부자에 오릅니다. 포브스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구두쇠 억만장자'라고 소개합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레스토랑에 코트를 맡길 때 주는 팁이 아까워 모자와 코트를 차에 벗어 놓고 내리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구두쇠' 존 클루기가 한 저녁 파티에서 밸리댄스를 추는 33세 퍼트리샤에게 반해 1981년 결혼합니다. 당시 그는 67세로 세 번째 결혼이었습니다. 퍼트리샤는 재혼이었습니다.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0년 퍼트리샤와 존은 이혼합니다. 당시 퍼트리샤가 받은 이혼 합의금이 1억달러로 알려지며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게 됩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혼 합의금은 2500만달러였고, 퍼트리샤가 죽을 때까지 매년 100만달러를 받는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버지니아주 앨버말 저택(Albemarle House)도 퍼트리샤 소유가 됩니다. 앨버말 저택은 존과 퍼트리샤의 신혼집으로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의 후원 행사도 1989년 앨버말 저택에서 열렸습니다.

퍼트리샤는 세 번째 결혼을 IBM 전 부사장과 합니다. 퍼트리샤의 꿈은 버지니아에서 세계적인 와인을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와이너리 사업에 투자합니다. 클루기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 '클루기 SP 로제'는 프랑스에서 골드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런 자신감이 결국 화를 부르게 됩니다.

담보대출을 받아 포도밭 주위에 23채의 럭셔리 주택을 개발하는 사업도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업 시기가 최악이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퍼트리샤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걸 알게 됩니다. 클루기 와이너리에서 매달 50만달러 적자가 발생했고 사업은 유동성 위기에 몰리기 시작합니다. 퍼트리샤는 2009년 앨버말 하우스를 1억달러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계속 안 좋아졌고,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퍼트리샤의 오랜 친구인 트럼프였습니다. 자금난에 빠진 퍼트리샤는 도움을 요청하러 트럼프의 사무실을 찾습니다. 트럼프는 부동산 전문가로서 본능을 발휘합니다.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가 2008년 평가한 클루기 와이너리 가치는 7500만달러였습니다. 트럼프는 평가액의 약 10분의 1 가격에 포도밭과 양조장비를 인수합니다. 그러고는 잡초가 수북하게 자라도록 놔둡니다. 왜냐하면 '거래의 신' 트럼프가 인수하고 싶었던 건 와이너리 가운데 위치한 앨버말 저택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트럼프 와이너리의 앨버말 저택. 지금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 저택을 매입하기 위해 주위의 땅을 먼저 사들이는 방식을 사용했다. 트럼프 와이너리 홈페이지 캡처

퍼트리샤가 빚을 갚지 못하자 채권자인 은행은 앨버말 저택을 2011년 압류해 경매에 내놓습니다. 하지만 은행의 매각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는데, 그 배경에는 트럼프의 치밀한 매입 전략이 숨어 있었습니다.

트럼프는 앨버말 저택과 붙어 있는 앞뒤 땅과 도로를 포함해 토지 200에이커를 50만달러에 조용히 매입합니다. 사실 이 땅은 존이 자신의 아들 앞으로 넘겨준 것이었습니다. 주변 땅이 없으면 앨버말 저택은 마당도 없고 접근도 쉽지 않아 매각이 어렵습니다. 퍼트리샤가 저택을 함부로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존이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인데, 트럼프가 이를 알고 재빠르게 주위 땅을 먼저 매입한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앨버말 저택은 잡초에 둘러싸인 채 거의 '맹지'처럼 변합니다. 트럼프는 앨버말 저택 주위에 '무단 침입 금지'라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 놓습니다. 또 경비원을 고용해 은행 측 부동산 중개인이 앨버말 저택의 잠재적 구매자와 방문할 때마다 막아서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은행은 앨버말 저택을 팔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지만 트럼프 땅에 둘러싸인 앨버말 저택을 사겠다는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은행 측은 매각을 방해하는 트럼프를 향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 판결도 받았지만 지치기 시작합니다.

이때 트럼프가 '짜잔' 하고 나타납니다. 그러고는 터무니없이 낮은 매입 가격을 제시합니다. 은행은 기가 막혀 하며 매각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은행은 부실 부동산을 오래 들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은행은 부동산이 주업이 아니기 때문에 부실 부동산은 가격을 대폭 낮춰서라도 털어내야 합니다.

결국 트럼프는 2012년 앨버말 저택을 670만달러(약 87억원)에 은행으로부터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매각 희망가 1억달러(약 1300억원)의 15분의 1 수준에 인수한 것입니다. 트럼프는 2015년 앨버말 저택을 리모델링해 호텔로 전환합니다. 하룻밤 투숙료는 당시 여름 기준 399달러인데 와이너리를 끼고 있는 호텔이라 지금도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클루기 와이너리는 트럼프 와이너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클루기 와이너리를 인수하는 과정을 보면 그를 왜 '거래의 신'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특히 위기 때 망가진 부동산 물건을 고쳐 가치를 올리는 소위 픽서어퍼(Fixer-upper) 능력이 뛰어난 사업가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망가진 부동산을 살려낸 것처럼 미국도 위기에서 구해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선거 구호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입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어떤 곳을 선점해 놓고 잡초를 자라게 놔두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구독'을 누르면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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