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빛없이 머무는 이들 [6411의 목소리]
김용희 | 하늘샘 지역아동센터장
나는 인구 4만명 남짓한 폐광지역 군 소재지 지역아동센터에서 17년째 일하고 있다. 센터를 이용하는 35명의 아이는 읍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5개 학교와 집에서 센터 차량으로 등하원을 한다. 학기 중에는 학교가 마친 뒤부터, 방학 때는 아침부터 아이들을 돌보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방학 때는 아침 9시에 문을 열지만 늦어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아이들 몇 명은 이미 40~50분 전부터 센터 앞이나 복도에서 서성인다. 일찍 일 나가는 부모들이 서둘러 다녀가서다.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난방을 가동한다. 9시가 되면 대학생인 근로장학생과 조리사,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출근한다. 센터에서는 모두 7명이 일한다. 많아 보이지만 사회복지사 3명을 제외하면 모두 2시간, 3시간, 5시간, 7시간씩 일하는 시간제 근무자들이다. 차량 운전을 하는 선생님은 오후 3시에 출근해 3시간 근무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노동 유연화는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아침 시간, 근로장학생이 아이들을 보살피는 동안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그날 프로그램에 대해 상의하고 전날 했던 프로그램 일지를 쓴다. 아이들은 레고나 할리갈리 게임, 그림 그리기를 하다가 11시 무렵부터 한자와 영어 공부를 한다. 점심은 12시부터다. 대개 아침을 먹지 않은 아이들이라 넉넉하게 준비한다. 급식관리지원센터에서 제공해 준 식단표에 사과나 귤 같은 제철 과일을 곁들인다.
오후 1시, 학습지도 전담 교사, 특수목적 교사들이 출근한다. 장애아동이나 느린 학습자들을 집중적으로 보살피는 특수목적 교사는 하루 2시간 근무한다. 해마다 예산이 줄어 근무시간도 4시간에서 3시간, 2.5시간, 2시간으로 짧아졌다. 운전 선생님은 오후 3시에 출근해 차로 왕복 1시간 이상 거리에 사는 아이의 귀가를 위해 차량 운행을 시작한다. 9인승 승합차 1대뿐이라 이 차가 돌아온 뒤 저녁 식사를 마친 다른 아이들 귀가가 시작된다. 차량 운행을 마치면 정각 오후 6시. 운전 선생님은 꼬박 3시간 동안 일하다 퇴근한다.
40평 남짓한 센터 안에 아이들이 종일 북적거리며 머무는 동안 사회복지사들은 아이들을 돌보고, 프로그램일지, 상담일지를 작성한다. 아이들은 수시로 달려와 문제를 호소한다. 재미있게 놀다가도 툭하면 다툼이 벌어진다. 별것 아닌 다툼도 소홀히 하면 큰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려면 모든 선생님이 종일 센터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느린 학습자들을 보살피는 특수목적 선생님은 아이들 활동을 지켜본 후 교육을 해야겠지만 하루 2시간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은 숨 고르기에도 부족하다. 학습 전담 교사도 마찬가지다. 하루 5시간을 가르치려면 연구하고 준비하는 데만 3시간 이상이 필요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아이들 앞에 앉아야 한다. 패스트푸드나 패스트패션처럼 아이들마저 패스트 케어의 대상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들도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스스로의 존엄을 키우며 성장하려면 ‘적절한 돌봄’이 요구되는데 현실은 여의치 않다.
오후 3시부터 2시간, 3시간, 5시간씩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차례로 퇴근한다. 최저시급을 받고 짧은 시간 일하는 선생님들 급여는 노동에 대한 적정한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이 든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는 매일 하는 학습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독서 프로그램과 방송 댄스뿐이다. 요리나 영화관람, 1박2일 캠프라도 데려가고 싶지만 꿈일 뿐이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는 날에는 선생님들이 가진 재능을 살려 놀이활동이나 미술활동을 한다. 저출산으로 국가 소멸을 염려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품어줄 지역아동센터의 현실은 늘 빠듯하다.
아이들이 귀가한 6시부터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관찰일지와 상담일지, 운영일지를 작성한다. 아이들의 성장을 관찰하고 보살피는 데 꼭 필요한 일이지만 7시를 넘기기 일쑤다. 중학생들이 영어를 하는 날은 8시까지 이어진다.
‘래디컬 헬프’를 쓴 힐러리 코텀은 ‘돌봄은 인간적인 연결, 우리 모두의 발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안녕과 존엄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돌봄은 선의를 가진 사람의 일방적인 보살핌이 아니다.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 더 건강하다. 그렇게 될 때 지역아동센터는 가장자리 환하게 밝히는 봄맞이꽃처럼 따뜻한 공간이 될 터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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