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판 또 연기…지연 전술 먹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판 일정이 또 연기됐다. 4개 사건으로 기소돼 선거운동에 제약을 받고 당선 전망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돼온 그의 재판 지연 전략이 잇따라 먹히는 양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건을 맡은 뉴욕 맨해튼지법의 후안 머천 판사는 첫 공판기일을 일단 다음달 중순 이후로 연기한다고 15일 밝혔다. 성관계 입막음 돈 전달과 관련돼 기업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공판기일은 원래 이달 25일로 예정돼 있었다.
재판 일정 연기는 최근 제출된 10만쪽에 이르는 사건 관련 자료 때문이다. 이는 2018년 뉴욕 남부연방지검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사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을 수사할 때 생산한 것이다. 코언은 2016년 대선 직전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성관계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포르노 배우에게 13만달러(약 1억7천만원)를 준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업에서 변제를 받았고, 이와 관련해 처벌을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은 이런 자료가 뒤늦게 제출돼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공판기일 90일 연기를 요구했고, 맨해튼지검은 30일 연기를 제안했다. 머천 판사는 “이 법원이 풀어야 할 중요한 질문들이 있다”며, 왜 10만쪽에 이르는 자료가 늦게 제출됐는지도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판기일 지정이 뒤로 더 밀릴 가능성도 열어놨다.
맨해튼지법 사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사건들 중 가장 먼저 공판기일이 잡혀 있었고,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재판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돼왔다. 머천 판사는 재판에 매달리면 선거운동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공판기일을 미뤄달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사들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워싱턴 연방지법에 기소된 대선 결과 번복 시도 사건의 공판기일도 연기된 상황이다. 그가 기소된 사건들 중 내용이 가장 심각한 이 사건 첫 공판기일은 애초 이달 4일로 가장 먼저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 재임 중 행위는 모두 면책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신청 사건을 제기하면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 연방대법원이 이를 심리하겠다고 나서면서 본안 재판 재개가 계속 미뤄지게 됐다. 연방대법원은 구두변론 기일을 다음달 25일로 지정했다. 뉴욕타임스는 구두변론을 거쳐 신청이 기각되더라도 본안 사건 공판기일은 9월에야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대선일(11월5일) 전에 배심원단 판단이 나올 수 있을지를 두고 회의적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또 조지아주 대선 결과 조작 시도 사건은 검사장이 수사를 위해 채용한 특별검사와 혼외 관계를 맺은 게 드러나 차질이 빚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 쪽이 수사의 공정성을 문제삼자, 이 사건을 맡은 스콧 매커피 판사는 15일 ‘연인 관계’인 페니 윌리스 풀턴 카운티 검사장과 네이선 웨이드 특검 중 한 명이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웨이드 특검이 사임을 발표해 재판은 계속 진행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미 웨이드 특검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그의 아내가 한 폭로가 촉발한 공정성 시비로 유죄 입증 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법원이 혼외 관계 논란을 다루면서 시간이 상당히 소비됐다.
나머지 한 사건은 플로리다주 연방지법이 맡은 기밀 무단 반출 사건으로, 법원은 공판기일에 대한 윤곽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종합적으로 보면, 연초만 해도 트럼프 전 대통의 백악관 재입성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는 악재가 될 수 있다던 사건들이 하나둘씩 재판 진행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오는 것을 대선 뒤로 미뤄 형사사건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공소 취소 등으로 책임을 면하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도가 상당히 먹히는 셈이다. 여러 법원의 재판에 중복해서 이름을 올려놓은 그의 변호인들은 멀리 떨어진 법원들을 오가며 재판에 참여하기 어렵다며 진행을 늦춰달라고 요구하는 ‘전술’도 쓰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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