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 전쟁》, 전투 장면 ‘압도적’ 궁중암투는 엉뚱해
고려 초로 대하사극 지평 넓혀…‘과잉 상상력’은 유감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KBS 창립 50주년 기념 《고려 거란 전쟁》은 오랜만의 대하사극이고 고려 초 배경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한동안 사극이 드물었고, 또 사극이 방영됐다 해도 퓨전사극인 경우가 많았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이나, 거슬러 올라가도 고려 후기 정도였다. 그러니 고려 초 배경의 정통 대하사극 등장은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작품이 끝난 지금, 비난이 가득하다. 왜 이런 공분이 터진 걸까.
귀주대첩 장면, 잘 나가다 허무해져
기획 자체는 너무 좋았다. 《고려 거란 전쟁》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매우 보기 드문, 놀라운 전쟁이었다. 근대 이전엔 유목민족의 기마병이 절대적으로 강했다. 유목민족이 통일해 유목제국을 이루고 기마대병으로 침공하면 농업국가는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했다. 싸워도 성벽이나 지형에 의지해 방어전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려 거란 전쟁》에선 고려가 거란의 정예 기마대병에 맞서 최소한 두 번에 달하는 대회전을 펼쳤다. 그리고 마지막 대회전인 귀주대첩에서 상대를 거의 전멸시키는 기적 같은 전과를 올렸다. 이걸 재현한다고 하니 기대가 대단히 커졌다. 그럴수록 시청자 눈높이가 높아졌다.
초반에 너무 성공적이어서 안 그래도 컸던 기대가 더 커지기도 했다. 오프닝이 귀주대첩 맛보기였는데,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이 압도적이었다. 우리 사극은 전투 장면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주로 장수들의 대화로 표현하는, '입 중계' 전투에 그쳐왔다. 군대의 규모도 분대나 소대 단위 정도여서 실소를 자아냈다. 그런데 오프닝의 귀주대첩에선 차원이 다른 대규모 전투 신이 나타났다. 이어진 흥화진 전투 오프닝도 공성 무기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디테일로 '드디어 우리에게도 세계적인 수준의 전쟁 드라마가 생겼다'는 찬사를 받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놀라운 전투 장면은 그 후 실종됐다. 흥화진 수성전은 거의 접전 장면의 묘사 없이 성곽 위 고려 병사들 모습만 보여준 상태에서 끝났고, 통주성 앞에서의 대회전도 묘사되지 않았다. 양규가 기병을 이끌고 영웅적으로 싸우며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드라마 속에선 분대 규모 정도의 보병으로 단출하게 나왔다. 결국 과거 사극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나마 양규 전사 장면이 처절한 전투와 실감 나는 갑옷의 방어력 묘사로 찬사받기는 했지만, 초반의 큰 기대에 비례해 실망이 커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이 실망은 분노가 돼 비난 사태를 낳았다.
더 큰 문제가 그다음에 터졌다. 2차 침입 후 고려는 국력을 모아 거란의 재침에 대비했다. 이때 현종이 왕권을 강화하면서 국가 제도를 정비하고 온 나라를 혁신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선 현종이 강감찬 등과 대립하며 나라가 분열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더니 황후가 질투에 휩싸여 암투를 벌이고 심지어 반란군을 돕는 설정까지 등장했다. 박진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활약하는 모습에도 많은 분량이 할애됐다. 이런 내용이 실제 역사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고려 거란 전쟁》이 아닌 '고려 궐 안 전쟁'이 됐다며, 트럭 시위 등 더 큰 비난 사태가 터졌다.
제작비가 적어 그랬을 거라며 마지막 귀주대첩 장면에 역량을 집중시켰다고 했으니 그걸 기대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그것마저 기대를 배신했다. 알고 보니 드라마 오프닝에 등장한 귀주대첩 장면이 맛보기가 아니었다. 그게 다였다. 치열한 접전까지만 묘사됐는데 갑자기 비가 오고 전쟁이 끝나버렸다. 시청자는 역대급 허탈감에 빠졌고 '우천 콜드승'이냐는 공분이 터졌다.
그 와중에 한 매체가 '실제 전투 촬영분은 훨씬 디테일했는데 총감독과 공동감독 사이의 내분으로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전투 장면이 너무 호평받아 '작품의 공이 넘어갈까 봐 그걸 빼고 후반 외교 장면을 늘렸다'는 주장이다. 제작진은 이 보도가 허위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더 찍은 분량으로 재편집해 확장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귀주대첩 장면이 너무 졸속 마무리됐기 때문에 더 찍은 분량이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논란에 논란이 겹치는 상황이 됐을까. 일단 제작비 탓도 있을 것이다. 누리꾼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전투 묘사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작비의 한계 속에서도 드라마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거란의 2차 침입으로 초기 전쟁 이야기를 끝낸 후부터 드라마는 내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부터 작가가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편 느낌이다. 왕과 신하들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황후는 암투를 벌인다는 설정은 기존 사극에서 매우 익숙했던 구도다. 이런 이야기가 시청률을 올리기 쉽다는 생각에, 그 설정을 《고려 거란 전쟁》에 그대로 대입한 게 아닐까.
문제는 그게 실제 역사와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명색이 정통 사극이고 실제 역사적 사건을 그린다고 천명했다면, 상상할 때 하더라도 실제 역사의 틀 안에서 해야 했다. 엉뚱하게 황후를 질투의 광인으로 만드는 데 분량을 소모하면서 작가의 판타지처럼 흘러갔다.
허무하게 끝난 귀주대첩도 그렇다. 촬영분이 삭제되지 않았다는 제작진 해명이 맞는다면, 고려군이 얼마나 큰 공포 속에서 싸웠고 얼마나 치열하게 분투했는지를 표현하려는 생각이 앞서서, 초기에 수세에 몰리다 김종현의 1만 기병 가세 후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모습까지만 만들게 된 게 아닐까. 실제에 가깝게 묘사했으면 양측이 접전을 벌이던 중 김종현 기병 가세로 거란군이 무너지고 고려군이 추격 섬멸하는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양규'같은 민족영웅 부각한 건 성과
상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려인들은 당시 영웅적인 의지로 전성기 유목제국의 세계 최강 기마대병을 막아냈다. 상상하려면 그런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행간을 그려내야 한다. 같은 제작비로도 양규가 흥화진 군민을 합심시키는 과정 같은 것을 상상해 분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2차 침입 이후에 벌어진 여러 차례의 추가 침입을 이겨내는 고려인의 불굴의 정신도 입 중계 전투신 등을 활용해 어느 정도는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궁중 암투를 그릴 시간에 말이다. 박진 같은 인물을 상상하는 대신 전투에 참여하는 민초의 이야기를 상상해 고려군의 항전 의지를 표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일은 상상할 때 하더라도 역사의 방향성을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이 작품이 비난만 받는 건 부당하다. 오랜만의 대하사극으로 보기 드물게 고려 초를 조명하면서 우리 드라마의 지평을 넓힌 점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양규 같은 민족 영웅을 새롭게 인식시키기도 했다. 전투 신의 묘사도 일정한 성취를 이뤄냈다. 질타만 하는 것보다는, 방송사가 이런 기획을 또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부분을 격려해 주는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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