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 시험한 푸틴의 보복"... 선교사 체포는 흔들기 신호탄[문지방]
푸틴, 대선 80% 득표해야 우크라 전쟁 정당성
5월 취임식, 도네츠크 해방 시나리오 완성 노려
북한과 밀착, 러북 협력 불가역적 제도화 추구
지난해 푸틴의 존칭 표현, 계산적 메시지 가능성
선교사 체포로 한국의 대러 정책 목표 흔들어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V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제8대 대통령선거 로고
러시아가 15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 대선 로고인 'V'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승리(Victory).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이변 없는 승리를 예고하고 있지요. 또한 그의 '다섯(V) 번째 임기'를 연상케 합니다. 5선에 오르면 푸틴 대통령의 다음 임기는 2030년까지입니다. 무려 30년을 군림하는 것이지요. 강산이 바뀌다 못해 한 세대가 바뀌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는 불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푸틴이 노리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닙니다. 전례 없는 '득표율 80%'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론을 총동원하고 있지요. 왜 굳이 80%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건 V의 또 다른 의미 때문입니다. 바로 전승절의 'V'입니다.
5선 앞둔 푸틴 대통령, 5월 돈바스 점령 시나리오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은 5월 7일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전승절은 5월 9일이죠. 5선 임기 시작과 맞물려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개시의 목표인 '도네츠크 해방'까지 이루는 것이 러시아 지도부가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일 것입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1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푸틴 취임식-전승절 기념식-도네츠크 해방으로 연결되는 3박자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것이지요. 2년을 넘어선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의 정당성을 묻는 성격이 대선에 담겨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야 푸틴 5기 정권의 안정적 국정운영과 내부 결속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두 실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과 한반도 정세, 그에 따른 한러관계의 변화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짚어내며 대중에게 전달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는 국내 러시아 전문가그룹의 대표적인 소장파입니다.
이에 러시아 지도부는 지난달 중순부터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 전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두 실장은 분석했습니다. 그는 "2월 중순 우크라이나 동부 아우디이우카 점령을 기점으로 러시아가 전선을 조정하고 전투력을 도네츠크에 집중하고 있다"며 "특정 기간 안에 도네츠크를 점령하겠다는 러시아 전쟁 지도부의 의지"라고 강조했습니다.
두 실장은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에 대한 공세를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상당한 소진이 있을 것"이라며 "이는 가뜩이나 러시아보다 부족한 전쟁 지속 능력을 더 약하게 만들어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는 떨어뜨리고, 러시아군과 국민들의 내부 결속 강화를 노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일단 득표율이 역대 최대 득표율인 76.7%(2018년)를 넘지 못하면 전쟁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를 넘어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푸틴의 5선, '해방' 군사작전 격화…방북 통한 군사밀착 가속 우려도
우크라이나 남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아울러 부르는 지역인 '돈바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국가가 국가를 전면공격하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전쟁의 '트리커'(방아쇠)가 된 곳입니다. 러시아 정부 인사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핍박받는 돈바스 주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죠.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앞서 돈바스 전쟁이 먼저 이뤄진 이유입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루한스크 지역의 93%, 도네츠크의 54%를 장악했다고 주장한 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2년간 루한스크 지역은 사실상 모두 점령했지만, 도네츠크는 여전히 절반을 갓 넘긴 수준에 그치고 있으니까요. 그사이 전쟁으로 32만 명이 목숨을 잃으며 양측 모두 큰 피해를 봤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새 임기를 시작하는 취임식인 5월 7일까지 도네츠크전 '승리'를 필요로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틀 뒤 전승절(5월 9일)을 앞두고 승리를 자화자찬하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죠.
이는 곧 대선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높은 득표율과 올해 처음 선거가 실시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루한스크, 남부 자포리자, 헤르손 등의 강제 병합 지역에서도 높은 투표율과 득표율이 나온다면, 푸틴 대통령은 이를 명분 삼아 전쟁을 지속할 수 있을 테니까요.
두 실장은 "러시아는 지난 2년간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동원태세와 전시경제체제를 확립했다"며 "반면 우크라이나는 전쟁지속 능력이 계속 약화되고 있고, 국제사회도 어수선한 상황이라 푸틴 대통령이 이를 적극 이용해 전쟁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로 미국 정치가 어수선한 틈을 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쐐기 박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푸틴 대통령은 '아군 모으기'에도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발 빠르게 중국과 북한을 포섭해 대외적으로 러시아의 침공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 세력들이 결속하는 그림을 추구하는 것이죠. 두 실장은 "대선 이후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베이징 연계 방문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러북 사이 정치·경제· 군사· 문화 등 전 분야에서 전방위적 협력을 제도화하는 각종 협정 및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양국 관계를 법률적 기초에 세우는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러북 협력을 '불가역적 조치'로 제도화한다는 것입니다.
러북 협력,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렇다면 러북 협력이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할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일까요. 러시아의 핵기술 제공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군사정치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얘기합니다. 동맹에 '급'을 매겨 핵심 기술을 지원하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동맹에도 급이 있다는 것이죠.
두 실장은 "러북 관계는 러시아-벨라루스 관계만큼 돈독한 건 아니다"라며 "러시아는 핵심 동맹국가에도 핵심기술을 주진 않는다. 다만,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통해 러북관계는 가장 좋았던 시절로 회귀하게 될 것이고 이는 북한의 전략적 지위 상승과 '5대 국방과업'을 달성하는 시기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무력 완성을 도우면서도 핵심적인 기술을 제공하지 않는 방법으론 무엇이 있을까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한 군사정찰위성 기술력 지원은 이미 알려진 정황입니다.
군 안팎에서 추가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바로 '방공망' 통합입니다. 전투기 전력이 뒤떨어진 북한은 공중전을 치를 수 없어 대신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비롯한 러시아의 첨단 요격체계가 절실합니다. 반대로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방공망 통합을 꾀할 수 있죠.
두 실장은 "러북 협력이 러시아-벨라루스 간 군사협력 경로를 따르게 되면 첨단 방공자산이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에서 나아가 러시아의 위성항법체계 시스템에 북한이 포함되는 등 북한의 감시정찰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악화일로 걷는 한러관계…한국 선교사 '간첩' 혐의 체포까지
이처럼 러북 관계가 불가역적인 친선 관계를 향해 달려가는 반면, 한러 관계는 악재가 겹치면서 암운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존경하는 (이도훈) 대사님, 러시아는 이를(한러 관계 회복) 위한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개국의 주러 대사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이도훈 대사만을 콕 집어 존칭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를 두고 러시아의 '러브콜'이라는 분석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양국 관계에 훈풍은 없었습니다. 1월 말 정부가 대러 제재를 확대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선제 핵 공격' 법제화를 비판하자, 러시아는 외무부를 내세워 윤 대통령을 실명 비난하며 강력 반발했죠. 급기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던 우리 선교사를 '간첩' 혐의로 체포합니다.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존경심 표현은 한국 정부를 시험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두 실장은 이같이 평가했습니다. 이어 "백모 선교사 문제는 러시아 당국이 한국에 대한 최대한의 유화적 메시지를 발신한 후에도 대러 관계에서 변화가 없는 한국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보복성 조치를 본격화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러시아 자체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 시간표를 짜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민을 지원하던 우리 선교사 백모씨를 간첩 혐의로 체포해버린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한국과의 '헤어질 결심'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실장은 "푸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존칭을 써가며 우리나라 대사를 챙겼을 때, 한국의 태도 변화를 주시하는 작업이 이뤄졌을 것"이라며 "일정 시간을 두고 한러 관계의 질적 변화를 꾀한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담당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이 2월까지 관계 개선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낸 건 이 '일정 시간' 안에 한국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려고 했던 것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러시아의 한국인 선교사 체포, 대한반도 정책 전환의 시그널
다만 이번 체포를 우리 정부의 대러 제재 확대에 대한 보복으로만 보면 곤란하다고 두 실장은 지적합니다. 그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안정성을 추구하는 한국의 대러 정책 목표를 흔들고, 북한과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의 관점을 보여준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끊어내고,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러시아가 이제는 북한과 전방위적 협력 관계를 대한반도 정책의 중심축으로 두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두 실장은 "러북 협력이 심화하면서 정보공유에 대한 합의도 당연히 이뤄졌을 것"이라며 "(그 일환으로) 북한이 러시아에 파견 노동자나 주변에 대한 감시 및 방첩 강화 등 정보 지원을 요청했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러시아의 입장 변화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도 나타납니다. 그는 13일 자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한 발언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2017년에만 해도 "한반도의 핵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북한의 핵보유를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을 이유로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안보의 진영화 가속한 우크라이나 전쟁…한국의 딜레마
그렇다고 우리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까요? 아울러 비확산체제(NPT) 핵심 지도국가 중 하나인 러시아가 북한의 핵위협을 방치하는 것을 비난해서도 안 되는 것일까요?
국제질서를 뒤흔든 전쟁을 일으킨 건 러시아입니다. 반면 한국은 6·25전쟁뿐만 아니라 전후 국가 발전을 한미동맹과 미국과 유엔의 지원 속에서 이뤘습니다.
두 실장은 바로 이 대목이 한국과 러시아가 과거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기 어려운 이유라고 강조합니다. 두 실장은 "대한민국은 대북억제력뿐 아니라 작전계획이나 무기체계 등 많은 것들을 한미동맹과 민주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뤘다"며 "우리가 처한 대내외 관계를 보면 한미동맹과 대서양 동맹의 연계는 자연스럽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지지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한미동맹 강화는 러시아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중 하나인 러북 군사밀착은 대한민국 안보지형을 뒤바꿀 수 있는 수준의 위협입니다. 그래서 두 실장은 "한러 관계의 중장기적 목표를 양국 관계 그 자체보다도 러북 관계의 밀착을 지연시키고 억제하는 것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진영 구도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적으로 가까워지지 않도록 고도의 외교전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에 한국은 좋은 경제 파트너…"일단 고위급 대화 복원을"
두 실장은 지난 20년간 이어져온 대한민국 대러정책 속에 담긴 외교적 의도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과거 정부들의 대러 정책은 겉으로 보기엔 경제협력이 주를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일종의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의 변화와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촉진하는 목적의식을 전제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2018년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이동형 저장장치(USB)에 담았다는 한반도 철도 연결사업 또한 원래는 이명박 정부 때 '한반도 종단철도(TKR)-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 사업'이라는 이름의 남북러 평화협력 사업으로 구상된 것이었으니까요. 두 실장은 "러시아에 한국은 여전히 좋은 경제파트너"라며 "위기 속에 기회가 온다. 상호 자극을 자제하고 고위급 대화를 활성화하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대선을 통해 곧 '30년 차르'에 등극할 푸틴 대통령. 걷잡을 수 없는 러시아의 광폭 행보에 대한민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분명한 건 러시아의 도발에 도발로 맞받아치는 일차원적 대응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치밀한 계산을 토대로 변화를 꾀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철저한 계산과 전략을 바탕으로 한국과 러시아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를 유리하고 끌고 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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