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공격에 투표소 시위까지···안팎으로 시끄러운 ‘차르 대관식’

선명수 기자 2024. 3. 1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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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치러지는 러시아 대선 첫날인 15일(현지시간) 한 유권자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선이 유력해 ‘현대판 차르(황제)의 대관식’이라 불리는 러시아 대선이 치러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와 접경 지역 등을 공격했다. 러시아 곳곳에선 투표 용지 훼손과 방화 시도 등 소란이 이어졌다. 선거 마지막 날 정오에는 지난달 사망한 반정부 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자들이 투표소 앞에 줄 선 채 조용한 시위를 벌였다.

사흘간 치러지는 대선 마지막 날인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당국은 수도 모스크바를 포함해 러시아 전역을 겨냥한 우크라이나 드론 35대를 방공 시스템을 가동해 격추시켰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오전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17대가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 지역, 4대가 모스크바 지역, 나머지 14대가 6개 다른 지역에서 각각 격추됐다고 밝혔다. 크라스노다르 당국은 “드론은 모두 무력화됐지만 하나가 추락하며 슬랴반스크 정유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접경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러시아 정유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이어 왔다. 대선 이틀째인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과 접한 서부 벨고로드에선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2㎞ 떨어진 글로토보 마을에서도 우크라이나군의 드론이 차량을 공격해 5명이 다쳤다. 벨고로드주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계속되는 상황을 고려해 주변 지역의 학교와 쇼핑센터 등을 임시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725㎞ 떨어진 러시아 사마라 지역에 위치한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의 정유시설이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우리 드론이 진정한 장거리 능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푸틴 정권에 반대하는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기반 무장세력들의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16일 우크라이나 수미 지역에서 국경을 넘어 러시아 영토로 진입하려는 “우크라이나 사보타주 단체”의 공격을 저지했으며, 교전 과정에서 30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대선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에도 벨고로드 등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던 ‘러시아 자유군단(FRL)’ ‘러시아 의용군단(RDK)’ ‘시베리아대대(SB)’ 등 3개 무장단체는 자신들이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자유군단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벨고로드 군사기지를 겨냥한 ‘대규모 공격’을 벌이겠다며 주민들에게 대피를 촉구했다. 얼마 뒤 러시아 국방부는 벨고로드 상공에서 로켓 15기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의용군단도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면서 러시아 군인 25명을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대선 둘째날인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접경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에서 자동차들이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손돼 있다. 벨고로드주지사 텔레그램 채널/AP연합뉴스

러시아 외무부는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러시아가 통제 중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투표소에 포탄을 투하했다고 주장했다. 투표소가 문을 열기 전 폭발이 발생해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병합을 선언한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에서 실시되는 선거가 불법이라며 이를 무효로 간주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시작된 일련의 공격을 ‘선거 방해’로 규정하고 보복을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선 첫날인 15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접경지를 공격하며 대통령 선거를 방해하려고 했다”면서 “이런 범죄를 처벌하지 않고 넘어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도 “우크라이나가 서방 조종자들에게 자국의 행위를 보여주고 추가적인 재정 지원과 살상 무기를 구걸하기 위해 테러 활동을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의 경고 이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의 주거지역을 미사일로 공습, 최소 21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다쳤다.

러시아 투표소 곳곳에선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첫 이틀간 투표함에 잉크 등 각종 액체를 쏟아부어 투표용지를 훼손하려고 한 사건이 20건 발생했으며, 투표소 방화와 연막탄 투척 시도도 8건 있었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이 같은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은 반역죄로 2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안이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부실한 선거 관리도 논란이 되고 있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영상에서 15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 위치한 대선 투표함에 한 여성이 진녹색 액체를 붓고 있다. 러시아선관위 영상캡처

BBC는 17일 정오 러시아 곳곳의 투표소 앞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긴 줄이 생겼다고 전했다. 이는 나발니의 아내 율리야 나발나야가 야권 지지자들에게 ‘푸틴에 반대하는 정오’ 시위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나발나야는 지난 6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선거 마지막 날인 17일 정오에 일제히 투표소에 나가 “푸틴 아닌 다른 후보를 찍거나, 무효표를 만들거나, 투표용지 위에 ‘나발니’라고 쓰자”고 제안한 바 있다.

17일(현지시간) 정오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 앞에 유권자들이 줄 서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검찰은 투표소 인근에서 허가 받지 않은 집회를 여는 것은 투표 방해로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예고한 상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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