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의 모험과 정복…기록이 남긴 가장 오래된 이야기

한겨레 2024. 3. 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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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는 구경할 것이 가득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제국의 수도답게 전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수집해 왔는지 헤아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봐도 해석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이 문자들은 4600년 전, 그 지역을 다스렸던 왕, 길가메시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5000년 전에 살았던 수메르 사람들이 독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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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길가메쉬

영국 런던에는 구경할 것이 가득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제국의 수도답게 전세계에서 얼마나 많이 수집해 왔는지 헤아리는 것이 쉽지 않다. 영국 시골에 몇해 살았는데, 기차 타고 런던에 가는 형님들을 동경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다.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런던 나들이 기회가 생기면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쫓아갔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주워 온 생명과 자연물의 표본들이 어찌나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는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들이 즐비한 미술관 안에서 쉽사리 발을 떼기 어려웠다.

압권은 영국박물관에 모아둔 인류의 문화유산들이다. 옛날에 옮기는 것도 수월치 않았을 텐데 근동의 대형 건축물들을 어떻게 떼어 왔을까? 그것은 빼앗는 나라의 권세를 보여주는 도구였을 텐데 조상이 이룬 것을 잃은 후손들의 상심은 말도 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나같이 지나가는 손님에겐 이런 행운이 없다. 중동의 마른 사막을 지나고 태평양의 거친 물결을 헤쳐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것들을 버스 타고 잠깐 걸으면 모두 만날 수 있다니. 그 과정에 사용된 폭력에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역사의 굴곡이 생겼겠지만, 눈앞의 이익만 즐겨본다.

런던에도 사람들이 살지만 도시 전체가 세계의 전시장이다. 가다가 문득 발을 들여놓은 건물이 박물관이고 미술관이다. 도서관도 발에 채인다. 영국박물관에 들어가서 왼쪽으로 틀면 근동에서 뜯어 온 아시리아 도시, 니네베의 궁궐을 재현해 둔 방이 있다. 벽을 장식했던 돌판을 가져와 다시 벽에 붙여 놓았다. 돌판 위엔 물건을 나르고 건물을 짓고 군사를 움직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소박한 재현인데도 과거 속을 걷는 듯하다. 이 궁궐의 주인은 2700년 전에 살던 아슈르바니팔. 그는 도서관을 지어 점토판에 이야기들을 쐐기문자로 새겨 보관했다. 19세기 중반에 발굴된 이 점토판들도 영국박물관에 있다.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봐도 해석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이 문자들은 4600년 전, 그 지역을 다스렸던 왕, 길가메시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세계에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 12개의 토판 위에 새겨진 위대한 왕의 이야기를 만화로 옮긴 ‘길가메쉬’(길가메시)는 니네베 돌판에 부조로 새겨진 그림을 닮았다. 쐐기문자를 번역한 이야기에 그 시대의 이야기를 옮기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5000년 전에 살았던 수메르 사람들이 독자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하는 것 같다. 길가메시와 그의 친구 엔키두가 함께한 모험과 정복의 여정. 매서운 자연에 맞서, 그리고 다른 부족과의 갈등에서 승리한 왕의 이야기. 노아의 방주와 홍수 이야기의 원형이 담긴 열한번째 토판도 영국박물관에 10개의 조각으로 깨진 채 남아 있다.

사랑, 우정,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5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는 야생을 버리고 온 엔키두와 진한 우정을 쌓았다. 그들은 향백나무 숲의 괴물, 훔바바를 함께 때려눕혔다. 길가메시에게 거절당한 사랑의 여신 이쉬타르가 보낸 하늘의 황소도 함께 무찔렀다. 하지만 신들은 엔키두의 목숨을 거두고, 친구의 죽음에 절망한 길가메시는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어렵게 짬을 내서, 시간을 넘어온 것들 속에서 산책하다 보면 서울에 두고 온 시름을 잠시 잊는다.

주일우 |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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