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강남을 출마할 뻔했는데…출마 막은 사람은? [대통령의 연설]
22대 총선을 위한 공천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들며 각 당의 비례후보 선정작업도 본격화 됐습니다.
요즘 총선 관련 기사에서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아무래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혁신당인데요. 각종 여론조사에서 10% 후반대의 지지율을 견고하게 보여주며 선거판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죠.
조국혁신당의 선거전략은 당이 만든 신조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에 투표,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에 투표)’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거에 맞춰 급하게 창당된 탓에 여러 지역구에 후보를 낼만한 인적·금전적 여력은 부족하고, 조국 대표 개인의 인지도에 기대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죠.
아직 비례 순번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 대표는 안정적으로 당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선된 후에는 2027년 대통령 선거까지 더욱 활발하게 정치활동에 나설 것도 분명해 보이구요.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고 당선이 무효화된다 해도, 이번 총선에서의 활약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면 어떻게든 정치판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을테죠.
총선시즌을 맞이해 역대 대통령의 초선의원 선거를 되짚어보고 있는 <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의 주인공은 비례대표로 정계에 데뷔해 결국 대통령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대중적 인지도가 굉장히 높았고, 개인이력도 매력적이었던 덕분에 어떤 방식으로 정치권에 뛰어들지 세간의 이목을 끌었었는데요. 마찬가지로 비례대표로 정계에 뛰어든 조 대표와 그의 데뷔과정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말렸던 정주영 회장 “나랑 일해 좋았지?”
정계 데뷔가 4년뒤로 미뤄진 것은 그를 중용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영향이었다고 합니다. 이 전 대통령은 저서 <대통령의 시간>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13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계에서는 나의 국회의원 출마 여부가 논의됐다. 정 회장도 이같은 상황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며 정주영 회장이 자신을 울산으로 파견해 노사분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겼다고 술회했습니다.
훗날 정주영 회장은 이 전 대통령에게 “전두환 정권 때 당신을 상공부 장관으로 내달라고 했는데, 내가 반대했지. 그때 갔으면 뭐했겠어? 가지 않고 나랑 일한 게 더 좋지 않았어? 그리고 1988년 총선 때, 이 회장을 강남갑에 출마시키겠다고 하기에 ‘회사에 노사문제가 심각해 이 회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고 내가 반대했어”라고 솔직히 말해줬다고 합니다. 이 전 대통령의 대답은 “잘하셨습니다”였구요.
다만 정계 데뷔를 미룬 탓에 어려운 선택을 해야할 순간이 닥치기도 했는데요.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며 이 전 대통령도 합류하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죠.
이 전 대통령은 국민당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나는 정 회장의 창당에는 반대했다. 정 회장의 추진력과 판단력, 개척정신, 검소하고 겸손한 자세 등은 높이 평가했다”며 “그가 만일 한국 최대 재벌의 총수가 아니다면, 나는 그의 정치 참여를 지지했을 것이다. 그 어떤 정치인보다 잘 해내리라는 믿음도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어서 “그러나 현대라는 재벌이 정치 참여를 통해 권력을 갖게 됐을 때 사회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했지만, 재벌 총수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것이 내가 정 회장의 창당에 반대한 이유였다”고 했습니다.
27년간 현대에서 재직했던 이 전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과 맞설 수 없다며 제안을 거절하고 유학을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중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와 전국구(비례대표)를 제안 받아 출마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14대 총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4대 대선이 있었는데요. 정주영 회장이 대선후보로 나서 돌풍을 일으키자 민자당에서는 이 전 대통령에게 TV 찬조연설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정주영 후보의 개인적 결함이나 사생활을 비판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바로 1년 전까지 정주영 후보와 함께 기업 활동을 했던 나로서는 홍보팀의 그 같은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의리 때문이 아니었다...선진화된 정치를 실현시키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런 내가 네거티브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로 이 전 대통령의 의정활동에 대해서는 인상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전국구 국회의원 임기동안 주된 기록은 1995년에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던 것, 자서전 <신화는 없다>의 흥행 등인데요. 정계 데뷔때부터 워낙 인지도가 높았던 덕에 의정활동으로 기반을 쌓아나가기보다 단번에 광역단체장과 대권후보로서의 행보에 집중했던 모습입니다. 조국혁신당을 통해 국회에 입성할 수도 있는 조국 대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미래가 예상되는데요.
결국 대권까지 잡게 된 이 전 대통령과 향후 조 대표의 행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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