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오송·이태원, 거듭되는 참사…책임자 없는 10년과 싸우다
“비극을 되새김질하는 나날들 / 태양 아래 낮 동안 눈감은 비극들 / 그 비극들을 맞이해 / 술을 따라 주고 가장 좋은 음식들을 내오고 / 그들을 달래어 해 뜨기 전 돌려보내 주오…”
가수 하림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자 경빈이 엄마 전인숙(52)씨는 입술을 앙다물고 허공을 바라봤다. 주영이 아빠 이정민(62)씨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손을 모았다. 전씨는 10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아들을, 이씨는 1년5개월여 전 이태원 골목에서 딸을 잃었다. 자식 잃은 슬픔을 안은 이들은 노랫말처럼 비극을 되새김질하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딱 한 달 남긴 16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앞 도로에서 ‘기억과 약속의 달 선포 기억문화제’가 열렸다. 아침 9시부터 7시간을 걸어 서울시의회 앞에 도착한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도로 한쪽을 가득 메우고 문화제를 이어 갔다.
이날 문화제는 지난 21일 동안 이어진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을 끝마치며 열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지난달 25일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지였던 제주도에서 도보 행진을 시작해,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지나 전국 각지를 걸어 이날 서울에 도착했다.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외롭지 않게. 군산(3.7)’, ‘잊지 않고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24.3.9 오송참사 대표 이경구’. 지역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응원 문구와 만난 날짜가 가득 적힌 노란색 조끼를 입고 행진을 마친 최지영(60·단원고 2학년 6반 고 권순범 학생 어머니)씨는 “진도 팽목항에서부터 여기까지 쭉 걸어왔다. 그동안 잊힌 줄 알았는데 많은 시민분이 함께해주셔서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노란 옷을 입고 노란 우산을 든 세월호 유가족 뒤로는 보라색 옷을 입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행진 막바지를 함께했다. 이태원에서 스물아홉살 아들 이남훈씨를 잃은 박영수(57)씨는 짧게 자란 갈색 머리를 만지며 “(세월호 유가족들이) 10년 세월을 길에서 투쟁했는데도 우리에게 이태원 참사가 닥쳤다. 우리 이후에는 더는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길에 나오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1월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데 항의하며 대통령실 앞에서 머리를 밀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과 청소년들, 휠체어를 탄 장애인까지 다양한 시민들도 유가족 곁을 함께했다. 친구들과 함께 행진에 참여한 성미산학교 중3 박준협(15)군은 “아직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잘못을 사과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행진에 참여한 김미선(45)씨는 “세월호 참사 부모님들이 (희생된 자녀들) 이름표를 달고 계시는 걸 봤는데, 보기만 해도 울컥했다”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한겨울에 오체투지를 하는 것도 봤는데, 윤석열 정부가 (특별법을) 거부하는 걸 보면서 ‘소름 끼치게 매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행진을 마치고 열린 문화제에서 유가족과 참가자들은 안전 사회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물었다. 박승렬 4·16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10년간 시민들이 죽어갈 때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세월호, 이태원, 오송지하차도 참사 모두 그랬다”며 “우리는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국가가 지켜달라는 요구를 할 뿐이다. (세월호참사가 그랬듯) 이태원 참사 특별법도 함께 싸우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KBS)이 지난달 21일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제작을 중단시킨 것을 지적하는 발언도 나왔다. 무대에 오른 한국방송(KBS) 라디오 피디 김휘연씨는 “입사한 뒤 2주 만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영정사진을 들고 케이비에스를 찾아온 유가족분들 뒤에 서서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10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내보낼 수 없게 됐다. 친구를 잃은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생존자의 이야기가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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