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된 스포츠 브랜드’를 떠올린다면 어떤 브랜드가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흥미로운 브랜드-전’의 애독자라면 최소한 2개의 브랜드는 생각나실 텐데요. 브랜드를 넘어 패션의 아이콘이자 문화현상으로 확대된 나이키의 조던. 그리고 세계 최초의 농구화에서 패션을 완성하는 아이템이 된 컨버스가 대표적입니다. 흥미롭게도 조던과 컨버스(2003년 나이키에 인수)는 모두 나이키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오늘 소개시켜드릴 이 브랜드가 바로 패션으로 진화한 대표적인 스포츠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장 르네 라코스테’가 만든 라코스테가 그 주인공입니다.
세계 랭킹 1위 올랐던 전설적 선수, 사업가가 되다
사실 패션 브랜드 라코스테로 알려졌지만 테니스 선수 라코스테의 명성은 그 이상입니다. 르네 라코스테는 1904년 7월 2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운동을 좋아했고 여행을 즐겼던 라코스테는 15살이 되던 해 아버지와 함께 영국 여행을 떠났다 운명의 상대를 만납니다. 바로 테니스입니다.
테니스를 처음 접한 그는 곧바로 사랑에 빠졌고 열정적으로 테니스에 임합니다. 그는 테니스를 시작한 지 1년여만인 1922년 윔블던 챔피언십에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1라운드 탈락. 하지만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계속된 훈련 덕에 일취월장한 그는 1923년 윔블던테니스 대회에서 4라운드까지 진출했습니다. 아깝게 세실 캠벨에게 패했지만 테니스업계에서 주목받는 인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테니스를 시작한 지 6년 만인 1925년, 프랑스오픈에서 처음으로 단식 우승 타이틀을 따내는데 성공합니다. 같은 해엔 영국에서 열린 윔블던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화려한 전성기의 막이 열렸습니다. 1926년엔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물오른 실력을 뽐내기 시작합니다. 1927년, 라코스테는 미국에서 열린 데이비스 컵 대회에서 조국 프랑스의 우승을 끌어냈고 프랑스오픈, US 오픈 등 4대 메이저 대회 중 2개 대회를 우승하며 1920년대 테니스 스타로 군림합니다. 그는 은퇴까지 총 7개의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따내는 등 실력으로도 세계 최정상에 섰던 테니스 스타였습니다.
꼼꼼하고 분석적이었던 라코스테는 시합에 앞서 상대편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연구하는 분석가로 유명했습니다. 또한 오랜 랠리와 공방전에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이 장점이자 특기였습니다. 또 현대적 개념의 서브와 발리, 로빙 기술 등을 창시한 선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즉 현대 테니스의 초석을 다진 대표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의 화려했던 전성기에 비해 선수 활동기간은 짧았습니다. 호흡기 질환 등 건강 악화로 1929년 프랑스 오픈 우승을 끝으로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라코스테는 1976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내기에서 진 승부사, 악어라는 별명을 얻다
그렇다면 악어를 로고로 쓰고 있는 브랜드 라코스테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요. 사실 악어(크로커다일)는 라코스테의 별명입니다. 왜 악어가 별명인가에 대해선 여러 루머가 많습니다. 라코스테의 아들 베르나르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소개했습니다. 1923년 테니스 대회 참석차 보스턴을 찾았던 라코스테는 시합 4일전 가볍게 몸을 풀기 위해 산책에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게 앞에서 그는 발걸음을 멈춥니다. 악어가죽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여행 가방에 매료된 것입니다.
그는 프랑스팀 주장과 내기를 합니다. 만약 호주와의 경기에서 라코스테가 승리한다면 저 가방을 사달라는 것이였죠. 하지만 호주와의 경기에서 그는 패배했고 최종적으로 호주팀은 프랑스팀을 4 대 1로 꺾어버립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경기에 임한 라코스테의 모습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악어가죽 가방 내기를 했었던 이야기를 들은 기자들은 그를 ‘악어’라고 불렀습니다.
악어라는 별명이 붙은 라코스테는 이후 기대대로 세계적인 선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1927년 그의 친구이자 디자이너 로버트 조지는 라코스테를 떠올리며 한마리의 악어 사진을 스케치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라코스테에게 선물했습니다. 라코스테가 처음 접한 그 악어는 크록이라 불렸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라코스테는 테니스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갖춰 입은 블레이저에 이 악어를 새기게 됩니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악어를 항상 몸에 지니며 좋은 기운을 받으려 한 것이죠. 이후 이 악어는 라코스테를 상징하는 하나의 징표가 됐습니다.
불문율 깬 라코스테의 반팔 피케티
그는 브랜드 라코스테를 대표하는 상품도 발명했습니다. 바로 라코스테의 상징, 반팔 피케티입니다. 귀족의 스포츠라 불렸던 테니스는 엄격한 복장 규율도 유명합니다. 라코스테가 선수생활을 할 때에도 테니스 선수는 빳빳한 카라가 있는 긴팔 셔츠만 입고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쉴틈없이 움직이고 달려야 하는 선수에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녔습니다. 그러던 1928년 프랑스오픈 대회 결승. 라코스테는 관중들과 경기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카라는 있었지만 긴팔이 아닌 반팔 셔츠를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라코스테를 대표하는 피케셔츠 탄생의 순간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처음 시도됐을 때만 하더라도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셔츠가 라코스테의 인생을 뒤바꿉니다.
짧지만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한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 1933년 프랑스에서 가장 큰 양말회사를 보유하고 있던 앙드레 질리에는 르네 라코스테를 만나 함께 사업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악어 라코스테의 상징과 같은 크록을 회사 로고로 했고 회사 이름도 라코스테로 정합니다. 특히 직접 테니스 선수로 일하며 느꼈던 불편함과 아쉬움을 개선하면서 ‘쁘티 피케’라는 혁신적인 소재를 사용한 반팔 폴로셔츠를 만듭니다. 이는 3개의 특허가 포함된 발명품이었습니다.
해당 발명품은 L.12.12 폴로셔츠라고 부릅니다. L은 라코스테, 1은 ‘쁘티 피케’, 2는 반팔을 뜻합니다. 뒤에 붙은 12는 12번째 제작한 시제품이란 뜻입니다. 르네 라코스테가 만든 라코스테는 신소재와 다양한 컬러,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세계적 브랜드로 도약했습니다. 1963년엔 아들 베르나르가 물려받았습니다.
일류 선수이자 사업가, 그리고 발명가 라코스테
라코스테는 1996년 9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꼼꼼함이 천성이었던 테니스 선수이자 사업가 라코스테는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한 책도 출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상대선수의 습관과 플레이 패턴 등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는데 그 기록장이 총 1928권에 달했다고 합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가 좌우명이었던 라코스테는 테니스를 더 잘 치기 위해 직접 메탈 라켓을 발명하는 등 30여개의 특허를 보유하기도 했습니다.
로빙을 훈련할 수 있는 자동 공 공급기계도 바로 라코스테가 발명한 발명품 중 하나입니다. 라코스테는 평범한 사업가가 아니였습니다. 정상에 올랐던 프로 선수이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 반짝 빛나던 발명가이자 기존 질서를 뒤바꾼 혁명가였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