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1인 체제, 권한도 책임도 커졌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로 꼽히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2024년 양회는 ‘징후적’이라 할 만하다. 권력 서열 2위인 총리의 역할과 권한이 눈에 띄게 위축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1인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초고속 성장 시대는 진작 막을 내렸지만, 중국 경제는 여전히 새 동력을 찾지 못한 채다. 혼란을 풀어내야 하는 것도 1인자의 몫이다. 성과도 책임도 홀로 지게 될 터이다.
5%라는 궁중누각식 성장률 목표 제시?
2024년 3월4일 국정자문기구인 제14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2차 회의 개막과 함께 양회가 시작됐다. 이튿날엔 국회 격인 제14기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2차 회의가 막을 올렸다. 관례에 따라 리창 국무원 총리가 개막식 직후 지난해의 성과와 올해의 국정과제를 밝히는 정부 업무보고에 나섰다. 업무보고의 핵심은 경제성장률 목표치다. 리 총리는 올해 목표치를 2023년과 마찬가지로 5% 안팎으로 제시했다. 같은 날 국무원 신문판공실(대변인실 격)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업무보고 초안을 작성한 황서우훙 국무원연구실 주임은 이렇게 설명했다.
“코로나19 3년을 지나온 중국 경제는 중병에서 이제 막 회복한 환자와 같다. (병은 나았지만 아직 허약한) 회복 단계인데, 동시에 여러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경제 운용에 압박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 중국 경제 발전의 배후 요인에 변함이 없고, 되레 여러 방면에서 눈에 띄게 강화되고 있다. 전략적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지만, 불리한 요소보다 유리한 조건이 많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5.2%를 달성했으니, 올해 5% 안팎 성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리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율은 2023년과 마찬가지로 3%로 제시했다. 톈안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직후인 1990년 3.9%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가장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없었다. 위축된 소비심리를 북돋을 조처도, 금융시장 불안까지 번진 부동산 위기 대응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를 두고 싱가포르 중문판 매체 <연합조보>는 “공중누각식 성장률 목표 제시”라고 꼬집었다.
막대한 내수시장과 생산력, 우수한 인적자원과 풍부한 천연자원 등 중국 경제의 강점은 여전하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2023년 목표치(5%)보다 높은 5.2% 성장률을 달성한 것은 2022년 성장률이 3%에 그친 데 따른 기저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다국적 투자은행(IB) 등이 2024년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4%대 중반으로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성장률 5%를 내건 이유는 뭘까? 목표치가 너무 높으면 달성하기 어렵지만, 너무 낮으면 시장 전망을 어둡게 해서 역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중국 당국이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저선으로 ‘5% 안팎’을 제시하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돌파구’는 없을까? 양회 기간 시진핑 주석의 행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리창 총리가 말한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의 의미는
“현대화 산업 체계 건설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 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 리창 총리는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같은 날 오후 시 주석은 장쑤성 대표단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 역시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을 장황하게 강조했다. 2023년 9월8일 헤이룽장성 시찰 때 자신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당시 시 주석은 “기술혁신으로 산업의 전반적인 활성화를 이끌어야 한다. 기존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선진 제조업의 고품질 발전을 추진하고, 전통 제조업의 업그레이드를 가속화하고, 전략적 신규 산업과 미래 산업을 주도해,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 형성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2024년 3월6일엔 정협 과학기술 분야 대표단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대표단 쪽에 “핵심 기술 분야에서 공격적인 전투를 잘 수행해,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의 새 동력을 배양·발전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튿날인 3월7일엔 전인대에 참석한 인민해방군 대표단 회의에 양복 대신 국방색 인민복을 입은 시 주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도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을 세 차례 언급하며, 첨단기술 발전에 발맞춰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킬 것을 주문했다.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이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비슷한 개념은 과거에도 있었다. 개혁·개방과 함께 서구의 선진 기술과 막대한 자본이 중국의 풍부한 노동력과 만나면서, 중국은 삽시간에 ‘세계의 공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몸집이 커질수록 노동과 자본의 ‘양적 동원’만으론 기록적 성장세를 이어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리커창 전 총리 재임기인 2015년 5월8일 중국 국무원이 제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한 전략 계획인 ‘중국제조 2025’을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제조 2025’는 △제조업 기반 육성 △과학기술 혁신 △녹색성장 등을 통해 중국의 경제모델을 저기술·노동집약 산업 위주의 ‘양적 성장’에서 고기술·고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한 ‘질적 성장’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 산업전략이다. 이른바 ‘고품질 발전’을 위해 핵심 부품·자재의 국산화율을 2025년에는 70%까지 끌어올리고, △차세대 정보기술 △로봇 △항공·우주 △고효율·신에너지 차량 △친환경 전력 △신소재·바이오 등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10대 핵심 산업의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제시됐다.
‘질적으로 다른 생산력’은 ‘중국제조 2025’와 크게 다르지 않다. 리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신흥산업’과 ‘미래산업’의 사례로 △스마트 네트워크 △신에너지 차량 △수소에너지·신소재·신약 △바이오·우주개발 △인공지능·양자기술 등을 언급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핵심인 ‘생산력’(노동력과 기계·설비·토지 같은 생산수단이 결합해 재화를 창출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능력)이란 개념을 빌려온 것뿐이다.
미·중 무역전쟁 표적 ‘중국제조 2025’와 흡사
실물경제에 추상적 표현을 동원한 이유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 과정에서 ‘중국제조 2025’는 미국의 핵심 표적이었다. 미국 쪽은 불법·강제 기술 유출의 원흉이자, 불법 보조금 지급을 통한 불공정 경쟁의 원인으로 ‘중국제조 2025’를 지목했다. 결국 중국 쪽은 2019년께 이를 슬그머니 폐기했다.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은, 말하자면 ‘시진핑표 중국제조 2025’로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집권 2기의 문을 연 2017년 10월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대회 때 중국 사회의 ‘주요 모순’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인민의 수요와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발전의 차이”로 규정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고, 심각해진 지역과 계층 간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해 이른바 ‘공동부유’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집권 3기 2년차에 접어든 시 주석이 직접 내세운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은 이를 추동할 대전략인 셈이다.
한 가지 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전인대 폐막일인 3월11일 통과된 국무원조직법 개정안이다. 앞서 1982년 12월10일 제5기 전인대 5차 회의에서 통과된 기존 법령은 11개조로 이뤄졌지만, 이번에 통과된 수정안은 20개조로 늘었다. 핵심은 총리의 역할과 권한이다.
기존 법령 제2조는 ‘국무원은 총리책임제를 실행한다. 총리가 국무원 업무를 영도한다. 부총리와 국무위원은 총리의 업무를 보좌한다’고 규정했다. 개정안에선 관련 조항이 제5조로 옮겨졌는데, 기존 법령의 규정 뒤에 ‘부총리와 국무위원은 총리의 업무를 보좌하고, 분업에 따라 각 분야 업무를 분담하며, 총리의 위임을 받아 기타 업무 또는 특별 업무를 담당한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부총리와 국무위원의 권한을 더 분명히 한 게다.
“총리 약화하면 결과 책임 분산할 수 없는 위험”
기존 법령 제4조는 ‘국무원 업무 관련 중대 문제는 반드시 상무위원회나 전체회의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고 규정했다. 같은 규정이 개정안 제7조로 자리를 옮겼고, 제8조 부가 조항에 신설됐다. 개정안 제8조는 국무원 전체회의의 역할로 정부 업무보고, 국민경제·사회발전 계획 등 ‘중대 사항’ 논의로 못박고, 상무위원회의 역할은 법률·법규 초안 검토 등으로 한정했다. 총리가 부총리·국무위원 등과 수시로 열 수 있는 상무위원회의 역할을 제한하고,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전체회의를 거치도록 한 것은 명백한 총리 권한의 축소다. 축소된 총리의 역할과 권한은 시 주석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실제 리훙중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은 3월5일 오후 회의에서 국무원 조직법 개정 취지에 대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요구는 국무원이 중국 공산당의 지도력과 당과 국가의 지도 사상, 특히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명확히 견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총리가 관장했던 국무원의 업무까지 시 주석이 직접 개입할 것임을 암시한 셈이다. 성균중국연구소는 3월11일 펴낸 ‘2024년 양회 분석 특별리포트’에서 “이번 양회에서 구체적인 전략 방향까지도 시진핑 주석이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총리의 권한이 약화하면서 모든 결과의 책임을 분산할 수 없다는 위험을 드러냈다. 강력한 권한에 따른 책임성이 시진핑 주석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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