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그려”...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퇴근 후 방구석 공방]

이승환 기자(presslee@mk.co.kr) 2024. 3. 1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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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방구석 공방 46화 - 토리야마 아키라를 기리며]

지난 8일 토리야마 아키라가 설립한 제작사 ‘버드 스튜디오’는 지난 1일 토리야마가 별세했다는 비보를 알려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세계의 언론들은 앞다투어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알렸고 각종 SNS에는 그를 애도하는 팬들의 포스팅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가난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
1955년 4월 5일. 나고야에서 태어난 토리야마는 밥을 못 먹는 날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끼니를 걱정하는 마당에 장난감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물건이었고 그림 그리기를 놀이삼아 아톰에 등장하는 로븟들과 101마리의 개를 열심히 따라 그렸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미술대회나 캠페인 포스터 등으로 여러번 입상한 것을 보면 그림 실력은 타고났던 것 같습니다.
작업중인 토리야마 [@akira.toriyama 인스타그램]
아이치현에 있는 공업고 디자인과를 졸업 후 ‘제1지행’이라는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 디자인 일을 하려고 했지만 레터링 작업이 주가 되어버려 불만이었던 토리야마는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등 불만을 얘기하기 보다는 나름의 행동으로 표출 했다고 합니다.

2년 넘게 버틴 회사생활을 관두게 되는데 유명해진 후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원래 귀찮은건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등 개구지고 괴짜같은 토리야마의 이미지를 만드는 루머들이 돌기도 합니다. 하지만 휴재 한번 없이 15년동안 연재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책임감 있고 부지런한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훗날 그는 자신의 2년 반의 직장 생활에 대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이 시간은 절대로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합니다.

퇴직 후 1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일러스트를 그리며 쪼들리는 나날을 보내던 중 우연히 ‘주간 소년 매거진’의 신인상 작품 모집 기사를 보게 되는데 만화책를 그려본 적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었던 그는 50만엔이라 상금에 꽂혀 도전을 하게 됩니다.

결국 마감일까지 완성하지 못해 기회가 날아가지만 이후 ‘주간 소년 점프’ 신인상인 영 점프 상에 재도전합니다. 비록 수상은 못하지만 점프 편집자였던 ‘토리시마’의 눈에 들게 되고 토리야마는 매년 5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그리며 토리시마 밑에서 만화가로서의 자질을 쌓아가게 됩니다.

당시를 토리시마는 토리야마의 원고를 보고 “응, 그림은 잘그렸네”라고 하며 원고를 찢어버리기 일수였다고 하는데요. 이런 악마같은 편집장과 실제로는 형처럼 스승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토리시마 편집장과 닥터슬럼프의 악역 ‘닥터 마시리토’
재밌는 일화로 토리야마가 닥터슬럼프 연재 때 “악역을 어떻게 그려야 될지 모르겠어”라고 조언을 구하니 토리시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냥 네가 싫어하는 사람을 그려!” 다음날, 토리야마는 토리시마의 얼굴을 베이스로 만든 캐릭터, 거기에 이름도 ‘토리시마’를 거꾸로 읽은 ‘마시리토’를 그려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걸 고치려고 했는데 이미 그 때는 원고를 제본으로 넘겨야 하는 상황이이라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갔는데 그 캐릭터의 인기가 날로 좋아져 좋았다며 토리시마는 당시를 회상합니다.

드래곤볼을 연재할 때는 강력한 악역이 필요하다며 또 토리시마를 모티브로 피콜로 대마왕을 탄생시킵니다. 여담으로 토리시마 이후의 담당자들도 전부 악역으로 탄생시키는 등 담당자를 디스할 수 있어서 신이 난 토리야마는 만화를 통해 디스하는 유쾌함을 보입니다.

닥터슬럼프 그리고 전설의 시작! 드래곤볼!
토리시마가 번번이 찢기는 수모를 당하며 내놓은 단편이 인기를 얻게 되고 이 단편을 조금 수정해서 나온 데뷔작이 ‘닥터 슬럼프’ 입니다. 로봇이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것 부터 시작해 자신의 머리와 똥을 들고 다닌다던지 기괴하고 황당한 상상력들이 토리야마의 귀여운 그림체와 만나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는데 당시 만화가로서는 처음으로 한 해 동안 세금을 가장 많이 낸 납세자 10위안에 토리야마의 이름을 올릴 정도로 부와 명예를 가져다 주게 됩니다.
닥터 슬럼프
하지만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지만 5년 동안 휴재없이 연재하면서 토리야마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고 더 이상 짜낼 아이디어가 없다며 편집장에게 연재 종료를 요청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응~ 안돼~”였다는군요 . 참고로 토리시마 편집장의 별명이 ‘응 안돼’라고 합니다.
딸이 자신을 닮았다는 토리시마의 얘길 듣고 바로 출연시켜 버리는 토리야마
토리야마는 미치겠다며 제발 그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토리시마는 3개월 후에 신작을 시작한다면 닥터 슬럼프를 끝내도 좋다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렇게 1주일에 5일은 닥터 슬럼프를, 남은 이틀은 새 만화를 그리며 1984년 8월 닥터 슬럼프는 연재를 종료하게 되고 그 해 11월, 정확히 3개월 후 전설의 만화 ‘드래곤볼’ 연재가 시작됩니다.
닥터 슬럼프를 마치며 드래곤볼을 예고한 토리야마 [@akira.toriyama 인스타그램]
지금은 전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드래곤볼이지만 처음엔 만화 순위 15위에 머무를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고 합니다(저는 처음부터 재밌었던 1인...입니다). 고민하던 토리야마와 토리시마는 ‘천하제일 무술대회’라는 아이디어로 본격적인 격투 만화로 바꿔나가게 되고 결과는 대성공. 그후 10년이라는 세월동안 토리야마는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과 재미, 그리고 추억을 선물하게 됩니다.
드래곤볼 [@akira.toriyama 인스타그램]
알수록 매력적이었던 토리야마
드래곤볼이 인기를 얻는 만큼 토리야마에 대한 이야기도 하나하나 에피소드가 쌓여가게 됩니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건 아마도 토리야마의 ‘귀차니즘’에 관한 루머일 것 같습니다. ‘그리기 귀찮아서 아무것도 없이 새하얀 ‘정신과 시간의 방’을 만들었다’, ‘귀찮아서 은근슬쩍 캐릭터를 빼버렸다’, ‘색칠하기 귀찮아서 머리가 노랗게 변하는 초사이어인을 만들었다’, ‘도시를 그리기 귀찮아서 다 날려버리는 거다’, ‘결론은 만화 그리는 걸 귀찮아 한다’ 등등 많은 루머들이 있는데... 대부분 사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하는데요. 매주 분량을 뽑아야 되는 어마어마한 작업량을 소화하려면 말그대로 색을 채워가며 그릴 시간조차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워낙 작업량이 많아 사흘에 한 번씩 잠을 자는게 일상이어서 가끔 마감을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블랙아웃이 몇 번이나 왔다고 합니다.

드래곤볼 일러스트 [@akira.toriyama 인스타그램]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게 되는데 인기 절정이라고 생각했던 피콜로 대마왕 이후 토리야마는 시간이 흘렀으니 손오공을 성장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토리시마는 반대합니다. 이미 드래곤볼은 개그 모험 만화가 아닌 액션 만화가 되어버렸고 토리시마 입장에서는 이제야 만화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왜 굳이 주인공에게 이런 큰 변화를 주면서 모험을 하냐는 것이죠.

결과는 청소년으로 성장한 손오공을 그려온 토리시마의 의견대로 진행하게 되고 작품의 인기는 지금까지의 코믹스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워 버리게 됩니다.

모형 만들기와 바이크를 좋아했던, 디자인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드래곤퀘스트’게임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토리야마 [@akira.toriyama]
토리야마는 쉬는 시간에 프라모델이나 자동차 등을 만드는 모델링 취미가 있었습니다. 연애에는 통 관심이 없던 그는 지역 만화가 모임에서 만난 순정만화가인 ‘미카미 나치’와 친분을 쌓다 1982년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닥터 슬럼프를 그릴 때 토리시마의 집요한 요구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연애 이야기를 그릴 수 밖에 없었는데 연애 경험이 거의 없는 토리야마는 너무나 불만이었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연애 얘기가 왜 들어가냐는 것이었죠.

결국 토리시마도 토리야마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손오공과 치치 , 부르마와 베지터, 크리링과 18호등 드래곤볼에서는 페이지를 넘기면 결혼한 상태가 되어버릴 정도로 연애 이야기를 모두 스킵해 버렸죠.

손오공과 아라레, 두 인기캐릭터의 자연스러웠던 만남
토리야마 아키라가 정말 대단한 점이 하나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닥터슬럼프 5년, 드래곤볼 10년 총 15년 연재를 이어오면서 한 번도 펑크를 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심신이 지쳐갔지만 드래곤볼이 연재를 쉬게 되면 출판사의 모든 직원들이 밥벌이를 걱정해야 될 정도로 드래곤볼의 비중이 높았고 ‘인조인간 셀’ 편을 연재 할 때는 토리야마가 연재를 종료할 것을 우려해 문화부 차관이 직접 그에게 찾아와 연재를 계속 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1995년 드래곤볼 Z가 완결되고 나서는 ‘더 이상의 장편 연재 작업은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고 하는데 이해가 됩니다.

드래곤볼 슈퍼에서 30년만에 재회한 손오공과 아라레
토리야마는 드래곤볼 연재가 끝나서 이제는 좀 쉬면서 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세상은 천재 만화가를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1997년 닥터 슬럼프 애니메이션 제작이 결정되며 원화를 담당했고, 그 이후에도 샌드랜드, 네코마인, 은하패트롤 쟈코 등 단편만화 작업을 꾸준히 하고 86년부터 작업해온 드래곤 퀘스트 디자인 일도 계속하며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드래곤볼 연재를 마치며... [@akira.toriyama 인스타그램]
일본에서 재산순위가 항상 상위에 랭크되는 토리야마 아키라는 출판사의 편집부가 있는 도쿄에 사는 것을 싫어해 나고야시가 있는 ‘아이치현’에서 살고 있는데, 워낙 내는 세금이 많아 아이치현에서는 그가 이동하기 편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갈 생각을 못하도록 집 앞으로 고속도로를 내줬다고 합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은 안 되었다고 하네요.

또 포브스에서는 토리야마 아키라가 스누피의 원작자이자 미국 만화가 중에서 가장 돈이 많은 찰스 슐츠보다 재산이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고 하니 그의 재산 규모가 가늠이 안 되네요.

세금 논란 인터뷰중인 토리야마 [@akira.toriyama 인스타그램]
토리야마는 세금 때문에 논란이 된적이 있는데 2017년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라는 세계적인 탈세사건이 터졌을 때 폭로 된 내용에 이름이 적혀 있어 탈세의혹을 받았습니다.

미국 부동산 사업에 투자했던 그가 한화로 약 4억원을 탈세했다고 하는데 이에 토리야마는 “본래 일이 너무 바빠 세금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있었다. 문제가 생긴것에 대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죄송하다”고 했고 토리야마가 약 20년동안 낸 세금이 한화 약 1조원이 넘는다며 ‘대행업체에서 탈세한거 아니냐’ ‘탈세할 시간도 없이 연재했는데 무슨소리냐!’ 라며 그를 옹호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습니다.

토리야마는 어떻게 만화가가 됐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로(물론 그 덕에 토리야마 스타일의 그림이 탄생하긴 했지만) 다른 작가의 만화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토리야마에게 어느 날 편집자 토리시마는 슬램덩크란 만화를 읽고 있냐고 물었고 토리야마는 당연히 읽고 있지 않다고 대답을 하자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 만화이기 때문에 한번 보라며 명령같은 권유를 했다고 합니다.

토리야마는 슬램덩크를 보고 토리시마가 왜 자신에게 이 만화를 보라고 한 건지 바로 알았다고 하는데요. 그림을 정말 잘 그렸고 또 센스가 있는 만화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토리야마는 만화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센스’라고 밝힌적이 있었습니다.

슬램덩크의 작가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드래곤볼의 팬이면서 드래곤볼을 교과서처럼 생각한다고 말 한 적도 있습니다. 드래곤볼과 함께 점프에 연재하는 것은 기쁘지만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드래곤볼에게 엄청난 프레셔를 느꼈다는 이야기도 했었죠.

당시 다른 점프 만화가들에게 드래곤볼이 얼마나 위대하고 넘을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는지 알 수 있었던 일화이기도 합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akira.toriyama 인스타그램]
지금은 40~50대가 되어버린 중년들은 토리야마의 작품들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냈고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필자도 그중 하나였고 그만큼 그의 안타까운 소식은 좀처럼 머리 속에서 사라지질 않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 많은 감동과 재미, 추억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곳에서 편히 쉬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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