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국가 안보가 된 반도체… 동맹도 없는 美 우선주의 [심층기획]

홍주형 2024. 3. 16. 19: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 ‘아메리카 퍼스트’ 갈수록 심화
초강대국 지위 유지 위해 반도체 육성
러몬도 “美 2030년 최첨단 칩 20% 생산”
정부·기업, 패권 탈환 한 몸처럼 움직여
인텔에 527억弗 생산 확대 보조금 지급
170억달러 투자한 삼성보다 9배 많아
美 국가적 총공세 대응 쉽지 않을 듯
美, 반도체 경쟁 대상 모든 나라들 꼽아
中 수출 통제조치엔 韓·日 등 참여 압박

“2030년, (AI 생산에 사용되는) 전 세계 최첨단 칩의 20%는 미국에서 생산될 겁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달 26일 워싱턴 국제문제전략연구소(CSIS)가 주최한 ‘최첨단 산업에 투자하기: 칩스법(반도체지원법, 이하 반도체법) 시행에서의 업데이트’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자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달 21일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커넥트 2024’. 팻 겔싱어 인텔 CEO는 2023년 미국 12 대 아시아 80으로 적힌 반도체 산업구조 지도가 미국 50 대 아시아 50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이 미국의 문샷(아폴로 탐사선 계획처럼 국가적 비전을 담은 장기 과학기술 계획)입니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지난달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커넥트 2024에서 1나노대 반도체 양산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동아시아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 비율이 50대 50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참석했다. 인텔 제공
14일(현지시간) 로이터가 보도한 대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주 애리조나에서 인텔의 자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와 관련해 총 527억달러(76조원)의 보조금 지원(차관 포함)을 발표하면 이는 동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을 미국으로 찾아오겠다는 또 하나의 선전포고가 될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 미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를 선도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뭉치고 있다. 안보와 산업이 모두 인공지능(AI)으로 재편되는 시대, 기간 산업이 된 반도체 산업의 우위를 탈환해야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가 유지된다는 절박함이다. 삼성전자가 60억달러(약 7조9000억원) 보조금을 받는다고 해도 미국이 국가적 명운을 걸고 반도체 산업의 우위를 찾아오기 위한 전략적 행보에 나선 이상 2030년까지 쉽지 않은 경쟁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맹에도 예외없는 ‘아메리카 퍼스트’

삼성은 이미 170억달러(22조 6100억원)를 텍사스에 추가 공장을 짓는 데 투자하기로 했는데, 400억달러(52조4000억원)를 애리조나에 투자한 TSMC가 50억달러(6조6000억원)를 받을 것으로 알려진 것을 고려하면 더 큰 투자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도 미 반도체법 수혜 대상은 영국 방산업체 BAE시스템스(3500만달러·458억원, 지난해 12월), 미국 마이크로칩테크놀로지(1억6200만달러·2122억원, 1월), 세계 3위 파운드리 업체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15억달러·1조9650억원)로 미국 우선 기조가 뚜렷했지만, 인텔에 대한 보조금 지원은 그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2024년 대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합주 중 하나인 애리조나에서 보조금 지급 발표가 이뤄지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산업 재건을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텔은 미국 반도체 산업 재건 계획의 선봉에 섰다. 1나노대 반도체 양산을 선언하는 인텔 파운드리 커넥트 2024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한 러몬도 장관은 “정부, 민간, 학계가 함께 혁신을 추동해야 한다”며 “인텔은 미국의 챔피언”이라고 치켜세웠다.

미국은 인텔이 2000년대 반도체 시장에서 동아시아에 밀리면서 현재 반도체 생산 관련 우수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투자가 늘어나더라도 실제 양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 정부는 50억달러(6조6000억원)를 투자해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를 만들어 산업계, 학계가 함께 반도체 관련 연구개발(R&D)을 하겠다는 계획도 이미 발표했다. NSTC는 모든 기업이 인정하는 표준화된 커리큘럼을 만드는 우수인력 양성 기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엔비디아 등 AI 기술혁신을 선도하는 다수의 빅테크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산업 생태계의 우위는 미국이 자신감을 갖는 요인 중 하나다. 한국은 반도체로는 앞서가지만 AI 기술 혁신에는 다소 뒤처져 있다.

러몬도 장관은 CSIS 행사에서 “과거 (우주경쟁 대상은) 소련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나라들’”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경쟁 대상에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을 포괄하는 언급이다. 미국 정부는 공급망 경쟁에서 대중국 견제를 위해 유사입장국(like-minded country)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프렌드쇼어링’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반도체 경쟁에선 미국 중심, 즉 ‘온쇼어링’(국내로 생산기지를 되돌리는 산업정책)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CSIS 행사에서 “(보조금 신청 기업 중) 2030년까지 적용 가능한 계획으로 우선순위를 매길 것”이라며 “10년 후에 효과가 나타나는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은 우리 의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AI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재 하루라도 빨리 반도체 산업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다급함이 엿보인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지난달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커넥트 2024에서 세계 지도를 배경으로 미국과 동아시아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 비율을 50 대 50으로 만드는 목표를 소개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참석했다. 인텔 영상 캡처
◆中 수출통제에는 한국 등 참여 원해

동시에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들에 대중 수출 통제에 참여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엘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지난 1월 반도체 기술이 적국(중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한국 등 관련 기술을 보유한 동맹과 새로운 다자 수출통제 체제를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을 방문한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2일 기자들을 만나 “반도체 장비의 수출 통제에 대해서는 한·미 간 그동안 협의가 돼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최근 수출 통제 근거 법률인 대외무역법을 개정해 향후 미국 주도의 다자 수출통제 체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간에는 법규상 국제조약이나 국제기구를 통해 가입한 국제 수출통제 체제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