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났건만 아직도 그날에" 세월호 유족의 슬픈 행진
광명시청~서울시의회 15.9㎞ 행진 동행 취재
세월호 참사 유가족 52명, 시민들과 도보 행진
"아무리 시간 지나도 참사 당일로 매일 돌아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만나 서로 포옹하며 위로
각계각층 시민들, 행진 참여하며 600여명 동행
"국민 안전·행복한 나라 되도록 앞장서 싸우겠다"
[서울=뉴시스]박광온 권신혁 수습 기자 = "10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그날에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저는 제 아이가 괴롭게 숨져간 그날로 매일 돌아갑니다."
16일 오전 경기 광명시 광명시청 앞에서 만난 정성욱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정씨는 자신을 그의 이름이 아닌 "안산 단원고 2학년 7반 동수 아빠"라고 소개했다.
정씨는 "지난 10년이 어떻게 지나간지 모르겠다. 벌써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10년이 됐는데, '잊지 않는 것'은 아프지만 그게 안전 사회를 만드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 정씨와 같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 52명과 시민 약 150여명 등 200여명이 광명시청 앞에 모였다. 노란색 모자 아래 '세월호참사 10주기 안녕하십니까'라고 적힌 노란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지난달 25일 제주를 시작으로 전남, 경남, 경북, 전북, 충청, 강원, 경기 안산 등을 거쳐 이날 광명시청 앞에서 3주간의 시민행진을 마무리하기 위해 모였다. 특히 이날은 광명시청에서 출발해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 '세월호 기억공간'까지 약 15.9㎞를 걷는 일정이었다.
행진에 앞서 김순길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진실, 책임, 생명, 안전을 위해 10년을 걸어왔다. 그런데 아직도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희생자 고(故) 진윤희양의 어머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여전히 국가는 책임지지 않고 있고 이런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 10년 사이 있었던 여러 참사를 기억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돼야 안전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 길을 위해 또다시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3열 종대로 긴 대오를 형성한 이들은 맑은 하늘 아래 노란 우산을 펼친 채 묵묵히 걸어 나갔다. 노란 우산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과 과제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라고 유가족은 설명했다.
이날 행진에 동참한 한 천주교 수녀는 "어려울 때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굉장히 힘이 되고 위로가 되잖아요. 그래서 유가족분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동참하게 됐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교 2학년 부장을 맡고 있었다는 전직 교사 한상훈(65)씨도 "10년 전 저는 좀 엄했었다. 규칙을 잘 지켜야 된다고 말했는데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내가 거기에 타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며 "그때 사실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선실에 있지 않았던 애들은 살았지 않나. 그게 너무 교사로서 미안해서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은 3시간 남짓 걸은 끝에 오후 12시23분께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만난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잘 아는 듯 한참 동안 포옹을 나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58)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도 그렇지만, 우리 아이도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는 했지만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는 못 했다"며 "그래서 남아있는 아이들만이라도 집밖에 나갔을 때는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게 됐다"고 전했다.
포옹을 나누던 세월호 유가족 신현호씨는 "세월호 사고가 있은 후 약을 먹다가 몇년 전에 끊었는데,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후에 다시 약을 먹고 있다"며 "아직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지만 제대로 바꾸지 못한 것 같아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신씨는 "걸어오는 동안 하늘을 보며 제 아이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우리 아이의 사고가 단순히 어쩔 수 없는 사고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안전 사회로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후 1시7분께 처음보다 3배 가량 불어난 600여명이 여의도공원을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학생사회주의 연대' '진보대학생넷'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각계각층의 시민사회단체가 행진에 속속 동참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서로를 상징하는 노란색, 보라색 풍선을 바꿔 들기도 했다.
오후 3시49분께 '세월호 기억관'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기억과 약속의 달 선포 기억 문화제'를 열었다.
정성욱씨는 문화제에서 "다음 달 10일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된다. 더 무엇이 남아있느냐고,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할 수가 없다"며 "왜 세월호가 침몰했고 해경은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백하게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부모이기에 그 이유를 알아야 아이들을 가슴에 묻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의무가 있음에도 국가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로 갈 수 있도록 전 국민이 목소리를 내야한다. 저희들이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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