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서 일이 손에 안 잡혀요”…‘번아웃 증후군’, 우울증과는 어떤 차이?
직장이나 학업 등 일상에 쫓기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이를 흔히 ‘번아웃 증후군(번아웃)’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감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도 번아웃을 직업 관련 증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비록 질병은 아니라고 해도, 건강 상태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들의 번아웃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번아웃을 경험한 만 19~34세 사이 청년은 전체의 33.9%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통계청의 집계에 의하면 구직이나 재취업 활동을 하는 대신 집에서 쉬기를 선택한 ‘니트족’ 청년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번아웃이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우울증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자.
무기력감 가져오는 번아웃, 도대체 어떤 것일까?
WHO는 번아웃 증후군을 ‘직장에서 받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증후군’이라고 정의한다. 번아웃을 겪을 경우 △에너지의 고갈과 피로감 △직장이나 업무와 관련된 거부감, 부정적인 생각의 증가, 냉소주의 △업무 효율의 감소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WHO의 설명이다.
다만 사람마다 성향과 직업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번아웃’은 더욱 넓은 범위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에 WHO의 정의 외에, 심리학자 제리 에델 위치(Jerry Edelwich)와 아치 브로드스키(Archie Brodsky)가 정의한 번아웃의 진행 단계로 번아웃을 설명하기도 한다.
1. 열성 단계(Enthusiasm) : 처음 일을 시작한 상태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높은 성취를 위한 열정을 보이는 단계
2. 침체 단계(Stagnation) : 초기의 열정이 점점 사라지고, 일에 흥미가 저하되는 단계
3. 좌절 단계(Frustration) : 업무 중 좌절과 실패를 많이 맛보았고, 일에 대한 열정보다는 당장의 인사고과가 중요해진다. 업무의 무가치성을 맛보면, 직면한 업무를 회피하고 싶어진다.
4. 무관심 단계 (Apathy) :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로, 업무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마지막 수단으로 기권을 선택하고, 퇴사나 이직을 시도하기도 한다.
직장인들에게 번아웃이 찾아오면 스트레스성 질환이나 수면장애 등의 신체적 불편을 겪을 수 있고, 심리적·정신적인 영향을 크게 받아 업무의 효율이 낮아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심한 번아웃을 경험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업무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 외에도, 업무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스스로를 해치는 선택을 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3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오대종 교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상원·조성준 교수 연구팀이 다양한 직무의 근로자 1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번아웃이 올 경우 우울증 여부와 관계없이 자살 사고 위험이 최대 77%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기 직무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거나, 직장 내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 그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오대종 교수는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된 직장인들은 우울증 여부와 상관없이 자살 위험을 잘 관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번아웃은 증상, 우울증은 질환…상태에 맞는 치료 중요
번아웃은 무기력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번아웃은 ‘증상’에 해당하며 우울증은 ‘질환’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번아웃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그에 대한 대처 능력 부족으로 지친 상태를 말하지만 우울증은 지속적인 우울감과 의욕 저하 등 정신적 증상을 가져오는 질환이다.
다만 우울증의 한 가지 증상으로 번아웃이 나타날 수 있고, 번아웃을 경험하는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우울증으로 인한 번아웃을 겪는다면 우울증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업무로 인한 번아웃이 찾아온 단계에서는 아직 우울증 등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에 맞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번아웃이 찾아왔을 때는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김윤석 원장(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은 “휴대폰을 보는 대신 마음을 비우고 자연을 감상하는 것, 직장과 관련 없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영화 감상이나 독서 등의 문화생활을 하는 것 등이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더 큰 마음의 병으로 번지기 전에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고,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보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김윤석 원장 (서울맑은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세진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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