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도공의 땀, 고구마 소주 발전시키다 [명욱의 술 인문학]

2024. 3. 16.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주라면 아마 ‘고구마 소주’일 것이다. 전국에서 생산되는 고구마의 약 20%나 소주 제조에 사용하고 있으며, 와인용 포도처럼 백색 고구마, 자색 고구마, 오렌지색 고구마 등 다양한 품종으로 맛과 향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구마 소주의 대표적인 생산 지역은 일본 본토 최남단의 가고시마현. 원령공주의 배경지로 유명한 야쿠시마를 품고 있으며, 일본 고구마 최대 생산지이기도 하다.

가고시마의 소주 기술은 대한해협에 위치한 대마도, 이키섬과 달리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주장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왕래가 많았던 오키나와 유래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오키나와는 유구왕국(琉球王國)이라는 독립국이었다. 오키나와에는 이미 소주 기술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가고시마의 고구마 소주는 우리와 무슨 인연이 있을까.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 곡물, 누룩, 물, 그리고 그것을 담아 발효 및 숙성을 담당하는 ‘옹기’다. 가고시마의 소주는 전통적으로 옹기에 담아 발효 및 숙성을 한다. 흙으로 빚은 옹기는 내부 온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발효 및 숙성에 도움을 주고 좋은 맛을 내게 한다. 그런데 이곳의 옹기문화가 우리 역사와 연결돼 있다. 바로 조선에서 납치된 도공들이 영향을 줬다.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인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일본의 연호를 붙여 임진왜란을 분로크노에키, 정유재란은 게이초노에키라고도 부르지만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바로 ‘도자기 전쟁’이다. 그만큼 도자기에 사활을 걸었다는 의미다.

당시 조선을 침공한 일본의 다이묘(大名·일본 지방 영주)들이 도자기를 찾는 데 혈안이 된 이유가 있었다. 임진왜란 직전에 승려이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스승인 센리큐(千利休)가 일본 다도를 정립했고 자신들의 차(茶)를 담을 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새로워진 일본의 다도 입장에서는 중국의 도자기는 너무 화려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도자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도요토미는 조선의 도공을 끌고 오라고 명령을 한다. 이런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다이묘가 규슈 지역의 가토 기요마사,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 그리고 가고시마현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다. 나베시마가 데리고 간 이삼평(李參平·?~1655)은 사가현에 자리 잡으며 일본 3대 자기라고 하는 아리타도기, 이마리도기를 탄생시킨다. 반면 시마즈가 납치한 도공으로 탄생한 것이 가고시마의 사쓰마도기다. 시마즈는 남원성 외곽에서 살던 도공 40여 명을 집단으로 사로잡아 돌아온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평의, 김해, 그리고 심당길이다. 당시 시마즈는 가고시마의 나에시로가와(苗代川)에 조선인 집단촌을 이루게 했고, 메이지 유신 전까지 한국 옷을 입고 결혼도 마을 사람끼리 하면서 전통적인 한국 도자기를 생산하게 했다. 그들이 만든 도자기는 네덜란드로 수출하게 되며 막부에 막대한 수입을 남기게 된다. 이렇게 지켜온 도자기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출품, 유럽인에게 큰 감명을 준다. 이렇게 지켜온 도기 문화는 사쓰마도기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게 되고, 소주의 발효 및 숙성 옹기도 사쓰마도기의 영향을 받았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사쓰마도기는 지금도 한국의 풍속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다. 심당길의 15대 후손인 심수관의 가마는 한국의 풍속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다. 박평의로부터 이어온 아라키도요(荒木陶窯)의 돌림판은 한국만의 스타일인 시계 반대방향인 왼쪽 돌림판을 사용한다. 여기에 천연 유약만 사용하는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임진왜란은 우리에게 참 많은 상처를 남겼다. 가고시마는 2015년부터 세 번에 걸쳐 다녀왔다. 고구마를 고부가가치로 활용하는 그들의 모습에 참고할 사항이 있어서였다. 당시 고구마 소주 양조장을 견학하는 데 안내하는 일본인 도슨트가 고구마 소주 숙성옹기를 보고 이렇게 말을 했다. 조선의 도공 덕분에 가고시마 소주가 더욱 발전했다고.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한국인에게 죄송하다고.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