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식임을 거부합니다, 이 한 술의 '행볶'[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

기자 2024. 3. 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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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메인’으로 먹는 닭갈비 볶음밥

저녁 무렵 캠핑장을 거닐면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 어떠했을지를 상상할 수 있다. 대다수가 제때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장작이며 숯에 불을 붙이고, 익혀 먹을 고기를 준비하고 채소를 씻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제 막 불을 손에 넣은 사람들처럼 여기다 뭘 구우면 맛있을지 신이 나고, 아는 맛은 알아서 즐겁고 모르는 맛은 궁금해서 들뜬다. 아마 초대 인류도 그랬겠지. 이 고기를 익히면 어떤 맛이 날까? 저 채소를 구우면 어떤 질감이 될까? 미지의 맛있는 세계를 손에 넣은 기분이란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커스터마이즈 캠핑 바비큐

한때 회식의 대명사이자 이제는 ‘코리안 바비큐’로 해외까지 진출한 통칭 ‘고깃집’은 기본 구성이 비슷하다. 대체로 동물성 단백질인 메인 식재료, 그에 곁들이는 함께 익히는 채소와 생으로 먹는 채소, 양념, 후식으로 이어지는 밥과 면과 찌개다. 이렇게 단출한 구성일수록 개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면 그 변형도 화려해진다. 첫 회식의 기억이 남는 삼겹살을 구울 것인가? 각종 특수 부위를 비교 분석하며 미식회를 열 것인가? 기름진 곱창만으로 배를 잔뜩 채워볼 것인가?

양념도 저마다 가지각색이라 캠핑용품점에 가면 미니 급식 반찬판처럼 생긴 2구, 3구짜리 양념 그릇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쌈장? 기름장? 콩가루나 스리라차 소스? 여기에서 된장찌개를 끓이다 보면 옆 사이트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흘러오고, 찌개보다 라면이 끌려서 국물 라면이냐 비빔면이냐로 매점에서 한참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비빔면은 쌈장 같은 양념의 일종으로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빔면 하나, 국물 라면 하나.

이렇듯 캠핑 요리가 즐거운 것은 철저하게 취향에 따라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다는 부분이 크다. 제아무리 다양한 주거 환경이 있어도 현대식 주방의 구조는 집집마다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캠핑을 처음 시작하기 위해서 주방 세팅을 알아보면 활짝 열린 가능성에 아찔해진다. 고기를 어디에 구울 것인지에도 성격과 취향이 드러난다. 어디서든 안정적으로 간단하게 불을 피울 수 있는 부탄가스와 이소가스를 사용하는 사람. 캠핑장마다 10㎏에 1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하는 장작으로 불을 때는 사람. 일부러 따로 주문해서 곱게 챙겨온 참나무 숯에 열심히 불을 붙이는 사람. 구이바다(캠핑 버너)의 전골판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마솥 뚜껑처럼 묵직한 그리들을 고수하기도 하고 불향과 나무향이 배어드는 직화구이에 푹 빠지기도 한다. 캠핑을 가면 다들 똑같이 고기나 구워 먹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백인백색의 개성을 지니고 나만의 취향을 탐험하고들 있다. 오늘 다녀온 캠핑 짐을 다음주에 또 챙겨 들고서 이고 지고 떠나게 만드는 캠핑의 묘미 중 하나인 것!

내가 회식에서 벗어나 캠핑 바비큐를 준비하면서 가장 자유로움을 느끼는 부분은 사실 밥이다. 고깃집에 대한 취향 중에서 뚜렷하게 갈리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밥을 곁들이는 순서와 종류다. 나는 고깃집에 들어가면 약간의 탄수화물을 곁들였을 때 지방 낀 단백질이 제일 맛있게 느껴진다고 굳게 믿으며 고기와 함께 ‘밥 하나 주세요’를 외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밥에 반찬을 먹는 것을 평생 고수하는 사람들이 고깃집에서는 왜 밥을 벌써 먹느냐고 타박하기 일쑤다. 어릴 적에는 내가 잘못한 것인 줄 알고 주눅이 들었지만 이제는 지지 않는다. 밥을 먹어서 고기를 덜 먹는 것이 걱정이면 다른 사람은 그만큼 고기를 더 먹을 수 있는데 이득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밥을 먹어야 고기를 더 맛있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 캠핑 바비큐에서는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밥 볶으려고 고기 굽는 사람

하지만 밥을 같이 먹어버리면 나 스스로도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 다 먹고 나서 남은 고기, 양념과 함께 달달 볶아 누룽지가 생기도록 지진 고깃집의 후식, 볶음밥의 존재다. 고기에서 흘러나온 버터처럼 고소한 기름기가 코팅되어서 윤기가 흐르는 밥알, 염분 가득한 파채와 김 가루, 깍두기를 듬뿍 넣어서 짭짤하고 자극적인 맛. 고소하게 지져서 바닥을 박박 긁게 되는 노릇한 누룽지. 고기를 실컷 먹고 배가 너무 부르다며 젓가락을 내려놓은 것이 언제냐는 듯 다들 숟가락을 들고 철판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식사를 멈추지 않는다. 달콤한 케이크보다 중독성이 강력하고, 이걸 먹지 않으면 식사를 한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정말 한국인의 후식이라 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고기를 항상 밥과 함께 먹는 취향인 사람은 이 볶음밥도 메인으로 먹고 싶다. 배는 이미 부른데 왜 자꾸 들어가냐는 불평과 함께 꾸역꾸역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것을 가장 입맛이 생생할 때 먹고 싶은 것이다. 이걸 왜 굳이 코스로 먹어야 하지? 하지만 볶음밥은 일단 고기를 먹은 양념이 있어야 하니 고깃집에 가서 처음부터 같이 주문하기는 어렵다.

그런 심정이 십분 반영된 나의 커스터마이즈 캠핑 바비큐 메뉴가 있으니, 바로 닭갈비 볶음밥이다. 감질나게 남은 고기를 잘게 썰어서 넣는 것이 아니라 정량의 고기를 듬뿍 넣어서 보기에도 푸짐하고, 양념이 고기와 밥에 전부 골고루 잘 스며들어 어느 곳을 한 숟갈 떠도 모든 맛이 다 느껴진다. 노릇노릇하게 지진 고기와 밥의 누룽지 부분에 달콤하게 익은 채소가 어우러지는 것 또한 별미다. 후식 볶음밥을 기다리느라 고기만 먹으면서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고, 참지 못하고 밥과 고기를 먼저 먹어버려 배부른 기분으로 꾸역꾸역 먹을 필요도 없는 특제 닭갈비 볶음밥! 내 볶음밥은 후식이 아니야, 이분이 주인공이야.

닭갈비 볶음밥을 만들려면 우선 매운 정도와 당도까지 입맛에 따라 만든 닭갈비 양념에 닭 허벅지살과 채소를 한 입 크기로 썰어서 넣는다. 골고루 버무린 다음 식용유를 두르고 달군 그리들에 부어서 잘 뒤적여가며 노릇노릇하게 볶는다. 양념이 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모든 재료를 노릇하게 잘 볶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없다면 양념을 섞지 않은 채로 고기와 채소를 먼저 볶고 양념을 부어서 버무린 다음 밥을 넣도록 한다.

일단 양념과 함께 모든 고기와 채소를 잘 익혔다면 밥을 넣는다. 갓 지은 밥이나 너무 차가운 밥으로는 맛있는 볶음밥을 만들기 힘들다. 이전 끼니에 지어서 실온 정도로 식은 밥을 사용하거나 즉석밥이라면 기준의 절반 정도만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넣는다. 골고루 볶은 다음 누룽지가 충분히 생길 때까지 그대로 두어 바닥을 바삭바삭하게 만든다. 이때 한 번 더 볶아서 다시 누룽지를 만들어 고소한 부분의 비율을 늘리는 것도 요령이다. 볶음밥이 완성되면 취향에 따라 치즈를 넣고 녹이거나 김 가루나 채 썬 깻잎을 곁들여 먹는다. 모두 함께 누룽지까지 박박 긁는 것을 잊지 말 것!

◆닭갈비 볶음밥 레시피

재료: 닭 허벅지살 300g, 마늘, 양파, 양배추, 고구마, 밥 2인분

양념: 황설탕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맛술 1/2큰술, 간장 1/2큰술, 물엿 1큰술, 다진 마늘 1/2큰술, 고추장 1큰술

토핑 재료: 김 가루, 깻잎, 치즈

◆만드는 법

1. 모든 양념 재료를 잘 섞는다.

2. 한 입 크기로 썬 닭고기와 채소를 넣어서 잘 섞는다.

3. 식용유를 두른 그리들에 넣어서 노릇노릇하게 잘 볶는다. 밥을 넣어서 마저 볶는다.

4. 치즈를 넣어서 녹인 다음 김 가루와 깻잎을 뿌려 먹는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정연주|푸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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