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체포·북한 핵보유 인정···수교 34주년 한러관계 파열음
간첩 혐의로 체포 구금까지 된 것은 최초
푸틴 대통령, 북한 핵보유 인정 시사 발언
정부, "동북아 핵도미노·NPT체제 붕괴" 반발
18일 개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이목 쏠려
한미 외교장관 한달 새 3번 회담···메시지 주목
수교 34주년을 맞은 한러 관계에 파열음이 일고 있다. 올해 초 러시아에서 우리 국민이 ‘간첩 혐의’로 체포돼 구금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 와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붕괴와 동북아 핵 도미노를 부를 것”이라 반발하면서도 한국인 체포에는 “한러 양국 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16일 외신과 외교 당국에 따르면 한국인 선교사 백 모씨는 지난 1월 간첩 혐의로 러시아 당국에 체포됐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백 씨가 2020년부터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사 ‘벨르이 카멘’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 씨를 알고 있는 선교단체 관계자들은 백 씨가 러시아 극동지역을 기반으로 북한에서 파견된 벌목공과 건설노동자 등을 돕고, 탈북민 구출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인이 간첩 혐의로 러시아 당국에 체포 구금된 건 처음이다. 외교부는 “현지 공관에서는 우리 국민의 체포 사실을 인지한 직후부터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이를 위해 러시아 측과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급속히 냉각된 한러관계가 사상 초유의 ‘한국인의 간첩혐의 적용’의 배경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애초 러시아는 탈북민 문제를 다룰 때 중국과 달리 우리 쪽에 협조를 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관계가 악화하는 와중에도 러시아는 ‘한국이 비우호국 중 가장 우호국’이라는 입장을 대사가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을 정도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으며 영사 접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도훈 주러시아대사도 러시아 외무부를 찾아 지난 달 우리나라를 찾기도 했던 안드레이 루덴코 차관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일각에서는 국영 통신사를 통해 구금 사실을 알린 것 자체가 협상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와중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 직전 이뤄진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한테 핵우산을 제공하고 그 대신에 우크라이나에 북한군 200만 명을 투입하라면 어떠냐”는 질문에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우리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외교부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고 밝혔고 통일부는 더 나아가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은 이뤄질 수 없는 허황된 꿈”이라며 “북한의 핵 보유 용인은 동북아 핵 도미노와 NPT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 더 나아가 대만의 핵무장을 시사한 셈이다.
미국의 미묘한 입장 변화도 눈에 띈다.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북핵 해법에 대해 “전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interim steps)’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중간 단계란 핵 동결이나 감축에 상응해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러시아 뿐 미국 역시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차선책 마련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선은 18일부터 서울에서 개최되는 민주주의정상회의에 쏠린다. 이 자리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오찬 회담 형식의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지난달 28일 미국에서 개최된 한미 외교장관회담 이후 불과 19일 만에 열리는 것으로 최근 한 달 사이 한미 외교수장이 세 번의 만남을 갖게 된다.
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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