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학살',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3만 명을 넘어가면서 이스라엘의 보복이 비례성에 어긋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 정도면 사실상 인종 학살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레바논 출신으로 SOAS 런던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발전 문제와 국제관계를 강의하고 있는 질베르 아슈카르는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상황 발생 배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 역사, 이스라엘‧하마스 권력자들의 의도, 향후 전망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을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리시올 출판사와 함께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이라는 제목의 책자로 최근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슈카르 교수는 하마스의 공격에 이은 이스라엘의 보복을 '학살'로 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28일 집필한 글에서 학살로 규정한 근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반인도적 범죄라는 차원에서 이번 전쟁은 시온주의(유대 민족주의) 군대가 1949년부터 현재까지 저지른 모든 것을 질적으로 뛰어 넘는다. 1947~1949년의 나크바(이스라엘 건국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 실향)는 팔레스타인 땅을 장악하고 '인종 청소'를 실행하는 것이 목표인 전쟁이었다.
점령된 영토에서 살아가던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난민 처지가 되었고 추정에 따르면 당시 팔레스타인 거주 아랍인 130만 명 중 1만 1000명 이상이 살해됐다. 가자에 가해진 이번 공격을 보자. 7주가 채 지나지 않은 현재 가자주민 230만 명 가운데 최소 1만 5000명이 사망했고 거주민 절반 이상이 북부에서 남부로 쫓겨났다.
이 공격은 이들을 팔레스타인에서 추방하는 것, 적어도 이스라엘군의 감독 하에 강제 수용소 역할을 할 난민촌이 있는 이집트 국경 지역으로 몰아내는 것의 준비 과정이었다. 이것은 1945년 일본에 원자 폭탄이 투하된 이래 세계의 그 어떤 전쟁도 능가하는 살해와 파괴, 광기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사망자 수는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보건부는 15일(현지시각) 기준 3만 1341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고 7만 3134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가혹한 살상을 저지르는 배경을 두고 아슈카르 교수는 팔레스타인을 지우려는 극우 세력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리쿠드당부터 민족종교당 National-Religious Party과 오츠마 예후디트Otama Yehudit(유대인의 힘)에 이르는 파시즘적인 시온주의 우파의 전체 스펙트럼을 아우르고 있다.
이 정치 현실과 점령에 맞서 팔레스타인 저항군이 단행한 이전의 모든 군사 작전을 능가한 10월 7일 (하마스) 작전의 심각성이 상호 작용한 결과 이스라엘 측도 시온주의 군대가 이제까지 벌여온 모든 것을 능가하는 대응을 펼쳤다.
그리고 시온주의 극우파는 이 트라우마를 기회 삼아 '대이스라엘' 달성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는 무엇이든 제거하고, 가자 지구를 시작으로 몰살과 강제 이주를 통해 팔레스타인 인민을 절멸하는 것을 뜻한다"
아슈카르 교수는 이같은 이스라엘 대응을 가능하게 한 원인으로 하마스 지도부의 판단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7일 당시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계획한 이들이 △지금까지 벌어진 것과 같은 재앙을 초래할 것임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을 가능성 및 △오판을 범했을 가능성 등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하면서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아슈카르 교수는 작전이 발발된 이후 다음날인 지난해 10월 8일 '하마스의 10월 반격에 대한 첫 논평'에서 "이 새로운 장이 팔레스타인인 대부분의, 특히 가자주민과 구체적으로는 하마스의 끔찍한 희생으로 마무리 될 것이며, 이것이 이스라엘인이 감내하게 될 희생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하마스의 반격 배후에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이 반격이 이스라엘의 자신감에 타격을 입히는 것을 넘어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이런 식으로 대의가 달성되더라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을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슈카르 교수는 2001년 뉴욕과 워싱턴 등에서 벌어졌던 9.11 테러를 언급하며 이는 미국의 오만에 "스펙터클"한 타격을 입혔지만, 그 결과 조지 W. 부시의 인기가 올라갔고 미국은 기어이 이라크 침공을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하마스의 10월 반격으로 깊이 분열되어 있던 이스라엘 사회와 정치체가 벌써 재통합되었다. 이 분위기를 등에 업고 베냐민 네타냐후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테러를 자행해 팔레스타인인을 강제 추방하는 자신의 가장 과격한 계획을 결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슈카르 교수는 "팔레스타인 인민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자랑하는 억압자에게 대항하는 진정으로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은 힘의 우위를 우회할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인의 투쟁이 가장 큰 효과를 거둔 것은 1차 인티파다(민중봉기) 기간이던 1988년이다. 당시에 팔레스타인인은 의도적으로 폭력적인 수단의 사용을 억제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와 정치체(군대 포함)는 깊은 도덕적 위기를 맞았고, 이는 이스라엘의 지도부와 아라파트가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협상하는 핵심 계기가 되었다. 물론 희망적 사고에 빠져 있던 (무능한) 팔레스타인 지도자들 때문에 협정 내용은 결함 투성이었지만"이라고 말했다.
아슈카르 교수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억압, 군사 점령, 정착민 식민주의 확장에 대항하는 대중의 정치적 행동에 의지해야 한다"며 "팔레스타인 인민은 역내에서 이란 같은 전제 정부가 아니라 그런 억압적인 체제에 맞서 싸우는 인민의 지지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공격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르게 돼 있다. 인티파다와 같은 폭력적 수단을 억제하는 것이 이 분쟁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고 민간인 공격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현재 이스라엘 집권세력에 기존과 같은 방식의 저항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식량 공급 센터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습을 가하고 민간인을 죽이는 이스라엘의 잔인함에 비폭력 대응이 적절한 수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의 희생과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역량보다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 미국이 말로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힐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의 휴전 결의안에 찬성하는 등 실질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
미국의 행동이 없다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은 3만 명을 넘어 4만, 5만, 어쩌면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이를 '학살'로 쓸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학살에 동조할 것인가, 학살을 끝낼 것인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몰아내기 위해 새로운 선거가 필요하다는 척 슈머 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주장이 경고로만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의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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