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코스피 5000’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메기’ 있다는데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기업대출 많은 유럽은 성장 없어
韓은 2년만에 벤처 투자 반토막
대출 의존해 혁신 뒤처질 우려
도전정신 자극 위한 ‘메기’ 필요
대주주 견제위한 행동주의 적격
시가 아닌 장부 기준 세제 개정도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6조8600억달러로 2012년(16조2540억달러) 대비 1.6배 성장했습니다. 반면 유럽 GDP는 지난해 15조700억달러로 2012년(14조6501억달러)과 거의 비슷합니다.
양자가 차이가 난 요소 중 하나로 ‘투자와 대출’이 꼽힙니다.
미국의 GDP 대비 기업 대출 비율은 지난 2022년 기준 78.06%(국제통화기금 자료)로, 프랑스(161.96%), 스위스(143.09%), 네덜란드(136.8%) 등에 비해 낮습니다. 반면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GuruFocus 자료)은 지난해 2월 기준 179.4%로 프랑스(124.58%), 독일(57.62%), 스페인(55.25%), 이탈리아(38.9%) 등보다 높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투자가 더 활발하고, 유럽은 은행을 중심으로 한 대출이 더 활발하다는 의미입니다.
위에 언급한 통계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기업대출 비율은 119.64%,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은 98.24%입니다. 미국과 유럽 사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2010년대 한국은 벤처신화를 통해 자본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VC(벤처캐피탈)와 PE(사모펀드) 투자액이 2021년 고점일 땐 연간 90조원에 달했습니다. 쿠팡 두나무 배달의민족 등 성공사례가 넘쳐났고, 조 단위 사모펀드 사업가(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1000억원대 VC 투자자 등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IT 버블이 꺼지면서 플랫폼 위주의 산업혁신이 더 이상 성공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투자 위축으로 인해서 2년 후인 지난해 VC와 PE 등을 합친 투자액은 약 40조원으로 2021년 대비 반토막 났습니다.
그 빈자리는 기업 대출이 채우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예금 취급기관의 기업 대출(산업별 대출금) 잔액을 공개합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기업 대출 잔액은 1875조7000억원으로 2018년(1121조3000억원) 대비 약 750조원 늘어났습니다.
‘벤처 신화’가 꺼진 상황에서 국내 금융은 정부와 은행 중심의 ‘대출’ 중심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기업의 직접금융(주식+회사채) 순증액이 10조7000억원인 데 반해 간접금융(대출+정부융자) 순증액은 41조원에 이릅니다. 기업이 직접금융(투자)보다 간접금융(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하고 KDI 부원장에 현재 재직 중인 고영선 부원장은 최근 한 매체에 출연해 “중소기업을 위한 각종 금융정책이 이어지면서 미국처럼 중소기업이 빠르게 대기업으로 커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OECD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은 250인 이상 대기업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이르는데, 우리는 14%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만든 각종 정책금융이 ‘좀비기업’만 주로 양산하고, 양질의 일자리에 기반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재벌그룹은 2세 3세 4세로 넘어갈수록 도전정신이 줄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각종 저금리 정책금융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이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자동차·베터리를 선점해서 그나마 한국 경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 주주행동주의 대표주자인 강성부 KCGI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참호구축효과(Entrenchment Effect)’를 언급했습니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최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워야 할 군인이 참호 안에 머물면서 돌격하지 않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만큼 기업들의 도전정신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죠.
강 대표는 참호효과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한국 기업에 가장 필요한 건 ‘메기’라고 말합니다.
오너일가 체제든, 전문경영인 체제든 관계없습니다. 혁신을 회피하고 도전을 꺼리는 경영인에 대해선 잘못을 지적해야 합니다. 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주주’입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 대주주,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행동주의 펀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행동주의 펀드는 직접 주주가 되거나 혹은 소액주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법과 자본시장법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가 아닌 ‘주주’로 확대 △분할 합병 상장폐지에 대해선 일반주주의 다수결 결의 △소각 목적으로만 자사주 매입 △집중투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및 전자투표제 도입 등이 필요합니다.
공정거래법에선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포괄적 규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의 개정이 필요하고, 세법은 △상속증여세 세율 완화 △배당소득세율 인하(분리과세 도입) 등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경영을 일반 주주들이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집중투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되, 재벌 오너들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억누르지 않게끔 상속증여세율 완화 등도 하자는 겁니다. 상속증여세율도 무작정 낮추기보다는, 저PBR 기업(장부가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에 대해선 시가가 아니라 장부가 기준으로 상속증여세율을 메기게끔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기업 본질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더욱 더 혁신 경영에 나설 겁니다.
저출산으로 더 이상 받아줄 인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대출’을 통한 부동산 부양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입니다. 이보다는 투자 중심의 자본시장을 더욱 키워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행동주의, 즉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겁니다.
한 행동주의 펀드 대표는 “부동산 가격은 지금의 절반, 그리고 주가는 지금의 2배가 되어야 한국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스피가 5000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야 투자 자금이 몰리면서 혁신 기업들이 육성되고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도 낮추는 선순환 효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돈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부동산에 대해선 엄격한 총량 대출 관리를, 그리고 주가에 대해선 투자자(특히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겁니다. 정부가 순차적으로 발표할 기업밸류업 프로그램이 내실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국경제가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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