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민심은 이제 "윤석열보다도 한동훈"? 맞나?
보수 텃밭으로 분류되는 부산·경남(PK) 지역에도 격전지가 있다. 부산 북구갑·사하갑, 경남 김해을·양산을 등에선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며 'PK정서를 넘어서는 인물론'을 내세워 이른바 낙동강벨트의 전선을 견고히 형성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4일 "낙동강벨트 수성을 위해 꼭 탈환해야 하는 지역"을 콕 집어 부산 북구와 사하구, 경남 김해시를 찾아 유세 지원에 나선 이유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공개된 방송사 여론조사(JTBC)에선 한 위원장이 찾은 해당 지역구에서 민주당 전재수(북구갑)·최인호(사하갑)·김정호(김해을) 후보가 국민의힘 서병수·이성권·조해진 후보를 각각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며 인물론의 건재를 과시했다. 대통령발 의대증원 이슈의 효력이 다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데다, '비명횡사' 논란의 공천국면도 점차 전환세를 보이고 있으니 국민의힘 측에는 비보가 겹친 셈이다.
본격적인 지역행보에 나선 당과 지역의 지지자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해답은 여전히 '한동훈'이었다. 한 위원장은 14일 부산·경남행에서 새롭고 구체적인 메시지보다는 지역과의 스킨십 그 자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도 방문 당시 꺼내든 전통시장 지원 법률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야당에 대한 통상적인 정도의 비판이 다시 입에 올랐을 뿐, 간담회는 물론 기자들과의 백브리핑 자리에서도 현안과 이슈에 집중하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반면 지역 곳곳에서 몰려든 지지자들과 현지 상인들의 격한 환영 속에서 애초의 동선이 변형되거나 일정이 지연되는 등, 부산에서 한 위원장과 지역민들 사이의 접점은 그 어느 때보다 확장된 모습이었다. 북구의 구포시장에서도 사하구의 괴정시장에서도 한 위원장 개인의 인기는 돋보였다. "얼굴 한 번만 보여달라", "한동훈 보러 멀리서 왔다"는 등의 외침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구포시장의 한 상인에게 지역의 분위기를 묻자 "윤석열보다도 이제는 한동훈"이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PK 정서 속 한동훈 역할론 강고하지만 … 지지자 사이 '동상이몽' 보였다
한 위원장 역할론은 기본적으로 보수 정당에 힘을 싣는 PK 정서에 기반을 뒀다. 특히 지난 대선부터 여당의 최대 정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비교 속에서 한 위원장에 대한 호감도는 빛을 발했다. 구포시장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60대 여성 김모 씨는 "전재수는 괜찮아도 이재명은 싫다"며 "이재명은 '형수 욕설'도 그렇고 범죄가 몇 갠가, 너무 뻔뻔하다. 한동훈은 젊고 잘생긴 데다 말도 잘한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무조건 국민의힘을 찍을 것"이라고 강조한 김 씨는 "하여튼 사람들 말 들어보면 저쪽(민주당)도 많다, 그런데 인물로 보면 한동훈밖에 없잖나"라고 총선에서의 한동훈 역할론에 힘을 더했다. 지역인물보다도 중앙의 인물이 키워드라는 셈이다. 그는 지역 현안에 대한 여야의 정책 비교와 한동훈·이재명 등 주요 인물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묻는 질문에도 "나는 아직까지는 인물이다. 그리고 인물하면 한동훈"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 엇갈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같은 시장에서 "빨갱이는 절대 안 된다"며 전형적인 PK 정서를 보인 70대 남성 서모 씨에게 '한동훈이냐 윤석열이냐' 하고 묻자, 서 씨는 "말이 되는 소리냐" 되물으며 "한동훈이가 어머니면 윤석열 대통령은 아버지"라고 답했다. 물론 '아버지가 더 중요하다'는 노년 남성의 정서를 담아낸 답이었다. 함께 있던 7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도 "윤석열이 있어서 한동훈도 있는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서 씨는 지난 1월 '김건희 리스크'를 두고 불거진 한·윤 갈등에 대해서는 "안 돼, 안 돼, 그러면 안 되고 잘 포장을 해서 가야지"라며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이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서 씨를 비롯해 구포시장의 한 기름집에 모여 있던 4명의 상인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모두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민주당 측 지역구 현역 전재수 의원에 대한 평판을 묻자 "전재수는 예전 국민의힘 의원들이 닦아 놓은 걸 그대로 한 것뿐"이라며 "정부·여당이 지역구를 잡아야 여기가 무조건 발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반면 이 시장에서 30년간 점포를 운영해왔다는 60대 여성 이모 씨는 서 씨와 같은 강성보수층 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의견을 보였다. 이 씨는 "윤 대통령도 좋아하지만 고집이 세서 좀 꺾이는 맛이 없는데, 그래서 (윤 대통령이) 조금만 양보하면 좋겠다"며 "아무래도 한 위원장이 말을 하셔서 (중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게선 볼 수 없는 모습을 한 위원장이 채워주길 기대하는 셈이다.
이 씨는 특히 의료계와의 강대강 대치로 이어진 의대증원 이슈에서 윤 대통령의 "고집"이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맥에 생긴 혹 때문에 지금 당장 입원해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파탄이 나니까 수술 날짜를 못 잡았다"며 "조금 타협적으로…(했으면 좋겠다.) 이게 자존심의 문제 아닌가, 조금만 양보했다가 1년 뒤에 수를 늘리든지 하면 좋겠는데 한 치의 양보가 없으니까..."라고 말을 흐렸다.
그는 총선에서의 지지 정당을 묻는 질문엔 "저는 오로지 국민의힘 한길"이라고 답하면서도 "그런데 계모임이나 이런 데 나가보면 아닌 사람들도 많더라, 특히 젊은 세대들 그런 사람들도 보면 민주당 편도 많다. 우리 딸내미 친구들 보면 그런 것(성향)도 있으니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고 부산 지역 민심을 평했다. 한동훈 역할론이 총선의 결정적인 키를 잡기 위해선 윤 대통령과의 동행이 아닌 독자적인 매력을 보여야 한다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정서의 틈새'를 적극적으로 공략할 전망이다. 부산의 한 민주당 관계자는 "부산 지역 민심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건 맞지만, 불리한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인물 경쟁력으로 그를 극복한다면 당선이 가능하다"며 "지역의 인물 경쟁력이냐 반 민주당 정서냐, 어떤 것이 우선되느냐에 따라 판세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동훈 역할론의 부상에 따른 대책을 묻는 질문에도 "한 위원장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저희가 봤을 때 이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것 이상의 대중적인 인기로 보기에는 애매하다는 판단"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의 공천잡음부터 정부의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해외도피설까지 여야의 "못하기 경쟁"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한 위원장이 중도층의 확실한 지지를 얻으며 그 구도를 돌파할 만큼의 확장력을 가지진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한 위원장은 김해 간담회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전 장관 논란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분이 지금 내일이라도, 정말 필요하다면 공수처에서 부르면 안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며 사실상 정부의 손을 들었다. 지난 김건희 리스크 국면 당시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해당 주제에 대한 로우키 입장을 유지했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여당 공천이 '결국은 친윤불패'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한 위원장의 중도확장성에 대한 의문은 낮은 대통령 지지율 속에서 그의 역할의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尹, 청년들에겐 탄핵 당시 박근혜처럼 욕먹어" … 청년표심·정권심판론 등이 변수
고전적인 지역정서가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라 기대되는 청년세대에서는 어떨까. '청년은 곧 진보'라는 정치권의 신화가 깨진 지는 오래지만, 무당층의 비율이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두꺼운 청년세대의 표심은 시기와 지역을 불문하고 선거의 변수로 평가되고 있다.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이라는 대전제가 공고한 가운데 부산지역 청년들의 민심에서도 변수가 포착됐다.
본인의 정치성향을 진보정치라 밝힌 20대 남성 손모 씨(20)는 자신이 "민주당 지지자는 아니"라면서도 "윤석열 정권의 퇴진이 지금 총선의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민주당 중심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찍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 집권 당시에도 퇴행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인권 등을 위한) 기본적인 논의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게 현 정권의 상황"이라는 점이 그의 표심을 갈랐다.
손 씨는 본인처럼 진보정치를 추구하는 유권자가 아니더라도 "윤 정권에 대한 평가는 안 좋다"는 점을 부산 지역 청년세대 표심의 핵심으로 짚었다. 특히 정권 초기 '킬러문항' 관련 입시정책 변화가 10대~20대 초반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손 씨는 "촛불집회 1~2년 전쯤에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욕하던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때 분위기처럼 윤 대통령을 욕하고 비판하는 분위기들이 학내에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더군다나 올해 들어 대통령에 대한 여러 의혹 같은 것들이 터지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비리, 무능 등 이미지가 강해진 느낌이다"라며 "PK 지역이라 해도 이번에는 판세가 뒤집힐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여당엔)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대선 국면 당시 작용했던 소위 '이대남 효과'와 관련해서도 "당시 윤 대통령이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하며 (남성을) 현혹하는 전략을 썼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젊은 남성들 사이에선 그 전략에 대한 믿음도 깨지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대남 효과가 유지되더라도, 오히려 '원조 안티페미' 정치인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개혁신당 쪽으로 표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여당 총선의 핵심 카드인 한 위원장이 여당 내에서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기성 정치인의 이름값보다 개별 의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년세대 사이에서도 공유되는 정서였다. 북구갑에 거주하는 20대 여성 정모 씨는 민주당 전재수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며 한 위원장에 대해 "정치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당원이나 중앙정치 이슈에 대해 갈라치기를 하는 것 같아 보여 (총선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고 평했다.
정 씨는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국민의힘에서 내는 메시지나 그들의 정치기조, 정책방향에는 동의할 수 없는데다 부산은 특히 보수진영이 득세하고 있어 그것은 막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본인 표심의 취지를 밝혔다. 다만 그는 △지역·청년문제에 대한 각 정당의 진정성 부족 △의제 없이 서로를 물어뜯는 중앙정치 내의 모습 등을 이유로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취지의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월 서울 숭실대학교, 이달 충남 천안 백석대학교를 찾아 대학생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청년문제 해결을 강조한 바 있지만, 전임 문재인 정부 당시의 청년기본법 신설과 같은 거시적인 청년정책 로드맵을 구축하는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그는 지난 1월 부산을 첫 방문했을 당시에도 '지역청년을 위한 지원정책을 만들겠다'고 강조했지만, 이후엔 외려 지역격차의 관점에서 이미 비판 받은 바 있는 '메가서울' 정책을 재추진하기도 했다.
부산 지역에서 오랫동안 청년정책 관련 활동을 벌여온 중견 활동가 엄모 씨는 이 같은 상황과 관련 "이번 총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들 '문제가 있다'고 말할 뿐 새로운 의제가 아무것도 없다"며 "(여당의 경우) 지역에 청년들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면서 김포시 서울편입 정책 등 여전히 사람들을 서울로 끌어들이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년정책으로 한정하더라도 윤 대통령이 청년 연령 상향 정책을 발표했다가 취소하는 등 전형적인 포퓰리즘에만 매달린다"고 지적했다.
지역의 청년들을 흡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의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결국 상대 정당에 대한 비호감도를 높이는 방식의 선거전략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책 부재'와 그로 인한 한동훈 역할론의 한계는 여당 내에서도 점차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주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위원장의 부산 방문 하루 뒤인 15일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중요 국가정책 발표는 하나도 없고 새털처럼 가볍게 처신 하면서 매일 하는 쇼는 셀카 찍는일 뿐이니 그래가지고 선거 되겠나"라고 꼬집은 바 있다.
그런 와중에 발발한 '대통령 리스크'가 청년의 표심에 영향을 줄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엄 씨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출국을 보면 (출국금지 처분을 받아도) 누군가는 그냥 쉽게 출국할 수 있구나, 이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문제는 '몰카를 찍으면 가방을 받든 말든 사실 별 문제가 아니구나', 이런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치가 상식에서 벗어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힘이 '조국사태'와 같은 문제를 청년들의 공정문제로 집중 공략했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인상적인 대목이다.
대통령실발 정치이슈가 지역의 '정권심판론'을 재점화할 수 있을지는 청년표심을 떠나서도 앞으로 남은 주요 변수로 전망된다. 한 위원장이 이 전 장관 해외출국 문제에 대해 '문제없다'는 정부 측 입장을 그대로 내놓은 이날, 그가 방문한 괴정골목시장 유세현장에는 부산 지역 해병대예비역연대 소속 예비역들이 "이 전 장관의 해외출국과 채 상병 특검에 대한 한 위원장의 입장을 알려 달라"며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배호성 해병대예비역연대 부회장은 기자와의 현장 인터뷰에서 "저는 무당파라서 국민의힘 소속도 민주당 소속도 아니다. (해병대 사건을) 너무 안 알아주니까 나왔다"며 "한 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주십사, 좀 알아주고 이야기를 해 달라 하는 마음이다"라고 시위의 취지를 밝혔다. 다만 모여든 지지자들이 이들 시위에 반발하면서 현장에선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소동이 벌어졌다. 배 부회장은 '이재명이 와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물리적인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에 끝내 자리를 피했다.
[한예섭 기자(=부산)(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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