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몸’ 이정후 통증에 샌프란시스코 화들짝… 어차피 개막전 주전이다, 급할 이유가 없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선은 이번 스프링트레이닝 기간 중 이정후 몸 관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를 투자한 이정후의 몸에 어떤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다. 조금만 통증이 생겨도 무조건 휴식이다. 당장 1년이 문제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에 6년을 베팅했고, 이정후를 둘러싼 어떤 위협 요소도 용납하지 않을 태세다.
이정후는 16일(한국시간) ‘2024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오클랜드와 경기에 선발 라인업에서 빠져 의아함을 자아냈다. 이정후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로스터 주축 선수들은 이제 서서히 경기 출전 빈도를 높이며 정규시즌에 대비해야 할 때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는 15일이 휴식일로 모든 선수들이 다 휴식을 취했기에 이정후의 16일 오클랜드전 출전은 매우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이정후는 이날 라인업에서 빠진 것에 이어 아예 경기를 다 건너 뛰었다. 이유는 금세 드러났다. 햄스트링 쪽에 통증이 있었다.
지역 유력 매체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수잔 슬러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정후가 왼쪽 햄스트링의 긴장 증세로 향후 2~3일 정도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선 14일 경기에서의 여파가 이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2~3일 정도의 결장을 예고한 것은 이정후의 부상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가 관리 차원에서 이정후를 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증상은 14일에 있었다. 이정후는 14일 미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신시내티와 경기에 선발 1번 중견수로 출전했다. 이번 시범경기 들어 계속해서 선발 1번 중견수로 출전하며 자신의 개막전 포지션을 확인하고 있는 이정후는 이날 1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좋은 페이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날 이정후를 상대한 선수는 빠른 공을 던지고, 다양한 구종까지 던지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 받는 선발 투수로 발돋움한 우완 프랭키 몬타스였다. 몬타스는 2022년 시즌 중반 포스트시즌 승부수를 건 뉴욕 양키스의 부름을 받아 트레이드로 오클랜드를 떠나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이적 직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지난해 막판에야 돌아와 올해가 본격적인 재기 시즌이다.
수준급 투수를 상대로 이정후는 1회 첫 타석에서 차분하게 볼넷을 고르며 힘을 냈다. 이정후는 후속 타자 마이클 콘포토의 볼넷으로 2루에 갔고, 이후 호르헤 솔레어의 안타 때 홈을 밟아 득점을 올렸다. 이정후는 2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몬타스를 상대로 안타를 치며 이날 두 번의 타석에서 모두 출루했다.
다만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 왼쪽 햄스트링의 통증을 느꼈고, 결국 4회 세 번째 타석을 앞두고 루이스 마토스와 교체됐다. 이정후는 시범경기 들어 보통 세 타석, 경기 상황에 따라 많으면 네 타석을 소화한다. 계속해서 타석 수를 늘려가야 할 때 두 타석밖에 소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고, 경기 후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이정후가 가벼운 부상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가 다리 뒤쪽에 약간의 긴장 증세를 느꼈다. 다만 큰 문제는 아니다. 내일이 휴식일이기 때문에 이정후를 더 이상 경기에 뛰게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정후는 15일 휴식일을 거친 뒤 16일 오클랜드와 경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날도 결장했고, 2~3일 정도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큰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의 움직임이 그렇게 급박하지 않다. 문제가 심했다면 당장 14일 경기 후 이정후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 구체적인 진료를 받아야 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캠프지라고 해도 즉각적으로 진료에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14일 경기 후 이정후가 MRI 촬영을 했다는 보도는 없었다.
혹은 15일 휴식일이나 16일 경기 전 이런 소식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2~3일 정도만 빠지면 되는 수준이다. 2~3일 정도 햄스트링 상황을 계속해서 관찰할 전망이다. 문제가 없다면 다음 주부터는 경기에 나설 수 있다. 햄스트링은 굉장히 민감한 부위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어떤 동작 하나에 큰 손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한 번 다치면 고질병처럼 선수를 괴롭히는 경우도 흔하다. 샌프란시스코는 시범경기부터 굳이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정규시즌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 판단이 내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샌프란시스코의 이정후 관리는 시범경기 시작부터 그랬다. 이정후는 당초 2월 25일 시카고 컵스와 시범경기 개막전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일찌감치 애리조나 캠프에 합류한 이정후는 모든 준비가 다 끝난 상태였다. 몸 상태도 좋았다. 그런데 경기를 하루 앞두고 가벼운 옆구리 쪽의 통증이 있었다. 이에 샌프란시스코는 상태를 더 지켜보자며 이정후의 출전을 만류했다.
당시 이정후는 ‘스포티비뉴스’ 등 한국 취재진에 “조금 알이 배긴 정도”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국이었다면 뛰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야구 선수가 모든 경기에 100% 컨디션으로 뛸 수도 없고, 평상시라면 이 정도 통증은 안고 출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트레이닝파트의 생각은 달랐다. 조금 더 완벽한 상황이 됐을 때 출전하길 바랐다.
이정후는 이미 주전이 보장된 선수다.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쓴 선수를 벤치에 앉힐 미친 구단은 없다. 시범경기 성적이 어떻든 간에 이정후는 무조건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들어갈 선수였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이정후가 개막전 리드오프가 아니라면 그것도 충격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설사 이정후가 시즌 초반 약간의 적응기를 거친다고 해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어차피 6년 계약을 한 선수다. 시련이 있다면 계약 초반에 하는 게 낫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이번 햄스트링 부상 또한 그런 측면에서 관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개막전 주전이 결정되어 있는 선수를 무리시킬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이정후를 향한 샌프란시스코의 눈빛을 느낄 수 있다.
이정후로서는 갑작스러운 햄스트링 통증이 다소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햄스트링이 얼마나 중요한 부위인지 잘 알기에 이정후 역시 무리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장기 부상이 아니기에 타격감이 그렇게 끊어지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는 올해 시범경기 9경기 출전에서 타율 0.348(23타수 8안타), 출루율 0.423, 장타율 0.522, 1홈런, 3타점, 1도루, 4득점, OPS(출루율+장타율) 0.945를 기록 중이다. KBO리그에서는 최고의 선수였지만, 그래도 미국에서는 아직 한 경기도 뛰어보지 않은 선수다. 적응기는 반드시 필요한데 시범경기 성적은 무난하다는 평가를 넘어 좋다는 평가를 내리기 충분했다.
삼진(3개)과 같은 개수의 볼넷을 고르면서 이정후 특유의 선구안을 보여주고 있다. 2S에 몰린 상황에서도 쉽게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 설사 아웃이 되더라도 타구를 그라운드에 넣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과감한 도루 시도를 통해 이정후의 발이 지금까지 과소평가됐음을 보여줬고, 0.522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서 빛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증명했다. 현재까지는 장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입 당시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부분 또한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공적인 시범경기 일정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 이정후는 자신의 시범경기 첫 출전이었던 2월 28일 시애틀과 경기에서 시애틀의 차세대 에이스이자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투수인 조지 커비를 상대로 2S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안타를 치며 상큼한 출발을 알렸다. 당초 메이저리그급 투수들의 공을 더 봐야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세간의 시선보다 더 빨리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어 3월 1일 애리조나와 경기에서는 역시 메이저리그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라이언 넬슨을 상대로 홈런포를 치며 파워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이정후는 이날 홈런 포함 두 개의 장타를 뽑아냈고, 모두 빠른 타구 속도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콘택트 능력에 가려 빛이 나지 않았던 일발장타력도 선보였다.
이후 이정후는 주루에서도 선입견을 계속 지워가는 등 성실하게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3월 2일 텍사스전에서 3타수 1안타, 3월 4일 클리블랜드전에서는 시범경기 첫 도루와 더불어 2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 1볼넷 1도루를 기록했다. 3월 5일 콜로라도전에서도 2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을 기록하며 좋은 감을 이어 나갔다.
3월 10일 오클랜드와 경기에서는 상대 좌완 투수 두 명에게 묶여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이정후는 그 다음 경기인 3월 11일 시애틀전에서 곧바로 좌완 상대로 안타를 치는 등 3타수 1안타를 기록해 슬럼프가 길지 않은 선수임을 증명해 보였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와 맞대결한 3월 13일 LA 다저스와 경기에서는 3타수 무안타에 머물렀지만, 그 다음 경기인 3월 13일 신시내티전에서 1타수 1안타를 기록하며 역시 두 경기 연속 무안타는 없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이정후에 기대한 그 모습이었다.
비록 2~3일 정도 휴식을 불가피하지만, 이정후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이정후는 16일까지 총 26타석을 소화했다. 시범경기에 들어가기 전 라이브게임 등을 포함하면 이보다는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섰다. 샌프란시스코의 시범경기 일정도 비교적 여유 있게 남아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는 17일부터 열흘 연속 게임을 펼친다. 넉넉하게 계산해 이정후가 7경기가 남은 시점 복귀한다고 하면, 페이스를 조금 더 끌어올린다면 3월 29일 열리는 샌디에이고와 시즌 개막전까지는 충분히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 뒤 경기에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크게 걱정할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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