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즐겁다! SBS '골때녀'가 남긴 건 '성평등' 그 이상
골때녀 속 스포츠는 '잘하냐 못하냐' 아닌 '열정과 즐거움'
특출난 개인 아닌 '새로운 도전' 타 스포츠 예능과 차별점
기존 문법 얽매이지 않고 사회 변화 읽어내는 미디어 필요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SBS 스포츠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 남긴 건 '성평등' 이상이다. 여성의 스포츠를 다룬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지만 골때녀는 '성장과 연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기존 예능과 차별된 지점을 보였다. 여기서 전해지는 진정성과 즐거움은 성별에 관계없이 축구뿐 아니라 일상 스포츠의 장벽을 낮췄다.
골때녀는 축구를 '누가 잘하냐 못하냐'가 아닌 '누구나 신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중점을 뒀다. 그동안 쉽게 변화하지 않았던 사회적 인식이 골때녀를 통해 바뀔 수 있었던 이유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2일 골때녀가 한국사회에 가져온 영향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듣고자 정윤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교수,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김은진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에게 골때녀에서 볼 수 있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골때녀 속 스포츠는 '잘하냐 못하냐' 아닌 '즐거움'
그동안 축구 행정조직이 여성 축구 대중화에 실패한 이유는 뭘까. 정윤수 교수는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체육회 등 스포츠 관련 기구에서도 청소년 체육, 여성 축구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해왔다. 그럼에도 여성축구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초등학교, 중학교 여학생들 중에서 대표 선수가 될만한 유망주를 뽑는 프로젝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많은 여성들이 축구를 편하고 즐겁게 접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축구에 관심이 높아지는 등 인식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사회적 흐름을 읽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골때녀 속 선수들은 현실 속 '나'와 다르지 않다. 축구 규칙을 몰라서 손으로 잡다가 '아차 손으로 잡으면 안되는데'라고 하기도 하고, 공을 향해 달려가다가 엇박자가 나기도 한다. 감독의 반응도 눈에 띈다. 출연진들이 축구를 못하는 모습을 보고 웃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뛰자고 독려한다. 골때녀가 일반 스포츠 예능과 다른 지점이다.
정 교수는 “과거 스포츠 예능에선 국가대표가 와서 출연진들을 코치해주다가 못하면 웃는 등 개그로 소비하곤 했다”며 “골때녀는 좀더 열심히 해보자고 화를 내고 파이팅을 외친다. 여기서부터 잘하고 못하고 문제가 아니라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하고 사람들이 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성장과 연대의 서사도 진정성을 보여주는 요인이다. 홍남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골때녀는 축구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반드시 치열한 경쟁만을 전제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을 다양한 서사를 통해 보여줬다”며 “여성 연예인의 축구라는 주제로 연습 과정, 팀워크의 형성, 몸에 난 상처, 진심 어린 참여와 독려 등을 보여줌으로써 성장과 연대의 서사를 재미있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특징은 골때녀의 '여자 축구'가 시청자들의 일상에 파고들 수 있게 했다. 가령 여성 개그맨 김민경씨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웹예능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과 운동선수 출신 여성들의 '노는 삶'을 담아낸 '노는언니' 등은 특출한 능력이 있는 여성 개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확장성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괴리가 있단 점에서 예능의 기본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관련해 홍남희 교수는 “(운동뚱, 노는언니 등과 달리) 골때녀의 서사는 도전에 벽은 없다는 것을 직접 보여줬단 점에서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며 “전반적으로 여성 연예인들이 예능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기회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절박한 심정이 이입됐을 것이고,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활동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잘 어우려져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은진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강사도 “비슷한 예능이자 여성 야구팀을 다룬 웹예능 '마녀들'이 초보 여성들을 경험이 많은 남성들과 대결시키거나 전국 제패를 목표로 하는 등 무리한 진행으로 주인공 팀의 무능력만 부각한 것과 달리, '골때녀'는 모두 초보인 여러 팀이 대결을 벌여 나름 공정하고 현실적인 규칙 아래 활약할 수 있었다”며 “초보 여성들을 데려와 프로 남성의 룰 아래 활약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비단 스포츠 예능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부분에 적용해 볼만 하다”고 했다.
자유로운 신체의 즐거움 추구하는 경험 전해
출연진들이 본인의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느끼는 즐거움이 공유된다는 점도 골때녀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비결이다. 정윤수 교수는 “성별에 관계없이 주눅든 자신의 신체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골때녀를 보면서 '정말 재밌고 열심히, 간절하게 하는구나'하고 좋아한 것”이라며 “성평등에 더해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즐겁게 뛰어다닐 때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는 보편적 의미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요일 예능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골때녀엔 의외로 40~50대 남성의 시청률이 높다. 김은진 강사는 “여성 출연자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 나이가 많거나 신체 조건이 좋지 않은 운동 초보의 성공, 과장된 웃음기 빼고 대결에 집중한 편집 등 다양한 성공 요인이 있다”며 “시청자들이 주목한 건 여성 출연자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이었고, 이는 여성들의 활약과 팀워크를 원하는 여성 시청자들, 진정한 스포츠 정신, 언더독(underdog, 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의 승리와 성장 서사를 원하는 남성 시청자들에게 모두 어필했다”고 설명했다.
정윤수 교수는 “여기서 중요한 건 이제 축구가 아닌 거다. 사회에서 고립돼왔던 20~30대들이 축구라는 매개로 사회적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살아보고 싶게 된 것”이라며 “이게 골때녀의 사회적 가치다. 축구가 아니어도 자전거를 타고, 등산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섞여 살고 싶다는 욕망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문법 얽매이지 않고 사회 변화 읽어내는 미디어 필요해
전문가들은 미디어가 고유 문법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남희 교수는 “예능은 사회적 흐름을 잘 읽어내면서도 선도하는 역할을 한다”며 “매우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수준에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써 골때녀의 의의가 매우 크다”고 했다.
김은진 강사도 “지역민, 장애인, 노인 등을 다룬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여성 장애인을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의미와 시청률을 동시에 잡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며 “미디어 업계가 하루 이틀 '장사'하고 그만둘 예정이 아니라면 사회 변화를 읽고 준비하고 싹을 키우는 시도와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1박2일, 비정상회담, 유퀴즈 등 예능은 너무 오랫동안 남성들의 영역이었다”며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다양하고 의미 있는, 올바른 시도들이 많아져야 미디어도 시청자도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홍남희 교수는 “여성 서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흐름이 다양한 여성 서사 예능을 제작하게 했고,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다보니 시청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골때녀와 같은 사례도 등장한 것”이라며 “성평등한 사회는 거창한 구호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화면에 등장하고, 다양한 작업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실현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홍 교수는 “비단 여성 서사뿐 아니라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송의 특성상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은 집단, 소재는 무엇인지 항상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제작진 구성에서의 다양성과 열린 자세가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윤수 교수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예능, 교양, 시사적 요소가 다 있는 것처럼 이젠 프로그램의 성격이 뒤섞이기 시작했다”며 “예능이냐 교양이냐 등 특정 방송 포맷에 얽매이지 않고 방송을 보면서 사람들이 얻고자하는 사회적 가치는 무엇이고 그 가치를 얼마나 재밌고 신선하게 보여주느냐가 미디어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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