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처음 간 식당’에서 범상치 않은 메뉴를 맛보다[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여기 있었네 인생 두루치기
‘또 뭘 먹어야 돼?’
오늘도 나는 치열하게 고민한다. 평일 저녁 6시 반, 이미 춥고 배고프다. 저녁밥 오디션 최종 결승 후보는 두루치기와 김밥이다. 두루치기와 김밥, 남이 보면 당연히 두루치기가 이길 것 같은 게임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김밥집은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지만 두루치기집은 아직 안 가본 식당이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식당은 선택하기 어렵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맛없음을 감내할 수 있을 만한 용기 말이다. 사실 돈이 많다면 얼마든지 실패해도 된다. 한 끼에 3만원씩 척척 내놓으며 조금도 상처받지 않는다면 무얼 먹어도 괜찮다. 그 가격에 맛이 없다면 그건 식당의 실패지 나의 실패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한 끼의 실패가 너무나 뼈아프다. 그나마 8000원 이하의 실패라면 용서할 만하다. 하지만 1만5000원이라면? 그런데 맛이 없다면? 맛이 없는데 심지어 몸에도 안 좋은 음식이었다면? 그날 내내 맛없는 식당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고,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간판을 가리키며 ‘이 집은 맛없는 집’이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참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식당을 관찰한다. 요즘은 지도 앱 리뷰만 봐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식당을 두고도 사람들은 다른 리뷰를 쓴다. ‘먹을 만은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집이에요’, ‘이 가격에 이런 음식 못 먹음’, ‘평가가 후해서 가봤는데 음식은 다 식어 있고 재료도 안 좋은 거 쓰시네요. 남의 말 믿을 거 못 됨요’. 중심가를 벗어난 동네에는 리뷰가 한두 개밖에 없는 집들도 많다. 이런 경우엔 더더욱이 나의 관찰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의 관찰력은 먹이와 생존을 위해 발달했다. 농경사회 전 인간은 어디에 먹을 것이 있을지 내내 찾으며 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 열매는 먹을 수 있는가?’, ‘이 벌레는 맛이 괜찮을까?’, ‘이 풀은 어떤 맛일까? 죽는 건 아닐까?’ 돌도끼를 든 원시인처럼 나는 심각하게 고민한다. ‘과연 저 식당은 맛이 있을까? 두루치기라는 음식은 먹을 만할까?’ 다행히도 현대인은 맛없는 것을 먹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처음 가는 식당을 앞에 두고 나는 무엇을 관찰하는가? 일단은 가격이다. 1만3000원 이상이면 좀 더 신중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1인분에 1만원이면 마음이 조금 쉽게 열린다.
다음은 간판을 본다. 간판은 조금 오래된 느낌이 있어야 한다. 누가 봐도 방금 오픈한 것 같은 식당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또한 가게의 겉모습을 본다. 가게 앞에 지저분하게 내놓은 물건이 별로 없고 입구가 반들반들하면 왠지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게의 이름도 중요하다. 진중하면서도 주제를 잘 드러내야 한다. 예를 들어 ‘청년의 맛’ 같은 이름의 가게라면 당장 탈락이다. ‘청년’이 요리하는 가게라는 것이 나에게는 이미 약간의 감점 요소인데 (나이 많으신 분들보다는 숙련도가 낮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뭘 만들어 파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젊음을 내세워 허세까지 부리는 느낌이 아주 마음에 안 든다. 반대로 ‘정명자 두부찌개’라면? 이름으로 벌써 합격이다. 뭔가 두부도 손으로 만들 것 같은 이미지고 자기 이름에 먹칠하기 싫어서라도 제대로 만들 것 같다. (주의: ‘청년의 맛’과 ‘정명자 두부찌개’는 모두 내가 만든 상호명이며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
가장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은 손님이다. 손님이 한 팀이라도 있는 집을 들어가게 된다. 손님이 바글바글한 집이다? 당연히 맛있겠지. 동행인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단골이 분명하다. 남 먹는 것을 몰래 봐서 죄송하지만 손님의 밥 먹는 태도도 중요하다. 밥알을 세며 깨작깨작하고 있는가? 아니면 맛있게 후루룩 찹찹 먹고 있는가?
손님의 부류도 중요하다. 만약 40~60대의 여성 그룹이 밥을 먹고 있다면 그 집은 안 봐도 맛있는 집이다. 이들은 절대 맛없는 곳에서 만남을 갖지 않는다. (그랬다간 큰일이 난다) 옷차림이 가볍거나 장바구니를 들고 있어 동네 주민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믿을 만하다.
여기서 과거의 현명했던 선택을 떠올려본다.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 있는 ‘봉평옹심이메밀칼국수’다. 이곳도 치열한 관찰 끝에 들어간 집이었다. 깨끗한 유리창 너머로 식당 안을 보니 평균 연령이 60대였다. 50대 여성분들이 서넛 모여 앉은 테이블도 여러 개였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연신내는 북한산 등산코스와 가까운 곳이다) 산에 올라갔다 와서 먹고 싶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검증된 김밥집 뒤로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고른 밥집
컴컴한 복도 지나며 ‘돌아갈까…’
잡내 없는 국물에 밥 한 공기 비비니
‘모든 게 용서되네’
“뭐 드릴까?”, “옹심이만 두 개요.” 간략한 메뉴와 손님들의 망설이지 않는 즉답이 더욱더 신뢰를 주었다. 같은 주문이 거듭되자, 2000원이 더 비싼데도 ‘옹심이만’이라는 메뉴를 시켰다. 앉자마자 직원이 무절임과 열무김치가 담긴 항아리를 내왔다. 보리밥 반 그릇도 같이 나왔다.
‘보리밥은 안 시켰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촌스럽게 처음 온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일단 주변을 살폈다. 옆 테이블을 보니 노부부가 보리밥에 무절임과 열무김치를 적당량 넣고 고추장에 슥슥 맛있게 비비고 있었다. 나도 똑같이 따라 했다. 옹심이는 익는 데 10분 정도 걸리는 음식이라 손님이 기다리기 힘들 것을 예상하고 보리밥을 먼저 주는 것이다. 심지어 건강식으로 다음에 올 탄수화물 폭탄을 대비시키다니. 이 식당 주인은 천재인가! 옹심이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을 관찰하며 나의 탁월한 선택을 다시 확인한다. 가게는 환하고 깔끔하다. 문 앞에는 메밀 포대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다. 어르신들은 인증샷을 찍지 않는다. 맛있다~ 를 연발하지도 않는다. 그분들은 그저 열심히 먹는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말이 없다.
보리밥을 비우자 내가 시킨 메뉴 ‘옹심이만’이 나왔다. 걸쭉한 크림수프 같은 것을 한 입 떠서 먹어보자, “와…” 하고 감탄이 나왔다. 내가 먹었던 어떤 국물과도 비슷하지 않았다. 들깨 국물보다 산뜻하고 감자수프보다 감칠맛이 난다. 젤리처럼 쫀득한 옹심이를 즐기며 씹다 보면 어느새 국물까지 바닥이 나 있다. 먹는 동안 다른 생각을 잊게 하는 훌륭한 맛이었다.
이전의 훌륭했던 선택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본다. 그래, 두루치기집에 가보자! 이참에 개척하는 거다! 수색역 건너편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여긴가?” 지도 앱을 보고 위치한 곳에 갔는데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입구를 찾지 못해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그제야 마트 구석에 허름한 계단이 보인다.
“음….”
계단은 컴컴하고 지저분하다. 척 봐도 청소한 지 한참 된 것 같다. 벽은 알 수 없는 얼룩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모든 용기가 사라진다. 이대로 그냥 김밥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쌀쌀한 공기에 여기까지 걸어오며 얼어붙은 몸이 지글지글 끓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 복도에 들어서니 그나마 덜 지저분한 여러 가게가 보인다. 그런데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쥐 죽은 듯 조용하다. 1990년대 유행했던 폰트로 ‘원조두루치기’라고 적힌 오래된 유리문이 보인다. 문 너머로 보니 불이 켜져 있고 직원 한 분이 지나가고 있다. 차라리 영업하는 날이 아니었다면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 안은 생각보다 넓었으나 아저씨들 몇명만 감자탕과 술을 먹고 있었다.
“뭐 드릴까요?” 간판 메뉴인 두루치기를 시켰다. 의자를 끌어다 앉는데 끈적한 테이블이 마음에 안 든다. 내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자네도 한 잔 받아!” 술 한 잔 들어가서 떠들썩한 아저씨들도 맘에 안 들고 쩍쩍 달라붙는 바닥도 맘에 안 든다. 이미 나는 이 음식을 싫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부부사장님으로 추정되는 여성분이 두루치기 2인분을 납작한 전골냄비에 담아 내왔다. 테이블에 있는 가스버너를 켜고 “고기가 익으면 드시면 돼요” 하고 가셨다. 이제부터는 인고의 시간이다. 과연 맛있을 것인가, 맛없을 것인가. 이 와중에 두부 사리를 시키는 것은 잊지 않았다. 지글지글 끓는 국물을 두부 사리에 끼얹어가며 10분 정도를 테이블에서 더 끓였다. 냄새는 괜찮다. 다 익었나? 드디어 한 입을 조심히 후후 불어 입으로 가져가 보니,
“…맛있는데?”
뜻밖에 맛이 있었다. 아니, 정말 맛있었다. 신선한 양파가 익으면서 신김치와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단맛이 난다. 돼지고기 비계도 잡내 없이 고소하다. 어깨에 힘을 풀고 밥도 한 술 입으로 가져가 본다. 고슬고슬한 백미밥이다. 국물을 적셔 먹으면 딱 적당할 정도의 찰기다. 두루치기 국물을 밥에 끼얹고 두부와 함께 먹으니 몸에 열기가 오르고 밥이 술술 들어간다.
비로소 모든 의심이 풀린다. 밥집은 밥만 맛있으면 된다. 올라오는 복도가 좀 지저분했기로서니 그렇게 의심을 하다니! 건물이 오래되면 그럴 수도 있지. 시끌벅적한 아저씨들도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활기차게 느껴진다. 시끄러움조차 맛의 한 요소다. 끈적한 테이블이나 바닥도 이해가 된다. 냄비는 얇고 불은 세서 밖으로 두루치기 국물이 끝없이 튀는 것이었다. 이건 매일 닦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하지도 않다. 테이블이 끈적하면 거기에 팔을 안 대면 될 일이다!
나의 오늘 식당 관찰은 모두 틀렸다. 하지만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두루치기와 밥을 싹싹 모두 비웠다. 배가 두둑하고 몸은 뜨끈하다. 나는 승리자다. 이 재미에 새로운 식당을 간다. 지도 앱에서 식당을 찾아 별 다섯개를 꾸욱 누른다.
나는 매일 먹는다. 매번 끼니를 선택해야 한다. 끼니를 선택할 때마다 가진 돈이 줄어든다. 그럴 때면 열심히 관찰하는 것으로 불안함을 달래려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결과는 랜덤이다.
그렇다고 먹던 것만 먹고, 가던 곳만 갈 수는 없다. 새로운 선택은 불안한만큼 재미있다. 도시를 관찰하는 동안 나의 뇌는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니는 원시인처럼 치열하게 돌아간다. 관찰 끝에 먹이를 구해 입에 넣는다면 이보다 큰 보상은 없다. 다음에도 새로운 단골집을 찾아 길을 헤매고 남의 가게를 염탐할 것이다. 내 관찰이 다 틀려도 괜찮을 것 같다. 하긴, 틀려 봤자 배부르기 밖에 더할까?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저서로는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걸스토크> 등이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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