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과 정반대의 길 가는 황선홍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아시안컵 우승 실패 후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경질 여부 이상으로 뜨거운 감자는 '골든보이' 이강인이었다. 대표팀 동료들과의 반목이 알려지며 이강인은 하루아침에 한국 축구의 대들보에서 문제아로 추락했다. 특히 주장 손흥민과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는 보도로 인해 '탁구 게이트'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이강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태극전사들이 원팀일 거라 믿고 지지했던 국민 여론도 싸늘해졌다. 이강인에 대한 비판 여론이 특히 거셌다. 축구선수 중 손흥민 다음가는 스타였던 이강인의 이미지는 기업 광고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3월 A매치를 앞두고 한 여론조사기관은 전국 18세 이상 남녀 526명을 대상으로 이강인의 국가대표 소집 여부와 관련해 찬반 조사를 했고 여론은 극명하게 대립했다. 이강인의 선발에 긍정적인 비율은 46.9%, 부정적인 비율은 40.7%였다.
내부 반목, 이강인만의 문제 아니라고 판단
이 논란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대한축구협회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장인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축구협회 소속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대표팀에 소집하지 않는 징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어중간한 답변을 했다. 징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진상조사에 대한 의지도 없었다. 선수들 스스로 봉합하길 기대하며 사실상 차기 감독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회피였다.
그 와중에 축구협회는 주요 선수들이 등장하는 3월 A매치 홍보 포스터에서 이강인을 제외하며 불난 여론에 부채질을 했다. 이강인에 대한 비판 공세를 꾸준히 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은 A대표팀 명단 발표 하루 전날에도 자신의 SNS를 통해 "아무리 공을 잘 차도 싹수없는 애들은 제외했으면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임시사령탑에 뽑힌 황선홍 감독의 결정은 달랐다.
황선홍 감독은 3월1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강인을 포함한 23명의 엔트리를 공개했다. 징계와 격려, 두 화두를 놓고 백가쟁명에 가까운 의견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황 감독은 '정면돌파'와 '결자해지'를 강조했다. 이미 이강인이 런던으로 날아가 손흥민에게 사과하고, 손흥민이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따가운 눈초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황 감독은 갈등 유발의 당사자가 대표팀에 소집돼 직접 해결해야 분열이 마무리된다고 봤다.
황 감독은 "두 선수(이강인·손흥민)와 소통했다. 이강인 선수는 스스로 팀원, 축구팬들께 사과하길 원한다. 손흥민 선수는 그런 이강인 선수를 보듬어 안았고, '화합해서 나아가자'라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강인의 합류가 대표팀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항간의 우려에 대해서는 "그런 여론에 공감한다"면서도 "전적으로 이 결정은 나의 몫이다. 이강인을 부르지 않으면 위기를 넘어갈 수 있겠지만, 다음에 부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공법을 강조했다.
황 감독은 지도자 이전에 선수로서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한 경험 많은 태극전사였다. 이러한 갈등이 두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전부터 대표팀 내에 내부 반목의 요인이 쌓여있었고 그것이 터진 순간에 두 선수의 충돌이 있었다고 봤다. "팀내에 그런 문제는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빨리 풀어지고, 다시 모아지면,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내가) 선수 시절 때도 했다"며 운동장 안에서 일어난 일은 운동장 안에서 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선수 선발 문제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대다수 지도자는 황 감독의 선택을 지지하는 모습이었다. K리그의 한 감독은 "감독 입장에서 선수를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은 두 가지다. 내가 추구하는 축구에 필요한 선수인가, 그리고 함께 선발되는 선수들과 동등한 수준의 선수인가다. 지금 이강인이 그 부분을 충족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강인은 아시안컵 이후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에서 여전히 주전급으로 활약 중이고, 최근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K리그의 또 다른 감독은 "감독이 아닌 축구협회가 결정했어야 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대표팀 운영원칙에 근거해 이강인이 책임질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면 징계했어야 한다. 그 과정을 건너뛴 게 문제 아닌가?"라는 의견을 냈다. 대표팀 감독이 지닌 선수 선발권을 징계에 악용하라는 여론이 생긴 상황 자체가 난센스라는 의미였다.
"어려울 때 피하고 쉬울 때 찾는 일은 안 해"
난제를 떠안은 황선홍 감독은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그는 "축구인으로서 어려울 때 피하고, 쉬울 때 찾는 식의 일은 하지 않는다"며 주변에서 말린 임시감독직을 수락했다. 이강인 건에 대해서도 같은 접근방식이다. 정식 감독에게 해결을 미룰 수도 있지만 그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것이다. 결국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불씨를 잡아 진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표팀 운영에서 방관만 거듭하다 큰불을 지른 클린스만 전 감독과는 다른 접근이다.
A대표팀 임시사령탑인 황선홍 감독은 이강인 문제 해결 외에도 확실한 미션을 부여받았다. 태국과의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2연전 승리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대표팀의 아시안컵 실패로 인한 분위기 전환은 필수다. 황선홍 감독은 백승호·권경원·조유민·김문환 등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외면받던 기존 국가대표에 새로운 얼굴을 대거 추가했다. 특히 최근 K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선수를 뽑아 눈길을 모았다. 이 역시 K리그를 얕잡아보는 모양새를 보였던 클린스만 전 감독과 정반대 행보다.
가장 눈길을 끈 선수는 울산의 골잡이 주민규다. 최근 3년 중 두 차례나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주민규는 만 33세 333일에 생애 처음으로 A대표팀에 승선했다. 역대 최고령 A대표팀 선발 기록이다. 특급 골잡이 출신인 황선홍 감독은 "축구에서 득점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최근 3년간 50골을 넣은 선수는 전무하다. 더 설명할 이유가 없다"고 발탁 배경을 말했다.
A대표팀은 3월18일 소집돼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태국과 홈경기를 치른다. 이후 태국 방콕으로 건너가 26일 원정경기를 한다. 2연승을 거두면 한국은 2차 예선 통과를 조기에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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