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합쳐 노후 대비?"... 요즘 맞벌이 '따로 통장' 이유는
10쌍 중 6쌍이 맞벌이, 공용 생활비 각출해
"경제적 자유 보장" 투자·소비 성향에 맞춰
"부부 소득·사용 몰라 자산 늘리기엔 불리"
"결혼 전 서로의 경제관 파악, 존중 전제돼야"
#결혼 7년 차 맞벌이 이지혜(33)씨는 매달 말일 남편과 공용 통장에 생활비를 넣는다. 이씨가 140만 원, 소득이 더 많은 남편은 160만 원을 각각 입금해 총 300만 원을 모은다. 주택자금대출 상환과 관리비 등 주거비와 식비, 통신비 등 공용 생활비로 사용한다. 둘의 월급의 나머지는 각자 자유롭게 쓴다. 노후 대비 저축도 따로 한다. 이씨는 "경제적 자유가 있으니까 결혼 전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어 좋다"며 "돈 때문에 서로 싸울 일도 없다"고 했다.
신혼부부 10쌍 중 6쌍은 맞벌이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통장을 각자 쓰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졌다. "결혼하면 통장을 합쳐야 잘 산다"는 옛말이 됐다. 여성 취업 증가, 가정 내 여성 지위 격상 등으로 남녀 경제관이 달라진 데다, 각자의 경제적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영향이다. 하지만 노후 대비 자산 증식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통장을 합치는 게 경제적이라는 주장도 뿌리 깊다.
"쓸 때마다 눈치 안 봐도 돼…투자도 성향대로"
'따로 통장' 부부들이 꼽는 가장 큰 장점은 경제적 자유다. 과거와 달리 투자나 소비가 다양해지면서 경제권이 중요해졌다. 5년 차 맞벌이 김모(39)씨는 결혼 첫해 통장을 합쳤다가 이듬해 분리했다. 양가 부모 용돈 등을 두고 배우자와 갈등이 빚어져서다. 김씨는 "형편이 다른 양가 부모에게 무조건 똑같이 용돈을 드리면서 문제가 생겼고, 돈을 쓸 때마다 일일이 상대의 의견을 묻다 보니 번거롭고 힘든 게 많았다"고 했다. 지금은 공용 생활비만 매달 30만 원씩 내고, 나머진 각자 알아서 쓴다. 김씨는 "돈 쓸 때마다 눈치 보는 일이 없어져서 좋다"고 했다.
투자도 각자 성향에 맞게 할 수 있다. 결혼 3년 차 진모(33)씨는 남편과 투자 성향 차이를 이유로 소득을 따로 관리한다. 남편은 위험 추구형, 진씨는 안전 추구형이다. 진씨는 "성향이 달라 둘 중 한 명이 어딘가 투자했다가 손해라도 나면 불만이 생길 게 뻔하다"며 "각자 재테크를 하면서 서로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투자하다 보니 분산 투자로 오히려 자산 증식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결혼 8년 차 맞벌이 정유라(36)씨도 남편과 통장을 따로 관리한다. 그는 남편으로부터 용돈을 타서 쓰는 데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했다. 개인사업을 하는 정씨는 남편으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은 적도 있다. 그는 "부부끼리 돈을 빌려준다는 게 서운하긴 했다"면서도 "하지만 남편 돈을 마치 내 돈처럼 사용했다면 오히려 돈 쓰는 일로 갈등이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남편에게 돈을 빌렸기 때문에 갚으려고 사업도 더 열심히 하고, 투자도 신중하게 했다"고 말했다.
"합치니 훨씬 많이 모아…유대감도 커져"
하지만 '따로 통장'은 부부가 서로 소득과 사용 내역을 공유하지 않아 새는 돈이 많다는 함정이 있다. 맞벌이 배모(30)씨는 신혼 초 각자 통장을 쓰다 6개월 만에 포기하고 합쳤다. 각자 쓸 수 있는 돈이 많아 씀씀이가 커졌고, 각출한 생활비가 부족하거나 외식 등 계획에 없던 비용을 써야 할 때 서로 눈치를 보게 돼 불편했다. 배씨 부부는 통장을 합치고 소비를 관리하면서 1년 만에 7,000만 원의 목돈을 모았다. 그는 "둘이 따로 통장을 썼던 6개월간 1,000만 원도 모으지 못했다"며 "통장을 합치니 저축도 많이 하게 되고, 유대감도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한 맞벌이 김모(34)씨도 배우자와 통장을 공유하고 있다. 김씨는 "주거와 노후 대비 저축, 양가 경조사 등 함께 사용하는 비용이 크다"라며 "육아부터 노후까지 같이 살기로 했다면 통장을 합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이유를 밝혔다.
부부 자산 관리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세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돈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맞벌이 가구 자산 관리의 최우선"이라며 "입출금이 자유롭고 금리가 높은 통장을 만들어 소득을 모은 뒤 사용처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우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도 "통장을 분리하면 이후 아이가 생겨 필요한 돈이 늘어나거나 공용 생활비 사용 등을 두고 상대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이혼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다만 이인철 변호사(법무법인 리 대표)는 "사전에 공용 생활비 범위를 잘 정하면 소득을 합치는 것보다 따로 관리했을 때 갈등 발생 가능성이 더 적었다"며 "소득 수준과 소비 성향이 비슷한 부부는 '따로 통장'이 관계에 더 유리하다"고 전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결혼 전 서로의 경제관을 파악하고 존중해야 결혼생활의 든든한 밑천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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