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로 돌아가고 싶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3. 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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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인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톡톡히 겪은 민족이다.

아일랜드가 독립을 선언한 뒤 많은 나라가 영국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사이 미국은 재빨리 아일랜드 정부를 승인하고 외교관계도 수립했다.

 2020년 대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직후 영국 BBC 기자가 그에게 소감을 묻자 "BBC라고요? 나는 아일랜드인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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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인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톡톡히 겪은 민족이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으며 격렬한 저항운동을 펼친 끝에 1921년에야 독립국 지위를 얻었다. 암울했던 시절 조국을 떠나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신대륙 국가로 건너간 이민이 많은 이유다. 영국에서 독립했다고는 하나 아일랜드 섬의 북부는 여전히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남아 있다. 6·25전쟁 당시 아일랜드는 공식적으로는 한국에 파병도, 의료 지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일랜드계 영국인과 미국, 호주 등의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들이 저마다 영국군, 미군, 호주군의 일원으로 한국에서 싸우고 피를 흘렸다. 우리 전쟁기념관은 “1000명이 넘는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6·25전쟁에 참전했다”며 “영국군 소속 130명, 미군 소속 29명, 호주군 소속 2명 등 최소 160여명이 6·25전쟁 중 전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일랜드 북서부 메이요주(州) 시민들이 2023년 4월14일 아일랜드 국기와 미국 성조기를 나란히 든 채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보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메이요주는 그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다. EPA연합뉴스
아일랜드는 특히 미국과 유대가 깊다. 미국 인구의 약 10%가 아일랜드계라는 통계도 있다. 1840년대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닥쳤으나 영국 지배자들은 수수방관했다. 아일랜드인들의 주식이나 다름없는 감자를 구할 길이 없었다. 무려 100만명 가까운 인구가 아사할 정도로 극심한 식량난 속에 다수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미국 내 아일랜드계 공동체를 형성한 주역이 됐다. 아일랜드가 독립을 선언한 뒤 많은 나라가 영국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사이 미국은 재빨리 아일랜드 정부를 승인하고 외교관계도 수립했다. 올해는 미·아일랜드 수교 100주년이다. 현재 미국인 약 10만명이 아일랜드인 소유 기업에 다니고 있으며, 아일랜드는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한 10대국 중 하나다. 아일랜드의 최대 명절 ‘성 패트릭의 날’(3월17일)은 미국에서도 매년 기리는 기념일이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미국 대통령에 오른 이도 있다. 존 F 케네디(1961∼1963년 재임)와 조 바이든(2021년∼현재)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바이든은 1840년대 대기근 때 먹고살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간 이민자의 후손이다. 아일랜드 북서부 메이요주(州)와 동북부 라우스주가 바이든 조상들의 거주지였다. 2020년 대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직후 영국 BBC 기자가 그에게 소감을 묻자 “BBC라고요? 나는 아일랜드인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역사적 악연을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기회만 있으면 아일랜드가 낳은 세계적 문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와 셰이머스 히니(1939∼2013)의 시 구절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일랜드계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최고의 시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레오 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왼쪽)가 정상회담 시작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5일 레오 바라드카 아일랜드 총리가 백악관을 찾아 바이든과 정상회담을 했다. 미·아일랜드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고 이틀 앞으로 다가온 성 패트릭의 날을 함께 기릴 목적으로 성사된 회동이다. 바이든은 거의 1년 전인 지난해 4월 아일랜드를 국빈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아일랜드 국민은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세계 최강국 정상에 오른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바이든은 “아일랜드에서 너무 큰 환대를 받아 나와 가족들이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싫었을 정도였다”고 농담을 건넸다. “아일랜드를 다시 방문할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주저 없이 “나는 항상 아일랜드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져 연임에 실패한다면 바이든의 임기는 10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아일랜드에 다시 가고 싶다는 그의 꿈은 과연 이뤄질까.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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