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자 비장애인 중년 남성인 나, 농담의 대상을 가려야 하는 이유 [ESC]

한겨레 2024. 3. 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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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비아데스는 고대 아테네의 청년 정치인.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은 시민의 비판을 엉뚱한 쪽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내가 권력자를 풍자하는 농담을 하면 안 될까? 나는 나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을 꼬집는 농담을 해도 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다만 나와 다른 처지의 동료 시민을 공격하는 농담을 하다가는 사고를 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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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웃기고 싶다

알키비아데스는 고대 아테네의 청년 정치인. 얼굴도 잘났고 집안도 좋았다. 키우던 개마저 잘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알키비아데스가 개 꼬리를 잘라버렸다. 사람들이 놀라 그를 비난하자 알키비아데스는 도리어 반겼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한동안 내가 개 꼬리 자른 이야기만 하고, 내가 저지른 더 큰 잘못은 이야기하지 않을 테지.”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은 시민의 비판을 엉뚱한 쪽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이야기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고대 아테네의 정치를 풍자하는 농담이었을 것도 같다. 농담과 웃음에 대해 철학자며 작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숱한 말과 말 사이 딱 하나 공통된 의견이 있다. 웃음에는 공격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공격의 칼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웃음은 강력한 무기다. 이 무기를 잘 쓰면 힘으로 남을 억누르는 자도 쓰러뜨릴 수 있다. 기득권을 풍자하는 유머는 그래서 널리 공감을 받는다. 반면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농담은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하다. 누가 진짜 약자이고 누가 강자인지 한눈에 안 들어온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비장애인 젊은 남성은 약자일까, 아닐까? 여러 사회적 지표를 보면 이 사람들이 억울해할 만하다. 옛날 남성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얻는 것은 더 적다. 하지만 이들은 같은 또래 여성보다, 장애인보다, 주류에 가깝기도 하다.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어떨까? 나는 수도권에 사는 한국계 한국인이며 이성애자며 중년 남성이다. 어느 모로 봐도 사회 주류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가 권력자를 풍자하는 농담을 하면 안 될까? 나는 나보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을 꼬집는 농담을 해도 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다만 나와 다른 처지의 동료 시민을 공격하는 농담을 하다가는 사고를 치기 십상이다. 내가 가진 것이 이미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도 자꾸 잊는다. 내 또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도 가끔 잊는 것 같다. 농담을 가려야 할 처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옛날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의 큰 허물을 숨기기 위해 애먼 개의 꼬리를 잘랐다. 오늘날 어떤 정치인은 웃음이라는 무기를 약한 자에게 돌린다. 자기네가 비난받지 않기 위해 시민들끼리의 싸움을 반긴다. 젊은 남성이 젊은 여성을,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웃음으로 공격하는 공간을 찾아가 슬며시 끼어든다. 웃음의 뒤에 숨어 차별을 부추기는 셈이다. 갈라치기 잘하는 정치인이 큰 권력을 잡는 일이 있다. 웃음을 사랑하는 나는 웃음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 일이 두렵다. 이번 한국 총선은 잘 넘길 수 있을까? 그나저나 연말의 미국 대선은 어떻게 될까?

글·그림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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