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일류를 꿈꾸던 삼성, 10분으로 정리하는 ‘황금기’ [창+]

서영민 2024. 3. 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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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초기

미국은 전체 2차 대전 기간 동안 태평양 전장에 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폭탄을 투하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북베트남의 핵심 보급 통로 길이 165미터 탄호다리. 이 다리가 그 증거입니다.

당시 미국은 이 다리를 무려 638번이나 폭격했지만 파괴에 실패했습니다.

마구잡이로 폭탄을 투하한 탓에 명중률이 극히 낮았던 겁니다.

문제를 푼 건 반도체 칩이었습니다.

미사일에 장착해 실시간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레이저 유도 칩이 상황을 완전히 바꿉니다.

<인터뷰> 크리스 밀러 / 역사학자, 터프츠 대학교수, <칩워> 저자
“1972년에 처음으로 정밀 유도 폭탄을 배치했고 단번에 다리를 맞췄습니다. 초소형 전자공학 기술을 활용해 무기를 더 정확하게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정밀성과 컴퓨팅 기술이 전쟁의 미래를 완전히 바꿀 것임을 보여준 것이죠.”

냉전과 러시아사를 연구하던 역사학자 크리스 밀러가 국가 안보의 언어로 칩을 이해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인터뷰> 크리스 밀러 / 역사학자, 터프츠 대학교수, <칩워> 저자
“왜 냉전 초기에는 미국이나 소련이나 모두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 같은 중요 무기를 다 만들 수 있었는데, 40~50년 뒤 냉전이 끝날 무렵에는 소련이 그토록 뒤처지게 됐는지 이해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게 소련이 칩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반도체 생산 능력의 부재로 군비경쟁에서 패하게 된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전략적이고 치명적인 기술, 칩

이 칩을 60년간 지배한 법칙이 있습니다.

<인터뷰> 크리스 밀러 / 역사학자, 터프츠 대학교수, <칩워> 저자
“무어의 법칙은 1965년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가 발표한 이론입니다. 칩 집적회로의 트랜지스터 개수가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죠.”

<인터뷰> 이승우 / 유진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 <반도체 오디세이> 저자
“18개월에 두 배씩 간다, 2년에 두 배씩 간다, 약간 느려지기는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이뤄진다는 의미가 되는 거고요.”

<인터뷰> 찬드라 초우더리 /스탠포드 대학 전자공학과 교수
“이게 칩 산업에 정말 중요한 이유는 ‘로드맵’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어요. 특히 매우 단순한 로드맵을 제공한다는데 무어의 법칙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인터뷰> 정인성/ 전 SK하이닉스 연구원 <반도체 제국의 미래> 저자
“기술 개발을 하게 되면 원가는 싸지는데 성능은 높아지는 거죠. (잘 하는 기업은) 원가로 이제 다른 경쟁자들을 누를 수 있다. 이런 의미도 되는 거죠. 그리고 승자 기업 입장에서 아주 좋은 기술이었지만, 나머지 패자 기업들에게는 굉장히 가혹한 규칙이었던 거죠.”

똑같이 칩을 잘 만드는 두 기업이 있습니다.

변화는 한 기업이 첫해 번 돈을 모두 R&D에 투자해 성공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듬해, 더 좋은 칩을 더 싼 원가로 더 많이 만든 이 기업은 가격을 낮추는 치킨게임에 들어갑니다.
이익은 줄었지만 괜찮습니다.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렸고 경쟁자의 이익은 3분의 1토막을 냈으니 성공한 출혈경쟁이었죠.

다급해진 경쟁자, 빚을 내서 똑같은 R&D 투자에 동참하지만,
3년 차, 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게다가 치킨게임은 더 심해져서, 뒤처진 쪽은 더 뒤처져 아예 적자를 냅니다.

선도기업은 더 투자하죠.
결국 철수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혼자 남은 기업,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TSMC 창업주 모리스 창은 대학 강연에서 이게 1984년부터 3년간 세계 D램 시장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

승리한 기업은 일본, 퇴출된 기업은 미국입니다.

똑같은 치킨게임은 90년대에도 한차례 더 되풀이됩니다.

이번에는 앞서 미국을 내쫓았던 일본 기업이 퇴출되고 맙니다.

누가 승리했냐고요?

<인터뷰>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내가 ‘원자탄을 만들러 간다.’ 그랬어요. 진짜 그 정도 의미가 있어요. 원자탄을 만들러 간다고 했더니, (미국 친구들이) 전부 ‘야, 너 한국 가냐?’ 일본을 집어삼키겠다고 하고 IBM에서 그만두고 나왔으니까, I’m going to swallow Japan, 삼켰어요... 그렇게 오래 안 걸렸어.”

사실 삼성전자는 한참 늦었습니다.

<인터뷰>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마라톤 갈 때 200미터 떨어지면 따라갈 수 있나요? 못 따라가요. 그것보다 더 큰 격차라고 보면 됩니다.”

일단 당시 해외에서 인정받던 인재들을 대거 영입했죠.

또, 미국 마이크론에서 설계도를 사왔고
일본의 칩을 뜯고 분해하길 반복했습니다.

밥만 먹고 일했고, 밤을 새워 일했습니다.

<인터뷰> 문상영/ 당시 64k D램 개발팀 (KBS 다큐극장, 2013년 방영)
“아 저 (아내가) 애를 집에서 낳았다는데, 좀 일찍 가봐야겠습니다, 했더니 탁 쳐다보시더니 “애 니가 낳았냐?” 딱 그 소리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마침내 1992년, 삼성은 10년 만에 세계 정상에 등극합니다.

<인터뷰>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당시만 해도 메모리 회사가 전 세계에 한 50개쯤 회사가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요 3개밖에 없잖아요. 그 부침이 어마어마하게 심한 게 90년대였어요. 삼성전자가 치고 올라가면서 결국 이제 일본 회사들이 다 2013년에 소멸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끝없는 혁신에 나섭니다.

<인터뷰> 권기태/ 전 삼성전자 직원, 현 구글 연구원
“(lcd) 디스플레이 기술을 일본이 발명했지만 사실은 삼성이 계속 개량하고 발전시켜가면서 그쪽에 투자를 어마어마하게 했거든요. 삼성이 베팅한 게 맞았던 거죠. TV 업계를 거의 평정하는 계기도 됐었고. 또 플래시 메모리 같은 경우도 인텔은 노어 방식이라고 그런 메모리를 밀었는데, 삼성은 낸드 방식이라고 해가지고 (결국은) 낸드가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완전히 석권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죠. 삼성은 비전을 갖고, 그것에 투자하고, 다른 빅 플레이어들이 다른 길을 가더라도 ‘이거야.’ 그러고서는 고집스럽게 해가지고 시장이 열리는 순간 거의 독점적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회사였었죠.”

성공신화의 이면에는 두 가지 결정적 행운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걸 봐야 칩의 역사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크리스 밀러 / 역사학자, 터프츠 대학교수, <칩워> 저자
“1990년대에 삼성이 성장할 수 있도록 디램 칩 시장이 성장한 가장 주요한 이유는 퍼스널 컴퓨터입니다. PC가 발명되고 미국 전역에 확산되면서 삼성이 경쟁력 있는 디램 수요가 급증하죠.”

<인터뷰>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90년대는 인터넷이 나오는 시대입니다. 전자산업이 번창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어마어마하게 일어나더라, 그 시점이었어요.

잘 될 줄은 알았지만, 칩 수요가 이렇게까지 끝없이 팽창할 줄은 사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또 다른 행운은 세계정세 변화입니다.

<인터뷰> 이승우/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반도체 오디세이> 저자
“(1980년대 중반 당시) 일본이 삼성이 만드는 반도체에 대해서는 고의로 가격을 굉장히 큰 폭으로 인하를 했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엄청나게 큰 폭의 적자를 보는 어려운 상황이 왔습니다. 만약에 그 상태가 계속됐으면 사실은 삼성 반도체가 지금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 일본을 미국이 견제해 줍니다.

일본이 1인당 GDP에서 미국을 넘어서며 경제력으로 위협이 됐기 때문입니다.
1985년 미국은 일본을 압박해 플라자 합의를 맺습니다.

엔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이게 한 이 합의로, 일본산 디램의 가격이 크게 비싸졌습니다.

<녹취>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2023년 12월 MIT 강연
“일본은 1990년대 초에 사그라들어 버렸습니다. (Fizzled)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85년에 체결된 플라자 합의입니다.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의 환율이 급상승해버립니다. 엔화 가치가 거의 두 배가 되죠.”

또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일본의 손발을 묶습니다.

<인터뷰> 크리스 밀러 / 역사학자, 터프츠 대학교수, <칩워> 저자
“일본은 미국에 반도체 칩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죠. 그게 삼성과 같은 한국 기업이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이 일본이 아닌 칩 공급자를 원했기 때문이죠. 적의 적은 나의 친구죠. 정치적 맥락에서 그렇고, 상업적으로도 정말 그렇습니다.”

관련방송: 2024년 3월 12일(화) 밤 10시 KBS 1TV/ 유튜브 <시사기획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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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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