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 버블’ 오명 벗나…돌아온 코인 광풍
비트코인 개당 1억원 돌파…포모족 참전에 천장 뚫려
[주간 경향] “비트코인(코인) 커뮤니티에 수익을 인증한 글이 잇달아 올라오는 걸 보면 현타(현실자각 타임)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코인 투자를 위해 대출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지인들도 있어요.” 대기업에 다니는 A씨(32)는 “요즘 직원들이나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가면 온통 코인 얘기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코인 가격이 조정기에 접어들 때 사기 위해 최근 거래소 계좌를 개설했다. 그는 “올 초 망설이다가 코인을 사지 않은 게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며 “수년째 박스권에 갇힌 국내 주식보다 코인에 장기투자를 하는 게 수익률이 더 높은 만큼 코인 투자를 위해 국내 주식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심리적 저항선인 1억원(1개)을 돌파하면서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 대금은 이미 코스피(KOSPI)의 2배를 넘어섰다. 거래량도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수준이다. 365일 24시간 거래 가능한 가상자산과 주식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대체 투자자산인 코인이 국내 주식시장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1일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사상 처음 1억원을 넘어섰다. 이후 소폭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에서도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3월 14일에는 7만3800달러에 근접하며 사상 최고가를 또 한 번 새로 썼다. 비트코인은 지난 2월 28일 6만달러(약 7909만원)를 넘어선 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 중이다. 가격은 올해 들어 73% 뛰었다.
■ 제도권 편입에 금값 된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이번 상승장이 코인 광풍이 불었던 2021년과 구조적으로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에는 유동성에 따른 가격 상승이 가장 큰 투자 유인이었다면, 이번에는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상승 재료가 됐다. 지난 1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면서 가상자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ETF는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요 가격지수를 추종하는 장내거래상품이다.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누구나 쉽게 사고팔 수 있어 투자의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지난 10여 년간 시장이 성숙하고 투자자들의 경험도 누적돼 비트코인이 신뢰할 만한 투자자산으로 인정받는 과정에 있다는 게 시장 안팎의 평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비트코인은 하나의 투자재로 자리 잡았다”며 “변동폭을 보면서 비트코인 ETF가 투자자산으로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고 안정성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시험할 시기가 됐다”고 밝혔다.
현물 ETF를 상장시킨 자산운용사는 비트코인을 직접 매수해 보유해야 한다. 비트코인 유통 개수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운용사들이 ETF를 위해 비트코인을 계속 사들이다 보니 가격이 우상향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이 1조5000억달러에 육박해 대표적인 원자재 자산 중 하나인 은을 추월했다. 미국에 이어 홍콩도 올해 2분기에 비트코인 현물 ETF를 상장하기로 했고, 영국도 관련 상품 승인을 예고하면서 시장의 기대감이 더 커지고 있다.
기관투자자의 유입에 이어 비트코인 채굴량이 4년마다 절반씩 줄어드는 반감기가 임박한 것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앞선 반감기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불장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2012년 첫 번째 반감기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6개월 기준으로 900% 이상 치솟았다. 2016년 두 번째 반감기 뒤에는 39%, 2020년 세 번째 반감기 이후에는 85%가량 올랐다.
거시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6월 이후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기대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금리 인하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금과 마찬가지로 달러를 대체할 수단으로 거론되는 가상자산 가치도 오르기 때문이다. 임민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주요국들의 비트코인 관련 상품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대형 운용사들의 가상자산 비즈니스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상품 출시에 따른 수급에 따라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추세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시에 과열을 경고하는 신호도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의 비트코인 선물 미결제약정은 최근 100억달러 규모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결제약정 규모가 크다는 것은 미래 가격에 베팅한 계약이 많다는 의미로, 시장 변동성 확대에 따른 급등락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비트코인 급등에 포모(FOMO·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겪는 투자자들이 도지코인과 시바이누 등 ‘밈코인’ 투자에 뛰어드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밈코인은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나 이미지를 따 발행된 가상화폐로 별다른 쓰임새가 없다. 세계적인 과열 현상에 블룸버그도 “비트코인의 반감기를 앞둔 상황에서 공급 제한과 통화정책 완화 기대감 등의 긍정적 요인들로 인해 투자자들이 고통스럽고 침체가 깊었던 2022년 하락장의 기억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시장 과열에 김치 프리미엄 8% 육박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도 확대되고 있다. 김치 프리미엄은 국내 거래소와 국외 거래소의 가상자산 가격 차를 의미한다. 통상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과열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된다. 가상자산 시황비교 플랫폼 크라이프라이스에 따르면 이날 비트코인의 김치 프리미엄은 약 8%에 달했다. 2021년 5월 30일(8.7%) 후 2년 10개월 만의 최고치다. 이는 같은 시점에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 시장보다 8% 비싸다는 의미다. 김치 프리미엄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통상 김치 프리미엄 수치가 5%를 넘으면 과열 징후로 본다. 가상자산 데이터 조사분석업체인 얼터너티브닷미는 코인시장의 과열 정도를 나타내는 ‘공포·탐욕지수’를 측정하는데, 이날 88점을 기록하며 ‘극단적 탐욕’ 수준을 나타냈다. 공포·탐욕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공포를, 100에 가까울수록 낙관을 의미한다. 다만 2021년 김치 프리미엄이 20%대까지 치솟았던 것을 고려하면 현재 과열 수준이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비트코인 가격에 대한 전망은 분분하다. 최소 2억원 이상 갈 것이라는 낙관론과 다시 절반가량 급락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엇갈린다. 다만 단기간 조정을 겪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추세적인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임민호 연구원은 비트코인 1개에 최대 10만달러까지 도달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현재 비트코인이 7만달러선에서 등락하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40%가량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수급 요소 외에도 미·중 갈등 등 탈세계화로 인한 지정학적 불확실성 확대, 미국 정부의 부채 증가와 달러화 신뢰 하락, 금보다 비탄력적인 공급 등이 비트코인의 가격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포모에 휩싸여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것은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앞서 2021년 11월에도 전고점(8270만원)을 찍은 비트코인에 투자자가 몰렸는데 가상자산거래소 FTX 파산, 테라·루나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면서 2000만원대로 폭락했다. 거래 시간이 제한된 주식시장과 달리 가상자산시장은 24시간 거래할 수 있어 변동성이 크다.
■ 중장기적으론 상승세 전망 우세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인을 뒷받침하는 기술 가치나 미래 비전보다는 경기 불확실성으로 높은 수익률만 보고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상승폭 못지않게 하락폭이 큰 코인의 특성을 알고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국내 주식을 제외하고 해외 주식과 금값 등이 모두 랠리 현상을 이어가며 자산시장이 전례 없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거품이 끼어들어간 만큼 반드시 거품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수급이 좌우하는데, 수요가 줄면 가격은 또다시 폭락할 수 있다”며 “코인의 희소성 자체가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 만큼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총선을 앞두고 2030세대 코인 투자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비트코인의 현물 ETF의 발행과 상장, 거래를 허용하겠다는 공약이 나오고 있다.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반대하고 있지만 추가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자본시장 선진화’ 맥락에서 미국의 제도 변화를 주시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월 현물 ETF의 국내 승인 가능성과 관련해 “국내 법률 체계를 적절하게 변화시키거나 또는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나라에 수용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장 안팎에서는 오는 7월 가상자산이용자 보호법 시행으로 시장 안정성이 확대돼 투자자 보호 기반이 강화되면 가상 자산 전반에 대한 인식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법 시행으로 논의에 물꼬가 트이면 관련 업계에서도 상품 출시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오는 5월 비트코인에 이어 또 다른 가상자산인 이더리움 현물 ETF가 미국에서 승인을 받게 되면 논의 속도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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