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봉·새바지·외양포... 신기루처럼 사라질 그 섬의 풍경 [박준규의 기차여행, 버스여행]
보개산이 바다 가운데 침몰됐다가 다시 솟아나 탄생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가덕도는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다. 여러 봉우리 아래로 펼쳐진 바다 풍경이 뛰어나다. 국토 남단에 위치해 오래전부터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왜의 침입에 대비해 곳곳에 축조한 조선시대 방어 시설과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군사기지가 공존하는 곳이다. 아직까지 드라이브·등산·트래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지만, 하지만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지로 선정된 터라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면 여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20번 부산 시내버스 타고 가덕도 여행
가덕도 여행도 당연히 승용차가 편리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520번 부산 시내버스를 타면 지양곡(연대봉), 대항마을, 외양포에 내려 등산이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노선버스는 평일엔 대항마을까지 운행하고, 토·일·공휴일엔 끝마을인 외양포까지 연장 운행한다. 강서공영차고지에서 첫차는 오전 5시, 막차는 오후 8시 30분에 출발한다. 부산지법 서부지원·지검 서부지청 정류소 기준으로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10시 25분까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간격으로 하루 14회 운행한다. 배차 간격이 긴 편이라 시간 여유를 갖고 여행하기를 권한다. 가덕대교 입구 경제자유구역청까지는 운행하는 버스가 많아 이곳에서 환승하면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교통카드 기준 1,550원.
바다 전망 연대봉과 대항전망대
첫 목적지는 연대봉(459.4m). 부산 걷기여행길인 갈맷길5-2코스(신호항~부산신항~천가교~연대봉~지양곡) 15km의 일부로 지양곡에서 시작한다. 연대봉까지는 1.55km. 거리가 짧은 숲길에 제법 가파르지만, 충분히 휴식하며 걸어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면 봉수대가 남아 있다. 1592년 4월 13일(음력) 임진왜란 당시 대마도에서 부산포로 침략한 왜군 함대를 최초로 발견한 곳이다. 봉우리를 스치는 세찬 바람 덕분에 땀과 열기가 금새 사라진다. 조망은 가히 환상적이다.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 장목면까지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국수봉·대항새바지·어촌체험마을까지 파노라마로 이어지는데,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시작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풍광이어서 오래도록 눈에 담는다. 지양곡으로 돌아와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대항전망대가 나온다. 신공항의 염원을 담은 항공기 조형물 아래로 대항어촌체험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 간직한 외양포
대항전망대에서 내려가다 만나는 로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대항새바지, 오른쪽은 대항어촌체험마을, 직진하면 부산 최남단 마을 외양포에 닿는다. 외양포는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군사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 뒤 포대진지를 만들고 군대를 배치했다. 주민들은 1945년 8월 광복 이후 일제가 물러나고 다시 들어와 정착할 수 있었다.
마을 주택에 기와, 눈썹지붕, 비늘판 벽 등 일본식 가옥 흔적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세운 막사, 사령관실, 창고, 우물, 배수로도 남아 있다. 마을 뒤편 언덕에는 수목으로 은폐한 포진지가 있다. 280mm 유탄포 포좌 6문, 탄약고 3동, 엄폐 막사 2동이 남아 있는데, 탄약고와 막사는 섬의 아픈 역사를 알리는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다.
대항새바지 자갈해변과 대항항 동굴요새
전망 좋은 카페들을 지나면 작은 포구가 나타난다. 날씨에 민감한 어부들이 샛바람(동풍)을 받는 곳이라 이름한 대항새바지다. 바다 건너 부산 신호동 일대 공단과 명지동 아파트 단지가 배경으로 깔리고, 자갈 해변에는 파도가 들고날 때마다 돌 구르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곳에도 일제의 군사시설이 남아 있다. 무기를 보관하던 벙커와 여러 개의 인공동굴이 있으나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다.
대항새바지에서 허리 잘록한 고개를 넘어 섬 반대편으로 가면 대항어촌체험마을이다. 가덕도에서 가장 큰 어항이라 ‘한목’이라 불렸다. 등대와 방파제, 고기잡이배가 어우러진 정겨운 어촌 풍경을 지나 목재덱을 따라 계속 걸으면 대항항 포진지동굴에 이른다.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 말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제는 한반도 남단에 동굴 요새를 상당수 구축했다. 일제는 미국이 일본 본토 공격에 앞서 한반도에 교두보를 확보할 것이라 예측했고, 동굴요새를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여겼다.
해수면에서 약 8m 높이의 대항항 절벽에 세워진 동굴요새는 진해만 해군기지를 방어하고, 비행기와 함포의 공격에 대항하도록 설계됐다. 동굴 안에 야포와 중화기를 배치해 결사항전하다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면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관람은 1동굴로 들어가 포진지체험존과 2동굴의 바닷속탐험존을 거쳐 3동굴로 빠져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희생으로 만든 동굴로, 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다크투어리즘의 전형이다.
박준규 대중교통여행 전문가 blog.naver.com/saka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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