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담임 속옷 만지고, 男상사 치마찍고…'여성'이라 당했다[체헐리즘 뒷이야기]
버스 옆자리 남성이 가슴 만지고, 직장에선 "오빠라고 아양 떨어라" 성희롱
낮은 존재로 여기고, 부정적으로 대상화하는 게 '여성 혐오'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긴밀하게 연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경우 많아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쓰고 있습니다. 해봐야 깊이 안다며, 동떨어진 마음을 잇겠다며 시작했지요. 격주 토요일 아침이면 오래 품은 기사들이 나갑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때 행복합니다. 여전한 숙제가 많으니, 차마 못 다한 뒷이야기를 가끔씩 풀려 합니다.
40년간 '남성'으로 살았기에 정확히 알기 어려웠던 여성이 겪는 일들. 그래서 지난번 기사에선 버스·지하철·편의점·화장실·공원·길거리 등을 갈 때마다 검색하고 짐작했었다. '여성, 지하철,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란 식으로 찾았다.
한계가 있었다. 수사 중이거나 판결까지 난 사건만 파악할 수 있었으므로.
기사로 나오지도 않은 '음지'에서 고요히 벌어진 일. 문제 제기도 못 했던 일상의 폭력은 얼마나 많으며 어떤 게 있을까. 실제 사례를 제보받아 취재했다. 주어를 여성이 아닌 '나'로 바꾸어 다시 써봤다. 잠시나마 내가 겪은 일처럼 짐작해보자는 거다.
내가 14살 때였다. 학원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낯선 남성이 공원에서부터 따라왔다. 설마 하고 빠르게 걸었다. 그 남성도 빠르게 뒤따라왔다.
집 건물에 도착했다. 계단을 올라갔다. 남성은 바로 밑까지 쫓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문을 확 잡고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성폭행하려 했다. 무서워서 덜덜 떨면서 울었다. 그러자 갑자기 욕하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라고 하고 도망갔다.
노란 머리, 안경,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남성. 경찰에 신고했으나 결국 못 잡았다고 했다.(나뭇가지님)
고등학생 때였다. 수련회에 갔을 때, 남자 담임 선생이 밤에 방으로 들어오더니 내 옆에 누웠다. 내 등을 쓰다듬으며 속옷을 만지기도 했던 남성이었다.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하자, 그는 앙갚음으로 부모님께 자필 편지를 보냈다. 내가 본인을 힘들 게 하는 문제 학생이라고.(햇살님)
스무 살이 됐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피곤해서 광역 버스에서 자고 있을 때였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옆자리에 앉은 남성이, 손을 슬금슬금 뻗어 내 가슴을 주물렀다. 너무 놀랐지만 뭐라고 했다가 해코지당할까 싶어 자리를 옮기기만 했다.
그 뒤로는 버스 타는 게 무서워졌다. 옆에 남성이 앉으면 눈을 똑바로 뜨고 잠을 안 자려고 버텼다.(바다님)
과외하러 갈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아파트 골목길에서였다. 거기에 검은색 승용차가 서 있었다. 주차하는 데가 아니라 의아했는데, 내가 다가가자 빨간 티를 입은 남성이 차에서 내렸다. 남성은 하의를 안 입고 만세 동작을 했다. 그 남성은 20년을 더 그 짓을 하다, 결국 동네 공원 화장실에서 중학생을 성추행하다 경찰에 잡혔다고 했다.(고잉님)
20대 중반, 첫 직장을 다니게 됐다. 남성들에게 흔히 듣는 말이 이랬다.
"OO씨는 붙는 옷 입어야 예쁘더라."
"오늘 몸매가 참 좋아."
"내가 조금만 젊었으면 어떻게 해봤을 텐데."
내가 일할 때 뒤에 와서 출입증 목걸이를 만지는 남성. 마우스를 쓰는 손을 덥석 잡는 남성. 장난치는 척하며 머릴 계속 만지는 남성. 일하는 데 따라다니며 숨어서 지켜보는 남성. 술집 사장에게 내 번호를 알려줘서, 새벽에 변태 같은 전화가 오게 하는 남성.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은 조금만 먹어, 남자 직원들이 더 힘드니까"하며 고기를 절반만 주는 남성이 있었다.
남자 상사가 치마 입은 직원 다리를 잔뜩 찍은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두 딸이 있는 남성이었다.(꿈틀이님)
20대 후반이 되었다. 다른 회사에 갔다. 그 회사 대표인 남성은, 내게 이리 말했다.
"오빠, 오빠, 하고 아양 떨면서 알려달라고 해. 그렇게 하면서 배우는 거야."
다른 남성에게 그렇게 말하며 일을 진행하라는 말이었다. 정말 불쾌하고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경험이었다.(골목님)
또 다른 직장인 병원에서는 이런 경험을 했다. 남성들은 유독 여자 의사에게만"어이! 아가씨!"라고 했다. 남자 의사에게는 깍듯이 "선생님"이라고 했다. 남자 간호사에도 굽신거리며 "선생님"이라고 하는 걸 봤다.
대다수가 여성인, 외래 간호사와 수납하는 직원들에게는 카드나 돈을 던지는 걸 봤다. 똑같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시험을 보고 들어온 이들인데 환멸이 났다.(도시님)
남성이 대부분인 직장에서는 이런 말도 들었다.
"너 같은 가슴을 어떤 남자가 좋아해? 차라리 수술해라."
다른 남성은 이리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 일하려면, 여자들은 얼굴이 예뻐야 해."
"일 끝나고 집에 가면 당연히 남편 밥을 차려줘야지. 네가 안 차려 주면 남편은 밥을 어떻게 먹어."(무채색님)
'남성들이 말하는 이들의 처지와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 모욕과 혐오는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질적 차이가 있다. 대표적으로 '안전 이별'이란 말이 있다. 남녀가 헤어지고 나서 남성은 복수를 걱정하지 않지만 여성은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한다. 실제로 협박에서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남성도 피해자란 말. 그걸 주장하기 전에, 여성의 경험과 비교해 성찰하란 얘기였다.
이는 객관적 통계로도 입증된다. 일면식도 없는 남성이 폭력을 저지르는 범죄. 이는 여성 피해자가 58%로 더 많았다(2013년, 대검찰청 통계). 친밀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기준 남성 파트너가 살해한 여성이 192명, 살인 미수에 그친 여성이 376명에 달했다(2023년, 한국여성의전화). 홧김에(20.6%), 이혼과 결별을 요구해서(18.31%), 다른 남성과 관계 의심 등을 문제 삼아(14.08%) 순이었다.
왜 이렇듯 차이가 날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여성 혐오 범죄는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에서 기인하는 거라고 했다. 박민영 작가는 저서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 혐오는 '여성 일반'을 부정적으로 대상화·범주화 하는 걸 말한다. 여성을 나보다 낮은 존재로 여기고 멸시하는 것, 여성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표시하는 것, 모욕·조롱·위협하는 것, 차별·적대·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고취·선동하는 것 등이 여성 혐오에 포함된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도 "혐오는 권력 감정"이란 말을 했다. 누군가를 평가할 위치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 하는 거란 얘기였다.
'남성들의 경제력이 수축되고 불확실성에 휩싸이자, 남성들은 여성들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여성 혐오로 분출되었다. 여성 혐오에는 기존에 남성들이 가졌던 우월감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와, 남성들의 구겨진 자존심을 여성에 대한 모욕과 억압을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뒤섞여 있다.'
그게 요즘 젊은 세대의 남성들에게는 어떻게 적용될까.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7년 논문, '남자 고등학생의 여성 혐오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탐색(민미홍)'에선 이리 분석했다.
'젊은 세대 남성들은 사회적 조건 악화 등으로 과거에 비해 가질 수 있는 절대적 양이 줄어들었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여성을 혐오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경쟁에서 배제하거나 그들의 성취를 폄하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남성의 사회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근거로 여성 혐오가 이용되는 것이다.'
여성 대상 범죄를 혐오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 사회 구조적 배경과 동기를 통해 바라봐야 한단 것.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은 전무 하다시피 하다. 구조적 원인이 아니라 개개인 문제로 간주해 구분 짓는 식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런 범죄가 일어났을 때 많이 쓰는 단어가 '우발적으로', '외부 자극에 의해' 등을 많이 쓴다"며 "비이상적인 자극에 의해 이렇게 행동을 저질렀다고 해석하고 피해자 비난에 몰두한다"고 했다. 이어 "젠더 불평등이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얘기는 뜯어 고쳐야 할 게 많으니 하기 싫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 광범위한 '여성 혐오'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뿌리 깊게 퍼지고 있다. 13일 기준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한녀(한국여성, 통상 비하나 모욕 의도로 쓰임)' 키워드로만 검색된 게시글이 무려 1750건이 넘었다. 단 하루에 '한녀' 키워드로 올라온 글의 숫자다.
내용 역시 막연한 '여성 혐오'를 담은, 우려스러운 게 많았다. 제목만 봐도 '한녀 혐오할만한 3가지 증거', '한녀 설거지하는 XX들', '한녀는 지 XX도 XX시키더라', '한녀들의 이중성', '한녀들 지능 수준 보여주는 XXX' 등이었다.
이길호 인류학자는 '우리는 디씨 :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증여, 전쟁, 권력'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논문에서 "디시 인사이드는 대놓고 발설하는 마초들의 공간이며 여성 혐오로 가득찬 공간이다. 이들은 여성이 발견되면 바로 추방하고,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게이라고 비웃고 이지메를 가한다"고 분석했다.
'김치녀' 등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접한 경험이 대학생 집단(89.3%) 다음으로, 청소년층(84.8%)에게 높게 나왔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5년). 여성 혐오 댓글을 올린 비율도 남자 청소년이 27.9%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실제 소년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상담한단 심리 상담사는 이리 말했다.
"자신의 성기 사진을 모르는 여성에게 보내거나, 친구의 노출 사진을 찍어 단톡에 올려 조롱합니다. 성적 모욕감을 느낄만한 용어들(섹X하자, 보X, 앙기모띠, 느금X)을 써서 처벌 받는 경우가 많고요. 실제 만나서 상담해보면 재밌어서 했단 말이 대부분이에요. 유튜브에서도 쓰고, 애들도 다 쓰니까 가볍게 생각하고 썼다고요. 여성 혐오 일부라는 것도 모릅니다."
한 고등학생(여성, 18세)이 친구에게 실제 들은 말도 이랬단다.
"역시 여자란 ㅉㅉ."
"집에서 설거지나 해."
'인셀 테러'의 저자, 로라 베이츠는 저서에서 이리 말했다.
'대체로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이런 커뮤니티들은 거대한 아랫 부분이 수면 아래 잠기고, 윗부분만 '현실' 세계로 노출된 채 매일 더 가팔라지고 날카로워지는 빙하와 같다.'
이어 이렇게 경고했다.
'억압적인 성별 고정 관념은 남성들이 사는 사회뿐 아니라, 각각의 남성들에게도 해롭다. 이 억압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늘날 소년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피해다닌다면, 이 아이들은 우리가 내버려 둔 틈새로 우르르 추락할 것이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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