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카리나 사과' 사태가 드러낸 케이팝 산업의 본질

심영구 기자 2024. 3. 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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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욕망의 대리자가 된 아이돌 (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초유의 일이다. 아이돌의 연애가 주가를 폭락시켰다. 트럭 시위가 등장했다. 당사자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에스파의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의 연애 폭로 기사가 뜬 지 며칠 만이다.

아이돌을 포함, 핫한 연예인의 연애 및 결혼이 팬들의 마음을 흔드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디스패치>를 비롯한 가십 매체들의 조회수를 보장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온라인에 머문다. 댓글이나 SNS에서 술렁이는 정도다. 당사자들이 연애를 인정할 때도 '사과문'이 아닌 기획사의 입장 발표가 전부였다. 주가가 눈에 띌 만큼 움직인 적도 없다. 이번에는 가십을 넘어 파장이라 할 만하다. 아이돌 덕질을 하지 않는 이들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언론에서도 외신과 네티즌 댓글을 인용하며 '케이팝 팬덤이 성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쌀로 밥 짓는 얘기다. 케이팝 산업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음악 엔터테인먼트의 소비자, 즉 팬덤은 크게 두 부류로 구성된다. 첫째, 콘텐츠 소비자다. 좋은 노래나 뮤직 비디오에 끌려 해당 음악을 소비한다. 생각날 때마다 스트리밍하거나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두는 정도다. 노래는 아는데 가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 또는 노래 자체의 인기가 가수의 충성도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싸이와 '강남스타일'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다. 이런 팬에게 중요한 건 '좋은 음악'이지 '누가 불렀는가'가 아니다.

둘째, 충성형 소비자다. 콘텐츠에 이끌려 입덕했다가 가수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다. 뮤직 비디오는 물론이고 직캠이란 직캠은 다 돌려보며, 채널을 구독하고 모든 콘텐츠를 소비한다. 팬카페 가입과 덕질 전용 SNS는 필수다. 팬미팅 당첨을 위해 수십 수백 장의 음반을 구매하는 행위는 이 단계에서 시작된다. 또한 여기서부터는 노래를 좋아하는 걸 넘어 가수 자체를 '응원'하게 된다. 노래가 좋기 때문에 듣는 게 아니라 가수에게 높은 음원 순위를 선물하기 위해 하루종일 스밍을 돌리는 행위가 대표적 응원 방법이다. 응원하는 가수에게 적대적 의견이 보일 경우 좌표를 찍어 팬을 결집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다.


충성형 팬덤도 둘로 나눠 볼 수 있다. 유사연애형과 자아의탁형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이래 유사연애형 팬덤의 역사는 대중음악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자아의탁형 팬덤은 뭐랄까, 다마고치나 프린세스 메이커에 비유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신인의 팬이 되어 응원과 후원을 보내며 가수가 커나가는 것에 뿌듯해하는 것이다. 비틀스부터 방탄소년단에 이르는 음악 역사의 신화적 존재들 뒤에는 늘 이런 강력한 지지세력이 있었다. 물론, 어떤 스타의 팬덤을 칼처럼 규정할 수는 없다. 한 팬덤 안에서도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 한 사람의 마음에도 여러 감정이 혼재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케이팝, 혹은 아이돌 산업은 충성형 소비자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게 문제다.

케이팝 시장에서 통용되는 성공의 지표 중 '초동'이란 게 있다. 음반 발매 후 1주일 간의 판매량을 뜻하는 업계 속어였지만 어느덧 팬들이 가장 신경 쓰는 지표가 됐다. 한 주 동안 얼마나 많은 음반을 판매했느냐에 따라 데뷔 또는 컴백 활동의 성공 여부가 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PC와 노트북에서조차 CD 드라이버가 사라진 지 오래다. CD로 음악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환경이 태반이다. 스트리밍이 음악 소비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초동 백만 장 이상의 앨범들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나. 미국에서도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음반이 급격히 줄어든 현실에서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케이팝 팬덤에서 음반 구입은 아티스트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다. 음반 안에 담겨 있는 포토 카드를 다 모야야 팬 미팅 응모 기회가 생기니 마치 드래곤볼을 모으듯 한 명이 수십 장의 음반을 사기도 한다. 따라서 초동은 콘텐츠 소비자와 구분되는 충성형 소비자의 규모이자 팬덤의 화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이는 한국 케이팝 팬덤만의 특징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음악 시장분석 업체 루미네이트의 보고서에 의하면 K팝 팬들은 좋아하는 가수를 지지한다는 목적으로 음반을 구입하는 경향이 다른 장르 팬보다 67%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장르의 팬들이 각자의 문화를 갖고 있듯, 음반 구입이란 행위는 케이팝 팬덤의 '부족 문화'다. 기획사 매출에도 음반 판매가 음원이나 공연보다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건 물론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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