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봄···류현진 효과로 대전구장이 ‘들썩들썩’
등번호 99번 류현진, 1번 문동주와 합작해 ‘100점’ 완성할까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12년 10월4일 대전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의 시즌 최종전. 시즌 9승의 류현진이 마운드에 섰다. 2006년 데뷔 후 6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고 있던 그는 '1승'이 너무나 간절했다. 하지만 연장 10회까지 공을 던졌는데도 팀 타선이 2점 이상을 뽑아주지 못했다. 1회 최진행이 친 솔로홈런이 유일한 한화의 득점이었다. 류현진이 넥센에 내준 점수도 7회 강정호에게 맞은 솔로포뿐이었다.
10이닝 4피안타 무4사구 12탈삼진 1실점. 그가 마지막으로 넥센 타자 문우람에게 던진 공은 시속 152km가 찍혔다. 이날 던진 129번째 공이었다. 류현진은 그렇게 KBO리그 등판을 끝냈다. 결국 이날 타선의 도움을 못 받아 승리는 따내지 못했다. 2012 시즌 성적은 9승9패 평균자책점 2.66, 210탈삼진. 27차례 선발 등판에서 22차례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 투구)를 기록했음에도 그는 10승을 채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칼날 제구에 토미존 수술 후 구속도 올라
그리고, 12년이 흘러 그가 8년 170억원의 역대 최고액 계약으로 KBO리그에 다시 돌아왔다. 1~2년 후 귀환이 예상됐으나 류현진은 "힘이 있을 때 돌아오겠다"는 한화 팬과의 약속을 지켰다. 2022년 30대 중반에 팔꿈치에 칼을 다시 댄 것도 자신이 성장했던 친정팀에서 '힘 있게' 던지기 위한 결단이었다.
'류현진은 여전히 괴물일까.' 그의 복귀를 바라보는 팬들의 의구심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10승 이상은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물론 "건강만 하다면"이라는 조건이 달린다. 류현진은 2022년 6월 팔꿈치 수술 후 재활 기간을 거쳐 지난해 8월 메이저리그에 복귀해 11경기 등판, 3승3패 평균자책점 3.46의 성적을 냈다. 올 시즌 충분히 빅리그 3~4선발로 활약이 기대되는 성적이었다.
류현진은 계약이 늦어지면서 2월23일에야 한화 스프링캠프(오키나와)에 참가했으나 불펜 투구와 라이브 피칭을 통해 건재한 모습을 보여줬다. 2월 중순까지 개인 훈련을 진행했지만 개인 트레이닝 코치와 함께 착실하게 시즌을 준비한 모습이었다. 3월7일 청백전과 12일 KIA 타이거즈와의 시범경기 등판 때도 올해 리그 처음으로 적용되는 자동볼판정시스템(ABS·기계판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공을 찔러 넣었다.
KIA전에서 수비수 실책으로 빚어진 4회초 무사 2루에서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 브리토를 3구 삼진으로 잡아낸 것이 백미였다. 연속해서 던진 3개의 공은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보더라인에 살짝 걸치는 스트라이크였다. 생중계로 이를 지켜본 팬들이 '오목을 두는 것이냐'고 표현할 정도로 현미경 제구를 선보였다.
시범경기 전까지만 해도 류현진의 구속 저하를 의심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지난해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포심) 평균 구속이 시속 142.6k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KBO리그 투수들의 지난해 포심 평균 구속(시속 143.8km)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창섭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에 따르면 토미존 수술 후에는 보통 2년 차에 구속이 더 올라온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 공인구 차이도 있다. 김광현(SSG 랜더스) 또한 2021년 메이저리그에서는 포심 평균 구속이 시속 143.3km였지만 KBO리그에 복귀했던 2022년 평균 구속은 시속 145.4km였다. 실제로 류현진은 KIA전 때 포심 평균 구속 시속 144km, 최고 구속 시속 148km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류현진은 KBO리그를 떠나기 전에는 포심과 체인지업만으로 타자를 상대했으나 여기에 커터가 새롭게 추가됐다. 타자들이 더욱 현혹될 수밖에 없다. 류현진이 부상 없이 꾸준히 등판한다면 10승 이상은 거뜬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한화 공격력…지난해 팀타율 '꼴찌'
류현진의 복귀는 한화 선발 로테이션에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한화는 외국인 투수들이 다른 팀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특히 지난해 후반기에 다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좌완 산체스가 문제였다. 최원호 감독이 류현진의 귀환을 간절히 바랐던 것도 산체스 때문이다. 류현진이 선발진에 합류하면서 한화는 류현진-페냐-문동주-산체스-김민우 혹은 황준서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을 꾸려갈 수 있게 됐다. 산체스는 4선발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한화의 문제는 2012년 KBO리그 마지막 등판 때처럼 류현진의 어깨를 처지게 했던 공격력에 있다. 지난해 홈런왕 노시환이 레벨 업 됐고, 안치홍·김강민 등이 새롭게 합류했다고는 하지만 5강 안에 들 수 있을 정도의 타선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한화의 팀타율은 지난해 0.241로 10개 구단 꼴찌였다. 득점권 타율(0.240)은 오히려 더 낮았다. 2022 시즌(타율 0.245/득점권 타율 0.237)에도 마찬가지였다. 2021 시즌(타율 0.237)도, 2020 시즌(타율 0.245)에도 한화는 물방망이였다.
노시환의 경우 지난해 홈런을 31개 치긴 했으나 타율(0.298)이 3할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규정 타석을 채운 한화 타자 중 3할 이상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채은성의 경우 시즌 중반 이후 체력적 한계를 드러내며 타율이 0.263까지 떨어졌다. 정은원은 타율 0.222에 불과했다. 결국 새롭게 영입한 외국인 타자 페라자의 활약과 정은원·하주석 등의 반등이 절실한 한화 타선이다.
류현진은 3월23일 개막전(잠실 LG 트윈스전)에 선발로 나서게 된다. 이날 등판하면 29일 KT 위즈와의 대전 홈 개막전 선발 등판도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LG는 류현진이 2006년 프로 데뷔 처음 선발 등판해 승리를 챙겼던 팀이기도 하다. 리그 데뷔와 귀환의 상대팀이 같은 것이다. 류현진은 이날 KBO리그 통산 99승에도 도전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진출 전까지 류현진의 국내 성적은 98승52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이었다.
류현진의 등번호는 '99번'이다. 99번으로 KBO리그 출범 최초로 신인왕 및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MVP·2006년)을 휩쓸었고, 99번으로 LA 다저스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자책점 1위와 사이영상 투표 2위(이상 2019년)를 기록했다. 그리고, 99번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 에이스로 활약했다.
'99'는 한화와도 꽤 연관이 있는 번호다. 한화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던 해가 1999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한화 선수로는 2006년 류현진에 이어 17년 만에 신인왕을 받은 우완 파이어볼러 문동주의 등번호가 '1번'이다. 99와 1을 더하면 100이라는 숫자가 완성된다. 2018년 정규리그 3위 이후 9위→10위→10위→10위→9위의 순위를 이어온 한화가 '좌'현진과 '우'동주, 그리고 '오른손 거포' 노시환을 앞세워 6년 만에 가을야구로 비상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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