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들여다보는 여자…진주현 박사의 가방 속은?[왓츠인마이백⑥]

이유진 기자 2024. 3. 16.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주현 박사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 소속 14개 팀을 총괄하는 매니저로 참전용사 유해를 그들의 나라로 송환하고 있다.

고고미술사학과 전공 수업 중 교수가 강의 자료로 들고 온 조선시대 사람의 뼈를 보고 모두가 경악하던 때, 1학년 진주현 학생은 유독 눈을 반짝였다. 교수에게 빌린 뼈 자료를 집으로 가져왔다가 부모를 기겁하게 만든 이 학생은 훗날 ‘뼈 보는 사람’이 된다. 그는 하와이 주재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소속 14개 팀을 총괄하는 매니저로 참전용사 유해를 그들의 나라로 송환하고 있다. 진주현 법의인류학자의 가방을 들여다봤다.

우연이지만 ‘인연’으로 뼈를 본다

그가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다 유적이 아닌 뼈에 관심을 둔 것. 인류학 공부를 위해 유학 중 미국 국방부 한국전쟁 프로젝트를 맡은 것. 그리고 한국전 참전 용사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보낸 것. 이 모든 것을 진주현 박사는 ‘인연’이라고 말한다. 진 박사가 한국으로 보낸 전사자 유해만 300구가 넘는다.

“2010년 남편이 하와이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고 저는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이었어요. ‘나는 하와이에 따라가서 뭐 하지’ 하던 차에 하와이 주재 유해 발굴 연구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봤어요. 이런 일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죠. ‘뼈를 보는 직업’은 과학만이 아닌, 인간적 ‘터치’가 많아요. 뼈는 전쟁사뿐 아니라 가족과 개인사까지 들려줍니다. 제가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일을 시작했지만, 결국 모든 것이 깊은 인연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교수가 되어 연구나 강의만 했다면 쉽게 질렸을 거예요.”

진 박사는 유가족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자신의 업이 타인의 오랜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낀다. 때때로 유족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인터뷰에 앞서 ‘전쟁 유해 감식 작업이 왜 하와이에서 이뤄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솟았다. 그는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가 전쟁 실종자 유해를 여러 나라로 보내기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가 유해를 발굴하는 주요 전투가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한국전쟁인데요. 저희가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한 후 미국 본토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 지역으로 유해를 보내기 쉬운 위치라서 하와이에 있어요. 특히 태평양전쟁은 하와이 근처에서 있었으니 감식하기도 좋고요.”

진 박사가 하와이 펀치볼 국립 태평양 기념 묘지에서 한국전 무명용사의 무덤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본인제공

진 박사는 2018년 북한으로부터 한국전 참전 미군의 유해를 전달받기 위해 북한 원산을 방문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의 친가와 외가 조부모 모두 한국전쟁 당시 피란 온 이북 출신이다.

“평안도 출신 할아버지가 1950년 흥남 철수 작전 때 남으로 내려와 여수 피란촌에 정착하셨죠. 그 밑에서 자란 손녀가 미국 공무원이 되어 다시 북한을 방문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북한군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어디 출신이냐’며 굉장히 반가워하더라고요.”

2021년 북한에 묻혀 있던 한국전 전사자 147명의 유해가 그의 손을 거쳐 고국 땅을 찾았다. 휴전 67년 만의 귀향이었다. 준비만 9개월이 걸린 대장정 프로젝트였다. 그는 북한에서 받은 유해를 일일이 검사해 147구가 한국군임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그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유해 송환을 위한 감식 과정은 굉장히 철저해야 해요. 예를 들어 동양계 미군이 있을 수 있어요. 그들을 DNA 검사만으로 한국인이라고 판단해 송환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뼛속 동위원소 검사도 하죠. 그러면 그 사람이 사망 전 7년간 주식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나와요. 미군이라면 밀, 옥수수가 주식으로 나오고, 한국군은 쌀이 주식으로 나오겠죠. 여기에 또 한 가지 변수가 있어요. 미국에 사는 한국인인데 20년간 밥과 된장찌개만 먹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산소 동위원소를 봅니다. 사망자가 어느 지역 암반수를 마셨는지 나와요. 그런 치밀한 과정을 통해 유해를 정확히 그들의 나라로 보내요.”

뼈를 감식하고 유해를 송환하는 작업은 호기심 많은 그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일이다. 본인 제공

뼈를 감식하고 유해를 송환하는 작업은 호기심 많은 그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일이었다. 늘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또 배울 수 있었다. 6학년생과 다섯 살인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그는 아침에 눈뜨면 어서 출근하고 싶다는 열혈 워킹맘이다.

그의 가방 속에는…

진 박사의 가방 속 내용물은 단출하지만 묵직해 보인다. 먼저 검은색 터프북이 눈에 띈다. 현장용으로 미 국방부에서 지급한 작업용 노트북이다.

“저희같이 발굴 작업을 하며 노트북을 쓰다 보면 각종 먼지나 충격으로 멈출 때가 있어요. 이런 환경에 영향받지 않도록 설계된 노트북이에요. 아마 집어던져도 괜찮을 거예요. 아주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힘들지만 현장에서는 필수품이죠.”

단촐한 진주현 박사의 가방 속 아이템. 먼지에 강한 터프북은 현장 발굴에 꼭 필요하다. 본인 제공

‘핸드크림은 없어도 읽을 것은 꼭 가지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는 그는 꼭 책 한 권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특히 여행이나 출장 중 그 지역 서점에 꼭 들러 책을 한 권씩 산다. 물고기 뼈 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는 미시간주 출장 중 만난 책이다.

메모지와 펜도 필수품이다. 노트북이 있긴 하지만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손으로 쓰는 맛이 있다. 일기를 쓰면서 스티커 등을 이용한 ‘다꾸’도 하는 편이다. 그런 기록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자신의 일과 생활을 담은 <발굴하는 직업>을 출간했다.

진주현 박사는 업무 설명을 위해 뼈와 DNA 감식에 관련된 도구도 추가로 소개했다. 사람의 두개골을 비롯한 신체 부위의 뼈를 측정하는 여러 계측기와 저울이 있다. 끝부분에 둥근 블레이드가 달린 검은색 도구는 뭘까?

“DNA 채취 기구예요. 사람의 유해를 다루는 업이라 윤리적인 문제를 배제할 수 없어요. DNA 표본을 한 번에 떼야 하는데 예를 갖추는 의미에서 그 끝은 날카로운 다이아몬드로 특수하게 제작했죠. 분석 방법에 따라 DNA의 양이 달라서 정교함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현재 그의 주 업무는 펀치볼 국립 태평양 기념 묘지의 한국전 무명 용사 867기 유해를 감식하는 일이다. 한국인 전사자의 유해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는 하와이에서 가족들과 터를 이루고 살고 있지만 나중에 내 뼈가 하와이에 뿌려진다고 생각하면 ‘아 그건 곤란한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스스로 내 나라, 내 집은 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땅에 묻혀 있는 전사자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한 분이라도 더 ‘집’에 보내드리고 싶어요.”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