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인생 2막' 시인 박노식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쓸 겁니다"(1편)
쉰 살 넘자 꿈 속에서 '시를 써야 한다' 계시
잘 나가던 학원 경영 접고 '문학의 길'로
[남·별·이]'인생 2막' 시인 박노식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쓸 겁니다"(1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시는 발버둥 칠수록 빨려드는 늪과 같습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쓸 겁니다."
잘 나가는 학원을 접고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시의 길로 나선 이가 있습니다.
세속의 삶을 정리하고 홀연히 입산한 수도승처럼, 지천명에 시골에 들어가 10년째 시작(詩作)에 전념하고 있는 62살 박노식 시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가 인생 후반기에 스스로 고난의 길(?)을 결행한 것은 사춘기 시절부터 앓아온 지독한 '문학병(病)' 때문인지 모릅니다.
◇ 실업고 졸업 후 뒤늦게 조선대 국문과 입학
그의 청소년기는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방황으로 점철된 나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는 장사하시는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습니다.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터라 그의 정서와 언어는 또래 아이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광주광역시 북구 서방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야 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시장으로 달려가 어머니 장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전거를 끌고 도동고개를 넘어 장등동 집까지 십리도 더 되는 먼 길을 동행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시가 싹튼 시기는 고등학교 때입니다.
일찍 돈을 벌기 위해 인문계 대신 광주공고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실업계 교육이 적성에 맞지 않아 겉돌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느라 여념이 없는데, 그는 친구들과 문학동아리를 결성해 문집을 만드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결국 자격증 하나 따지 못한 채 교문을 나섰습니다.
졸업 후 그는 서울로 상경해 성수동 봉제공장에서 1년간 미싱보조 일을 하며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문학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독학으로 대입을 준비했고, 뒤늦게 86학번으로 조선대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때 마침 조선대 학내 분규로 대학 생활은 그가 기대하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소용돌이 속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어용 교수' 시비로 불신과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그는 총학생회 인권복지위원회 홍보부장을 맡아 문병란 교수 등 민주화운동으로 해직된 교수 복직과 재단 퇴진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4년이 훌쩍 지나고 열망했던 시 다운 시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캠퍼스를 나왔습니다.
◇ 전남 화순군 한천면에서 시 쓰기 전념
또 다시 사회로 나와보니 치열한 경쟁 현장에서 그가 설 자리는 별로 없었습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편입학원에 겨우 자리를 얻어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경력이 붙자 시내 대입학원으로 옮겨 마흔 살까지 강사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그는 월급쟁이를 접고 직접 학원을 차렸습니다.
처음에는 동구 장동에서 하다가 나중에는 남구 주월동으로 옮겨 이곳에서 12년간 학원을 운영했습니다.
그 사이 아들과 딸은 성인이 되어 서울과 경기도로 독립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2015년 어느 날, 그는 특별한 꿈을 꾸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 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박 작가.
"꿈속에 내가 나타나 잠자는 나를 내려다 보면서 '시집 한 권도 없이 여기에 오지 마라'고 하더군요."
꿈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사흘간 아내를 설득해 결국 학원 운영을 그만 두고 시를 쓰기 위해 화순군 한천면 허름한 농가로 찾아들었습니다.
◇ 2015년, 시 전문지 '유심' 신인상 등단
그는 이곳에서 고시생처럼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며 시작(詩作)에 몰두한 결과, 2015년 시 전문지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정식 등단했습니다.
이 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는 생활이었지만, 이제는 시인으로서 고뇌하는 삶으로 치환됐습니다.
매일 알을 낳는 산란계처럼 그는 날마다 가슴속에서 시 한 편씩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첫 시집 '고개숙인 모든 것'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한 줄의 시를 얻기 위해서라면 농사일이건 공사판이건 어떠한 노동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봄철에 복숭아 과수원 가지치기 작업에 나가 품을 팔기도 하고, 다리 공사 현장에서 일용 잡부로 삽질도 해봤습니다.
또한 나주 남평 운전면허 연습장에서 6개월간 강사로 일하는가 하면, 2021년 7월부터 1년여간 화순 운주사 매표원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노동을 통해 땀 흘리며 수행 속에서 자신의 시 세계를 꿋꿋하게 개척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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