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점포 분실카드 '줍줍'···550만원어치 긁은 20대 최후 [폴리스라인]

장형임 기자 2024. 3. 16.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분실카드 보관함' 통째로 털어가
점포 돌며 카드 수십 장 슬쩍
절도·점유이탈물횡령시 징역형 가능
무인점포 분실물 관리 강화 필요
[서울경제]

#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 김재은 판사는 최근 무인점포를 돌며 분실카드 수십 장을 절취해 부정사용한 27세 백 모씨에게 절도 및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백씨는 지난해 7월부터 10월 사이 서울 강동구와 도봉구 일대의 무인 편의점과 아이스크림점 등을 돌며 타인의 신용카드 41장 및 청소년증 1장 등 총 42장을 몰래 절취해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백씨는 '슬쩍'한 카드를 이용해 95회에 걸쳐 총 544만 3780원을 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리브영 화장품, PC방 이용권, 편의점, 모텔 숙박비 등의 소액 결제를 수십 차례 해 ‘티끌 모아 산’을 이룬 셈이다. 이밖에 무인 점포의 과자, 컵라면 등을 약 4만 원 어치 훔친 혐의도 있다.

이에 법원은 "피고인은 동종범죄 등으로 여러 차례 처벌전력이 있고 집행유예기간 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범행의 횟수가 매우 많고 이로 인하여 야기된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아니하며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모든 범행을 자백한 점과, 각 범행의 피해액이 그리 큰 금액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연합뉴스

백씨의 사례처럼 무인 점포를 돌며 '분실카드 보관함'을 통째로 털어가 불법 결제하는 범죄는 처음이 아니다. 기술 발전과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서비스 수요에 따라 무인점포가 크게 늘어난 뒤 매년 발생하는 '단골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앞서 2022년 10월에는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무인 사진 촬영관에 놓여있던 분실 카드 보관함에 들어있던 카드 70여 장을 훔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29차례에 걸쳐 최소 50만원 어치를 결제했지만 “알아서 찾아가라고 적힌 박스가 있길래 안에 있는 카드를 꺼내왔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울산과 부산, 경남의 무인점포 20 여 곳에서 신용카드를 훔쳐 1300만 원 상당을 부정 사용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무인점포의 경우 주인이 상주하지 않기에 본인의 소지품임을 증명하지 않더라도 분실물 박스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가져가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양심'에 분실물 수거를 맡기는 셈이다.

분실카드 부정 사용은 무인 점포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범죄 유형 중 하나다. 지난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9월~ 2022년 1월 사이 서울시 무인점포에서 발생한 범죄의 84%가 절도, 그 다음이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6.7%)으로 모두 분실 카드 부정 사용과 관련됐다.

연합뉴스

이처럼 분실 카드를 무단으로 사용했을 경우 어떤 형사처벌을 받게 될까. 비록 '타인의 물건을 직접 빼앗은' 행위는 아니지만 감시가 없는 틈을 이용해 영업주가 점유 관리하는 물건을 훔쳐갔으므로 점유이탈물횡령(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과료)를 넘어 절도죄(6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가 성립될 수도 있다. 카드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마치 정당한 사용권한이 있는 것처럼' 카드가맹점과 직원을 속여 결제하도록 했으므로 사기 및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도 성립한다. 위 사례의 백씨의 경우 분실카드로 지하철 요금 결제, 키오스크 결제 등을 해 컴퓨터 등 사용사기 혐의까지 성립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무인점포 내 범죄가 전반적으로 경찰 신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무인점포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업주들은 범죄 피해를 입은 뒤에도 '가해자 인상착의를 특정할 수 있는 사진을 부착(40.3%)'하거나 '특별한 조치 취하지 않음(17.5%)' 등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피해에 대해 경찰에 신고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률도 64.9%에 그쳤다. 무인점포 관련 범죄 연령층이 대부분 10~20대고 개별 피해 규모도 소액이다보니 형사적 대응에 나설 경우 되레 점포 평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됐다.

법원로고.연합뉴스

무인점포 내 범죄에 대한 형량을 더욱 무겁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판결문 분석 결과 무인점포에서 발생한 범죄행위에 건조물침입 또는 야간건조물 침입죄가 성립된 경우는 26.7%에 그쳤다. 보고서는 "앞으로 무인점포 관련 사안에서도 건조물 침입여부에 적용되는 것이 필요해보인다"면서 "자유로운 출입이 허용된 무인 점포에서도 건조물 침입을 인정할 지에 대한 법리적 판단기준이 반드시 객관화 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