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김홍도의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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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낭만이다.
김홍도(1745~1806?)도 달을 주인공으로 그렸다.
풍속화나 신선도, 화조도, 아집도 등을 그리며 스토리텔링에 능한 김홍도였지만, 서양 풍경화처럼 그저 일상 속 덩그러니 나무 뒤로 뜬 달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달을 응시하는 남녀'(1824)에서 화면을 채운 숲속 달빛은 김홍도가 그린 그림을 넓게 펼친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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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달은 낭만이다. 초승달이나 그믐달은 감춤에 가담하고, 보름달은 풍요를 선사한다. 사랑의 상징이기도 하다.
신윤복이 그린 '월하정인(月下情人)'에서도 사랑을 나누는 남녀를 북돋우는 매개는 은은한 달빛이다.
김홍도(1745~1806?)도 달을 주인공으로 그렸다. 풍속화나 신선도, 화조도, 아집도 등을 그리며 스토리텔링에 능한 김홍도였지만, 서양 풍경화처럼 그저 일상 속 덩그러니 나무 뒤로 뜬 달을 그렸다. 1796년에 그린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다.
이 그림은 그가 연풍 현감에서 파직돼 서울로 돌아온 이후 제작한 '병진년 화첩(丙辰年 畵帖)'에 수록된 스무 작품 중 하나다.
조선의 산수화는 이상화된 관념 속 자연을 그리거나, 웅장한 명승지를 그리는 일이 보통이었다. '금강산 화첩'을 그린 정선이나 김홍도의 산수화도 그랬다.
하지만 이 그림은 예외다. 깊은 산 속 달밤에 느낀 서정의 극치다. 벼슬 생활의 고됨과 파직된 아픔을 달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을까?
달은 성근 나무 뒤로 쓸쓸하게 숨어 있다. 더할 수 없이 환한 보름달이지만,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땅과 나무를 비추는 달빛은 외로운 화가의 자화상으로 읽힌다.
김홍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서당', '씨름', '무동' 등이 교과서와 광고 등에 끊임없이 사용되면서 그를 단지 풍속화에 능했던 화가라고 안다. 풍속화는 그의 작품 세계 일부에 불과하다.
많은 그의 그림 중 '소림명월도'에 대해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만큼 덜 언급되고, 덜 알려진 작품이다.
비슷한 시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며 달밤 풍경을 뛰어나게 묘사한 독일 화가가 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달을 응시하는 남녀'(1824)에서 화면을 채운 숲속 달빛은 김홍도가 그린 그림을 넓게 펼친 듯한 인상을 준다.
프리드리히 작품 대부분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 드리우고 있다. 또 숭고한 자연을 바라보는 뒷모습 사람이 함께 있다. '관조(觀照)'다. 관조란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일'이다.
김홍도의 '소림명월도'는 관찰하거나 응시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그림이 아니다. 그림에 그 어떤 이도 없는, 눈앞 그대로의 자연이다. 그림 밖 화가와 달과 나무가 합쳐진 정적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로 추정한다. 김홍도와 달은 마침내 하나가 됐다.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다.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간다'는 의미다.
연꽃 위에 앉아 보름달을 마주한 뒷모습 승려는 프리드리히가 그린 뒷모습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뉘앙스다. 서방정토는 현실에서 죽음이다.
'소림명월도'에서 본 보름달이 그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며 껴안고 있다. 더는 숨은 달이 아니다. 김홍도는 초월했다.
김홍도에겐 모든 게 있었다. 천재적인 재능, 임금의 사랑, 사람들의 평판, 모든 분야를 관통한 그림 세계.
그에겐 딱 하나가 없었다. 죽음이다. 죽은 사연과 죽은 해(年)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초라한 죽음이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 일부를 읽는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소림명월도'와 '염불서승도'를 보며 쓸쓸하게 사라진 김홍도를 추억한다. 시를 이렇게 바꿔본다.
<아프고 외로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벼슬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눈길 앞에 선/내 얼굴같이 생긴 달이여>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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