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가 말한 ‘대담한 현상 변경’은 평양 연락사무소?
북·일 관계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 북한은 북·일 수교와 100억 달러 전후 수교배상금이 목표다. 그러나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의 생환을 요구한다. 북한은 더 이상 돌려보낼 사람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납치 피해자라고 한 17명 중 북한이 인정하는 것은 13명뿐이다. 이 중 5명은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때 돌려보냈다. 나머지 8명은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북한 입장에서 납치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 양측 입장이 팽팽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지 오래됐다. 그런데도 시시때때로 접촉한다.
일본이야 아직 생존자가 남아 있다고 믿어서 그렇다지만 북한은 왜 일본을 만나려 할까. 국내외 시각은, 일본을 흔들어 한·미·일 3각 협력을 교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정말 그게 다일까?
최근의 북·일 접촉은 일본 기시다 총리의 유엔 연설에서 비롯했다. 2022년 9월20일 유엔총회 일반 토의 연설에서 그는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라고 선언했다. 약 7개월이 지난 2023년 5월27일 도쿄에서 열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 대집회’에서 좀 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납치 문제는 한시도 느슨하게 대할 수 없는 인권 문제다. (북·일) 정상회담을 조기 실현하기 위해 북한 측과 총리 직속의 고위급 관료 간 협의를 진행하고 싶다”라고 말한 것이다. 총리가 납치 문제를 직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5월27일은 토요일이었다. 이틀 후인 월요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5월29일 박상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통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힌 것이다. 역대 일본 정부의 접촉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북한이 처음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을 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 재가가 불가능한 주말을 끼고 신속하게 답변이 나왔다는 점에서 북·일 간 사전 조율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북·일 접촉에 대해서는 2023년 7월3일 〈동아일보〉 기사와 9월29일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7월3일자 〈동아일보〉는 복수의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과 일본이 “최근(6월) 두 차례 이상 물밑 접촉에 나섰다. 양측 실무진이 중국과 싱가포르 등에서 만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이 접촉은 기시다 총리 제안과 박상길 부상의 화답에 이은 실무 접촉으로, “일본인 납북자 문제, 고위급회담 개최 등을 놓고 직접 만나 입장 조율에 나섰으나 주요 사안들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회담에 대한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고위급 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라고 부연했다.
일본 언론 중에서는 〈아사히신문〉이 뒤늦게 북·일 접촉의 일단을 보도했다. 지난해 9월29일자 1면 머리기사로 “일본 정부 관계자가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조선노동당 관계자와 비밀 접촉을 했다”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 무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향한 환경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올가을께 평양에 정부 고위 당국자를 파견하는 문제를 한때 검토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아사히신문〉은 두 차례 협상 모두 한 도시에서 이뤄졌다면서도 이 도시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소규모 비공식 모임에서 양국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 교환이 진행됐다”라고 썼다.
두 보도는 북·일 접촉의 시기와 장소에 대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3월과 5월 두 차례 동남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조선노동당 관계자가 참여한 소규모 비공식 모임이라고 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지난해 6월에 중국과 싱가포르에서 양측 실무자들이 참석해 여러 차례 실무 접촉을 했다고 전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인가. 두 매체는 각각 서로 다른 회담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지난해 3월과 5월 노동당 관계자가 포함된 소규모 회의는 말 그대로 실무회담에 앞선 예비회담일 가능성이 있다. 예비회담은 첫 번째 접촉이므로 결정 권한을 갖춘 노동당 관계자가 나올 필요가 있다. 포괄적 토론을 거쳐 실무회담 일정을 정하는 게 목적이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6월 중 실무회담’의 스케줄이 여기서 잡혔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토요일 제안과 박상길 부상의 월요일 화답은 그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노동자 재파견 둘러싼 북·중 밀당
이 같은 일정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회담 전후 북한에 이보다 훨씬 중요한 협상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활이 걸린 북·중 협상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북·일 접촉을 그 전후에 배치해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 것이다.
지난해 1월 북·중 국경 지역은 국경 개방의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2022년 8월10일 북한이 코로나19 종식을 공식 선언하면서 2023년에는 국경통제가 완화되고 외국인 관광이 재개될 거라는 소문이 났다. 1월부터 베이징의 ‘고려투어’는 4월로 예상되는 ‘평양 마라톤’ 여행상품 판매에 들어갔다. 국경 개방은 신의주-단둥 간 화물트럭 운행과 북중·북러 간 육상 수송 재개를 뜻한다.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해 북한에 국경 개방을 촉구해왔고 ‘중국인 북한 관광’을 대가로 제시했다. 관광은 유엔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북한에도 외화벌이 수단이 돼 중국이 생색내기 좋은 분야다.
그러나 난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2017~2019년 중국 지린성이나 랴오닝성의 식당과 공장 등에 취업했다가 코로나19 국경 봉쇄로 귀환하지 못한 약 10만명에 이르는 북한 노동자 귀환 문제였다. 중국 정부는 해외 체류 기간이 이미 5~7년을 경과한 이들을 국경 개방과 함께 북한에 돌려보내겠다는 방침이었다. 반면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대체인력 수용에는 난색을 보였다. 북한 노동력 수입은 유엔 안보리 제재 사항이라 부담스러워한 것이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3년 북한의 대외관계 평가와 2024년 전망’ 참조).
북한으로서는 노동자 재파견 약속 없는 국경 개방과 중국인 관광은 결과적으로 손해였다. 관광 수입이 노동자 월급보다 많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노동자 재파견을 넘어 유엔 안보리 제재 이후 중단된 북·중 무역 정상화를 요구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관광 수입이든 노동자 파견 임금이든 북한 정부로서는 푼돈에 불과하다. 코로나 봉쇄로 폐쇄된 국내 시장을 살리려면 북·중 교역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 바로 이 교역 정상화가 당시 북·중 협상의 숨겨진 쟁점이었다는 것이다.
북·중 간 협상은 지난해 3월27일 왕야쥔 주북한 중국 대사의 평양 부임을 계기로 4월과 5월에 집중됐다. 북한이 일본 측과 예비회담을 3월과 5월에 집중배치한 이유다. 외곽 때리기로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다. 그러나 중국 측도 만만치 않았다. 파견 노동자 협상과 관련해 북한은 “대규모로 귀환할 경우 다수 중국 기업의 파산과 동북 3성 경제 악화로 이어질 것이므로, 현재와 유사한 규모로 재파견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반면 중국은 “‘책임 대국’으로서 유엔 제재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하므로 동일한 규모 재파견은 보장해줄 수 없다. 우선 접경지역 노동자를 귀환시키고 추후 상황에 따라 재논의하자”라고 버텼다. 노동자 재파견부터 난항이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교역 정상화는 언감생심이었다.
최선희 외무상 기용부터 시작된 ‘빌드업’
협상이 실패로 끝나자 북한은 국경통제를 소폭 완화하는 수준에서 국경 개방과 중국인 관광도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국경통제 해제로 국제사회에 생색을 내고자 한 중국 의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러고는 6월에 중국과 싱가포르에서 ‘기시다 총리 직할 고위 관료의 평양 파견 문제’를 두고 일본 측과 실무회담을 벌였다. 북·중 국경을 막는 대신 청진·원산을 통해 일본과 문호를 열 수도 있다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꽤 오랜 기간 ‘빌드업’ 과정을 거친 셈이었다. 그 출발은 2022년 6월11일 최선희 외무상 임명부터다. 최선희의 외무상 임명은 하노이 회담 이후 유지한 중국 의존형 생존전략에서 벗어나겠다는 신호였다. 중국만 쳐다보지 않고 외교를 다변화하겠다는 것이다. 2022년 6~7월께로 계획했던 7차 핵실험을 중국이 미국과 일련의 회담 끝에 무산시킨 일이 그 계기였다. 쌓여온 불만이 폭발했다.
첫 번째로 택한 대상은 러시아였다. 그해 2월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7월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2022년 7월26일 러시아 대표단을 환영하는 연회에서 북한 강순남 국방상은 ‘협조와 연대를 더욱 긴밀히 해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북·러관계는 안보협력 위주였다. 러시아는 북한산 포탄이 필요했다. 그 대가로 북한이 무엇을 받았는지는 2022년 12월15일의 갑작스러운 고체연료 엔진 시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났다. 이듬해인 지난해 4월13일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8호의 1차 고각 발사 시험, 7월12일 2차 발사 시험을 통해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외교안보연구소의 이상숙 박사는 연구소가 발행한 주요 국제문제 분석자료에서 “1980년대 북·러 간 안보협력이 강화된 상황에서 중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경제협력을 확대시킨 사례가 있다”라며 “중국으로서는 북한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경제협력 확대를 선택할 것으로 분석된다”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왕야쥔 대사의 평양 부임을 서두르고 중국인 관광이라는 나름의 선물을 준비해 국경 개방 협상에 나서게 된 데에는 이 시기 북한의 행보를 심상치 않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6월11일의 최선희 외무상의 임명을 가장 반긴 것은 미국이었다. 이틀 후인 6월13일 워싱턴에서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과 만난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모든 이견을 외교와 대화로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다”라며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 시점에 미국은 대중국 신냉전 체제 구축을 진두지휘해야 할 처지였다. 따라서 이즈음 기시다 총리의 유엔 연설은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고자 하는 미국 국무부의 오랜 구상을 대리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지난해 6월 북·중 협상이 소득 없이 끝난 직후에도 예외 없이 북·러 군사 관계가 진전됐다. 7월27일 전승절 행사에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방북했고, 9월13일 보스토치니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열려 군사위성 분야에서 러시아의 협조가 공언됐다. 그러자 마치 공식처럼 북·중 관계가 다시 움직였다. 지난해 9월에 정성일 북한 국가관광총국장이 왕야쥔 대사와 면담하면서 “(2024년)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양국 관광 교류협력이 새롭고 큰 발전을 이루고 양국 관계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믿는다”라고 언급했다. 북·중 관광 교류가 2024년에 재개될 것임을 밝힌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 간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는 올해 4월15일 태양절을 계기로 지난해 시도했던 국경 개방과 관광 협력, 노동자 재파견뿐 아니라 무역관계 정상화를 둘러싼 또 한 차례 격돌이 예상된다.
북·중 간 어려운 협상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북·일 간 한층 업그레이드된 접촉 재개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1월5일 김정은 위원장이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에 대해 기시다 총리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면서 ‘일본국 총리’ 대신 ‘기시다 후미오 각하’라는 존칭을 써서 우호적 환경 조성에 나섰다. 그러자 2월9일 기시다 총리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작금의 북·일 관계 현상에 비춰봐 대담하게 현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움직여 정상끼리 관계를 구축한다”라고 답한 것이다.
‘대담한 현상 변경’이라는 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이례적으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나섰다. 2월15일 담화에서 “일본이 우리의 정당방위권에 대해 부당하게 걸고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 관계 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기시다)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의 평양 방문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북·중 협상을 앞두고 북·일 관계 체급이 급상승하는 느낌이다. 중국에 대한 레버리지 효과란 측면에서 기시다 총리가 언급한 ‘대담한 현상 변경’이 실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뭘까. 지난해 9월의 〈아사히신문〉 보도에 묘한 구절이 있었다. “북한에 일본인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부정하지 않았지만 ‘납북 피해자’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북·일 관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일 간 공식회담에서 거론된 생존 납치 피해자가 한 사람(또는 두 사람)이 있고 비공식으로는 더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 북한이 이 사람에 대해 사망했다던 8명 중 하나라고 할지 아니면 추가로 발견됐다고 할지가 최대 관건이라는 얘기다. 최소 한두 명의 추가 생환이 이뤄지면 기시다 총리로서는 고이즈미 총리 이후 역대 정부가 못한 일을 해내는 셈이 된다. 총리 직속 고위급 인사의 평양 방문이 가능할 뿐 아니라 추가 조사 명분으로 평양에 일본 연락사무소 설치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일본 외무성은 그동안 납치 조사를 명분으로 평양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겠다는 복안을 가져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와 협의가 최대 변수이지만 일본은 올해 미국 대선과 일본 선거 일정을 고려해 늦어도 7월 안에 이 수준까지 밀어붙이려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를 북·일 수교를 위한 전 단계로 포장하며 대중국 협상에 최대한 활용하려 할 듯하다.
남문희 편집위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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