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아이의 43번째 백패킹…실패, 재도전, 별이 쏟아졌다 [ESC]
지난 1월27일 세종시 집을 나선 지 두시간, 호남고속도로를 내달리다 백양사 나들목으로 진출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드문드문 눈꽃이 피어 있는 이곳은 전북 고창군 양고살재. 오후 2시께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를 조심스럽게 오르다 갓길에 길게 줄지어 늘어선 차량 행렬을 마주했다. 주차장이 벌써 가득 찬 걸까. 마음 졸이며 두리번거리다가 운이 좋게 빈자리를 찾는다. 어느새 눈을 뜬 건지, 잠든 줄 알았던 7살 아들은 “도착이다!”라며 기지개를 켠다.
며칠 전 내린 폭설에 여기저기 흰 눈이 가득하지만, 햇빛이 닿은 도로 일부는 녹은 눈과 흙이 뒤섞여 질퍽했다. “아빠, 우리 아이젠 차고 출발해야 해?” 아들이 묻는다. ‘7살 어린이가 무슨 아이젠을 찾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아이는 어엿한 3년 차 백패커. 오늘은 아빠와 함께하는 43번째 백패킹이다. 적잖게 미끄러운 등산로가 예상되지만, 우선 아이젠의 도움 없이 걸어보기로 했다. 몸집만 한 배낭을 둘러메고 들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산은 내가 고른 거다!”
오늘의 목적지는 방장산 억새봉(636m). 방장산자연휴양림에서 오르는 더 쉬운 길도 있지만, 우리는 양고살재에서 시작하는 길을 고집했다. 사실 아들과 함께 이 길을 걷는 건 두번째다. 지난겨울 호기롭게 올랐다가 내 실수로 억새봉 정상까지 약 500m 앞둔 지점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되돌아 내려온 기억이 있다. 그날도 역시나 눈이 많이 내린 직후였는데, 깜빡하고 스패츠(등산화 안으로 눈비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장비)를 챙겨 오지 않은 탓에 발목 위까지 발이 빠지는 눈길에서 등산화 안으로 눈이 밀려 들어와 아들의 두발이 꽁꽁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42번의 여정 중 유일한 실패로 기억되었던 방장산이 어린 아들의 마음 한편에 남았던 걸까. “다가오는 주말엔 어디로 가볼까?”라는 나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방장산 다시 가보자”는 아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아들의 발걸음은 힘이 넘쳤다.
양고살재에서 출발하는 등산로 초입은 상당히 가파르다. 마치 스키장의 최상급 슬로프를 거슬러 오르는 듯한 높은 경사에 아빠와 아들은 차츰 말수가 줄어들었다. 주차장을 벗어난 지 20분 남짓 되었을까. 차가운 산바람과 따듯한 햇살이 동시에 우리를 에워쌌다. 방장사 앞을 지날 무렵엔 잠시 재킷의 지퍼를 내리고 모자를 벗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혔다.
“대나무 길은 언제 나오지?” 가파른 오르막길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는 아들의 물음이었다. 조금만 더 오르면 대나무 숲이 나올 거고, 그 뒤로는 상대적으로 오르기 쉬운 돌계단과 능선길이 우리를 기다릴 거라 답하며 아들이 건네준 이온음료를 한모금 들이켰다. 얼마 후, 우리는 등산 안내도의 좌측으로 곧게 뻗은 설원의 숲길을 마주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 지금부턴 완만한 능선이다. 몇차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갈미봉과 벽오봉을 지나자, 저 멀리 탁 트인 하늘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억새봉이다. “우와! 아빠도 얼른 올라와 봐! 아주 멋져!” 단숨에 언덕을 내달려 오른 아들이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네 배낭은 4㎏에 불과하지만, 아빠 등짐은 20㎏이 넘어’라는 말을 삼키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아들 옆에 다가섰다.
“아빠, 내가 방장산에 오자고 하길 잘했지? 오늘 산은 내가 고른 거다!” 멋진 풍광을 선물 받은 기쁨의 표현인 걸까. 한가득 미소를 머금은 아들을 보니 힘듦은 온데간데없고 내 기분까지 맑아졌다. 해넘이까진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더라도 방심은 금물, 매서운 칼바람에 자칫 체온이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다. 배낭을 내려놓고 헤비다운점퍼(보온성·방풍성이 좋은 점퍼)를 덧입었다. 언덕 한편에 쌓인 깊은 눈밭을 이리저리 밟으며 겨울 끝자락의 억새봉을 탐닉하던 중 시선이 닿은 곳은 아이의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방등산가비(方等山歌碑). ‘방등산가’는 통일신라 말에 지어진 백제 후예들의 노래라고 전해진다. 비록 그 가사나 음률은 남아있지 않으나 당시의 고단한 삶을 살던 백성들의 사연을 담아 세워진 노래비라는 설명과 더불어, 과거 방장산은 높고 험해서 절반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로 ‘반등산’ 또는 방장산의 옛 이름 ‘방등산’이란 이름으로 불렸다는 설화를 찾아 아들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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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온갖 상념 내려놓고
억새봉의 지형지물을 둘러보던 사이 어느덧 해 질 녘이 되었다. 빠르게 텐트를 치고, 눈 덮인 억새봉 가장자리에 서서 일몰을 만끽했다. 웬일인지 오늘은 휴대전화를 꼭 챙겨가고 싶다던 아들은 타오르는 붉은 노을이 하늘을 가득 메우는 순간을 신중하게 동영상으로 담았다. “아들, 영상은 왜 찍는 거야?”라는 나의 물음에 꼿꼿이 세운 집게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소리가 들어가니 조용히 해줘’라는 시늉을 한다 . 녹화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보내는 문자메시지를 본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올라온 건 집에 있는 엄마와 어린 동생에게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공유해주고 싶었던 마음이란 걸.
텐트 안으로 들어와 준비해 온 먹거리로 가볍게 저녁을 해결하고 보드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엎치락뒤치락 긴 승부 끝에 아들은 승리의 쾌재를 불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텐트의 지퍼를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어느새 반짝이는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별이 보고 싶다는 아들의 성화에 밖으로 나온 우리는 반짝이는 별빛과 어우러진 고창 시내의 야경에 심취했다.
“와, 예쁘다! 아빠, 아까는 일몰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저 멀리 반짝거리는 도시가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아.”
“그러게, 야경이 참 멋있네. 텐트 밖으로 나와 보기를 참 잘했다. 네 덕이야, 고마워 아들.”
휴대전화로 야경 사진을 찍어보려 했지만, 선명한 사진을 포착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는 사이 낮은 기온에 장갑 낀 손끝의 감각이 둔해졌다. 텐트 안으로 돌아와 침낭을 덮으며 찾아온 포근함에 우린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텐트 안 기온은 영하 2도. 하지만 핫팩을 품은 침낭에 몸을 맡긴 이 순간은 따듯한 온돌방 부럽지 않다. 두런두런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눈을 감은 아빠와 아들은 내일의 일출을 기약했다. 스마트폰과 온갖 상념을 내려놓고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 바로 내가 아이와 함께 자연을 찾는 이유다.
글∙사진 박준형 작가
평일에는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가며 밥벌이를,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과 섬을 누비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연으로 한 걸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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