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암컷, 내년엔 수컷? 동물의 '이유 있는' 성전환
올해는 남자, 내년엔 여자, 또 내후년엔 다시 남자. 매년 성별이 바뀐다면 어떨까요. 대만 난완만의 산호들이 매년 성별을 바꾼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났습니다. 사실 생물에게 성별이란 그다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산호 외에도 물고기, 조개 등이 다양한 이유로 성별을 바꿔요. 동물의 성전환 그 치열하고 신비한 생존전략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해머산호(Fimbriaphyllia ancora)는 동글동글한 촉수가 인상적인 경산호(뼈대가 있는 산호)의 일종입니다. 알록달록한 색과 매력적인 형태로 수족관에서도 사랑받죠. 그런데 이 산호에게 우리가 그간 알지 못하던 면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2023년 12월 27일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발표됐습니다. (doi: 10.1101/2023.12.27.573442)
신야 시키나 대만국립해양대 해양환경 및 생태학연구소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2011년 2월 대만 난완만의 해머산호 군락지를 조사하다 깜짝 놀랄 만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11개군락 중 9개 군락의 산호들이 1년 사이 성별을 바꿨던 겁니다. 산호가 성별을 바꾼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성별을 바꾸는 산호로는 버섯산호가 이미 학계에 잘 알려져 있었어요.
문제는 성전환의 빈도였습니다. 연구팀은 해머산호가 성별을 바꾸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장기간의 관찰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관찰 결과 해머산호 군락지의 산호들이 매해 성별을 바꾸는 경향성이 포착됐습니다. 8년간 난완만의 해머산호 군락 26개 중 73.1%인 19개가 매년 성별을 바꿨던 겁니다. 나머지 26.9%는 같은 성별을 계속 유지했죠. 연구팀은 논문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한 해머산호와 같이 매해 성별을 바꾸는 생물은 밝혀진 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변화, 성전환
재미있는 점은 해머산호 군락지에서 성별을 바꾸는 군락과 성별을 바꾸지 않는 군락이 공존한다는 부분입니다. 성별을 바꾸는 군락과 바꾸지 않는 군락은 서로 불과 1~10m 떨어져 있습니다. 두 종류의 군락 사이에는 환경적 차이도 없고 외관상 차이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똑같은 이들 중 73.1%는 매년 성별을 바꾸는 걸까요.
진화의 관점에서 종의 특성이 변화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변했더니 그 종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해머산호 군락 일부가 매년 성별을 바꾸는 이유도 같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한 곳에 고정돼 사는 산호는 짝짓기 상대를 직접 찾아갈 수 없다. 이 단점은 주변에 매년 성별을 바꾸는 군락이 있으면 해소된다. 옆에 매년 성별을 바꾸는 군락이 있다면, 성별이 고정된 군락은 적어도 2년에 한 번은 번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산호의 번식은 매년 한 번 수컷과 암컷이 각각 생식세포를 방출하면서 이뤄집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방출된 생식세포가 바닷물에서 수정하는 식이에요. 만약 주변의 산호가 모두 암컷뿐이거나 수컷뿐이라면 비극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 일대의 산호들은 평생 자손을 생산하지 못할 테니까요. 산호 군락의 성전환은 이 비극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성별을 바꾸는 생물은 산호 말고도 많습니다. 특히나 성전환이 흔한 건 물고기입니다. 2020년 일본 주쿄대 과학 자유전공학부 연구팀이 발표한 리뷰 논문에 따르면 현재까지 462종의 물고기가 성별을 바꾸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우리가 흔히 '니모 물고기'라 부르는 흰동가리나 혹돔, 블루헤드 놀래기 등이 여기 포함돼 있습니다. (doi: 10.1007/s10228-020-00754-6)
물고기의 성전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분자 단위에서 살펴봅시다. 2019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는 블루헤드놀래기가 성별을 바꿀 때 체내에서 이뤄지는 변화를 연구한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에리카 토드 뉴질랜드 오타고대 해부학과 연구원과 미국, 호주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함께 진행한 연구입니다. (doi: 10.1126/sciadv.aaw7006)
블루헤드놀래기는 카리브해의 산호초에서 무리 지어 사는 물고기입니다. 블루헤드놀래기의 사회는 대장 수컷 한 마리와 나머지 암컷 물고기 여러 마리로 구성됩니다. 대장 수컷이 천적에게 잡아먹히면 가장 큰 암컷이 재빨리 수컷으로 성별을 바꿉니다. 수 분 만에 행동이 바뀌기 시작하고 색은 수 시간 만에 바뀌기 시작하며 난소는 10일 만에 정소로 바뀝니다.
연구팀은 플로리다 연안의 블루헤드놀래기 집단의 대장 수컷들을 포획했습니다. 그리고 성별을 전환하는 암컷을 잡아 뇌와 생식샘(정자나 난자 등 생식세포를 키우는 조직), 그리고 유전자의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대장 수컷이 사라졌다는 것을 인식한 암컷 물고기에게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 코르티솔이 분비됐습니다.
코르티솔은 암컷 물고기의 온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뇌에선 대장 수컷처럼 지배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호르몬 이소톡신이 분비되게 하고 생식샘에서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막았습니다. 또 암컷의 난소를 유지하는 유전자는 작동하지 않도록 막는 한편 수컷의 정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작용하도록 유도했습니다.
● 자연선택의 굴레에선 살아남은 자가 '자연스럽다'
과학자들은 이제 성별을 '떡 주무르듯(?) 변화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기며 '성적 가소성'이라는 개념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쥐의 경우 암컷의 형질을 발현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제거할 경우 다 자란 성체의 난소가 정소로 바뀝니다. 반대로 수컷의 형질을 발현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제거할 경우 정소의 세포들이 난소의 세포로 바뀌는 모습도 관찰됐습니다. 이 밖에 호주의 턱수염도마뱀은 다 자란 수컷이 32C 이상의 기온에 노출되자 암컷처럼 알을 낳았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럼, 왜 모든 동물이 성전환을 하진 않는 걸까요.
자연 상태에서 성별을 바꾸는 생물에는 산호, 물고기, 굴, 새우 등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성별을 바꾸는 종은 대부분 물, 특히나 바다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성전환을 하는 어류 중에서 78%가 바다에서만 서식하고 15%가 민물에서만 서식한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이유가 민물고기가 성별을 바꾸기 더 어렵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민물고기의 경우 알의 크기가 더 커서 암컷과 수컷 사이의 해부학적 차이도 크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쥐나 인간처럼 지상에서 사는 포유류들은 물고기나 산호처럼 체외 수정할 수 없습니다. 암컷 포유류의 체내에는 수정과 착상 그리고 발생이 안전하게 이뤄질 자궁이 발달했고 이것이 성별을 바꾸는 과정을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동물에게 성전환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전략입니다. 성별을 바꾸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 이걸 감안해 상황에 따라 성별을 바꿀지 아니면 버틸지 구분하는 것입니다. 성전환이 비교적 쉬운 어류는 성별을 바꾸고 그렇지 않은 포유류는 다른 방법을 찾는 식입니다.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산호는 식물로 분류됐습니다. 지상의 나무처럼 생겼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다가 18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당시 최신 기술이 집약된 기계 '현미경'으로 산호를 관찰해 산호가 식물이 아닌 동물이란 사실을 밝혔습니다.
허셜이 살아가던 18세기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과학의 발전 덕에 인간이 보고 겪는 세계가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산호가 사실은 동물이었다는 발견처럼 생각보다 성전환하는 동물이 많다는 발견이 현재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놓는 것처럼 말이죠. 또 어떤 발견이 우리를 놀라게 할까요. 알고 있던 세계가 깨진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깨진 틈새로 더 넓은 세계가 드러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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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leci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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