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약체 고교 야구팀의 ‘하극상’···결과 아닌 ‘과정’의 드라마[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일본의 ‘고시엔’(전국 고교 야구선수권대회)은 전국 3600개 고교 야구부가 우승기를 놓고 경쟁하는 일본 최대 고교야구 대회입니다. 16만명의 남자 고교생들이 머리를 1㎝ 길이로 바싹 깎고 그해 여름만을 바라보며 구슬땀을 흘립니다. 고시엔 구장을 밟기만 해도 큰 영광입니다. 49개 고교만이 본선에 진출하기 때문입니다. 패배한 고교는 고시엔 구장의 흙을 담아가는 전통이 있습니다. 소년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킨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여전히 일본에서 고시엔은 청춘의 상징입니다.
왓챠에서 볼 수 있는 일본 TBS 드라마 <하극상 야구 소년>도 고시엔 출전을 노리는 에츠잔 고교 야구부의 이야기입니다. 특이하게도 제목 그대로 시골 고교 최약팀이 강호들을 물리치고 고시엔에 진출하는 ‘하극상’을 일으킨다는 결말을 전제하고 시작합니다. 아예 회차가 끝날 때마다 ‘일본 최고의 하극상을 일으키기 ○일 전’이라는 문구를 보여줍니다. 마치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극상 야구 소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드라마에 집중합니다. 에츠잔 고교 사회교사 나구모 슈지(스즈키 료헤이)는 야구에 진심인 가정교사 야마즈미 카나코(쿠로키 하루)의 부탁으로 야구부 고문 자리를 떠맡습니다. 나구모 선생은 과거 야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부상을 당해 그만두고 뒤늦게 교사가 된 인물입니다. 야구 명문 중학교 출신이자 지역 유지의 손자 이누즈카 쇼우(나카자와 모토키) 같은 학생들을 만나 서서히 열정을 되찾습니다. 오합지졸이던 야구부도 함께 성장합니다.
드라마가 분위기 좋게 흘러가던 중, 갑자기 나구모 선생이 어두운 비밀을 고백합니다. 어차피 나중에는 고시엔에 진출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거 도대체 어떻게 풀어가려나’ 머리가 멍해질 정도였습니다. 나구모 선생뿐 아니라 야구부원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좌절을 겪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좌충우돌하며 스스로 좌절을 딛고 드라마를 만들어 갑니다. 나구모 선생 역의 스즈키 료헤이는 특유의 시원한 웃음이 멋진 배우입니다. 담백하게 연기하지만 경기 장면에선 소년처럼 벅찬 표정을 보여줍니다.
다만 <하극상 야구 소년>은 학생들의 헌신적인 열정을 위화감이 들 정도로 순수하게 묘사합니다. 3학년 주장 히오키 마코토(스고 아라키)는 학교와 친구들의 무관심에도 1학년 때부터 홀로 묵묵히 야구를 계속해왔습니다. 간절하게 노력했지만 히오키가 졸업할 때까지 에츠잔 고교 야구부는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히오키는 자신의 야구가 끝났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보다 동생이 야구부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는 소식에 기뻐합니다.
당연하지만 고교 야구선수가 모두 프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졸업한 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고시엔을 향해 달리던 청춘의 추억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으로 간직한다고 합니다. <하극상 야구 소년>의 인물들도 그렇습니다. 고시엔의 꿈은 여름과 함께 끝났습니다. 누군가는 부질없고 허망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다했다면 정말 결과와 상관 없이 추억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구모 선생은 학교에서 열린 고시원 진출 기념식에서 힘줘 말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진다고 끝이 아니란 겁니다. 반드시 다음이 있습니다. 다음을 목표로 하는 한 우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하극상 야구 소년>은 2018년 제100회 고시엔에 진출한 하쿠산 고교 야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쿠산 고교는 10년 연속 현 대회 1회 경기에서 패했던 약소 야구부였습니다. 한때는 야구부원이 5명뿐이었지만 점점 실력을 키워 결국 고시엔에 진출했습니다. 이때 일본 언론은 ‘일본 제일의 하극상’이라고 대서특필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 “다음을 목표로 하는 한 우리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진짜라고 믿고 싶습니다.
감동 지수 ★★★★★ 결말을 알아도 심장은 쿵쿵
반성 지수 ★★★★ 나도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다했다면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이재명, 김혜경 선고 앞두고 “희생제물 된 아내, 죽고 싶을 만큼 미안”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단독]“일로 와!” 이주노동자 사적 체포한 극우단체···결국 재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