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덕에 늑대무리 물리친 삼성물산…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

박미리 기자, 안정준 기자 2024. 3. 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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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vs펀드연합 주총 안건 현황/그래픽=이지혜

주주들이 '지속가능한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한 삼성물산의 손을 들어줬다. 사업 경쟁력을 고려한 회사의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에 전폭적 지지를 보낸 것. 이에 따라 벌어들인 돈 이상을 환원하라는 행동주의 펀드 연합의 '울프팩(Wolf Pack, 늑대 무리)' 공세는 일단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하지만 숙제도 남았다. 펀드 연합의 추가 공세에 대비해야 하는 한편,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을 위한 투자를 통해 주주가치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

삼성물산은 지난 15일 서울 강동구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에서 정기 주총을 열고 지난해 배당 관련, 이사회가 올린 안을 의결권 있는 주식 77%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이에따라 보통주 1주당 2550원, 우선주 1주당 2600원의 현금배당 안이 확정됐다.

반면, 이사회 안과 함께 상정된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들의 제안 찬성률은 23%에 그쳐 부결됐다. 보통주 주당 4500원, 우선주 주당 4550원의 배당을 하라는 게 이들의 요구였다. 5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사들이라는 행동주의 펀드 연합의 제안도 18%의 찬성에 그쳐 부결됐다. 이에 따라 주주환원을 놓고 벌어진 삼성물산과 펀드 연합의 샅바싸움은 삼성물산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는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됐다. 지난해 12월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 캐피털이 삼성물산의 주가와 내재가치 간에 250억달러의 차이가 존재한다며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자 올해 2월 시티오브런던과 안다자산운용,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5개 펀드가 연합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 주주제안에 나섰다. 무리를 지어 사냥감을 공격하는 늑대처럼 기업을 공격하는 '울프팩'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펀드 연합의 요구안은 삼성물산의 중장기 주주환원 정책에 입각한 올해 환원안 규모를 아득히 넘어섰다. △1조원 이상에 해당하는 보통주 780만7563주, 우선주 15만9835주 소각△보통주 주당 2550원, 우선주 주당 2600원 배당이 삼성물산의 올해 주주 환원안이었다. 여기에 더해 5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사들이고, 배당 규모를 76% 가량 추가로 끌어올리라는게 펀드 연합의 요구안이었다.

재계에선 회사 미래 경쟁력을 감안하지 않은 과도한 주주제안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삼성물산도 이들의 제안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삼성물산은 "주주제안상의 총 주주환원 규모는 2023년 뿐만 아니라 2024년 삼성물산의 잉여현금흐름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라며 "이러한 규모의 현금 유출이 이뤄진다면 회사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펀드 연합의 제안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주총을 앞두고 7%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안건에 힘을 실으며 분위기는 삼성물산쪽으로 기울었다. 지난 14일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삼성물산 정기 주총 안건 중 이익배당 및 이익잉여금처분 계산서 승인의 건에 대해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하는 이사회안에 찬성했다. 반면 펀드연합의 자기주식 취득의 건은 취득 규모가 과다한 점 등을 고려하여 반대를 결정했다. 합산 지분율이 2%에 미치지 못한 펀드연합의 패색이 짙어졌다.

삼성물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 /사진=박미리 기자

하지만 전일 주총장에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삼성물산 특수관계인과 펀드 연합측 지분율 격차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도 전체 지분율 40% 수준인 소액주주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펀드 대리인으로 참석한 도현수 변호사(법무법인 린)는 "삼성물산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표적인 사례"라며 "전례없이 많은 주주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이는 삼성물산에 변화가 필요하단 얘기"라고 말했다. 펀드 연합 측은 이처럼 막판 세 집결에 나섰지만, 결국 이날 주총에서 주주들은 삼성물산의 안건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여전히 숙제는 남았다는게 재계와 금융권 분석이다. 펀드 연합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배당안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주주들은 주총 현장에서 삼성물산 주가에 대한 실망감도 토로했다. 주주 B씨는 "삼성물산 주식을 49년째 보유하고 있는데 제일모직과 합병 등을 거친 동안 주가 하락으로 1억8000만원을 손해봤다"고 말했다. 주주 C씨는 "최고기업 삼성물산이 합병이전 주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주주 D씨는 "관계사 수익만 가지고 배당을 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주주들의 전폭적 지지 이면엔 그동안의 주가에 대한 실망감도 있다는 증거다. 재계에선 삼성물산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신사업 투자 성과를 내 실제로 주주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송규종 삼성물산 부사장은 "회사 자본배분 정책의 최우선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주주가치 제고와 신규사업 투자 비롯한 일관성 있고 균형있는 정책"이라며 "제안주주 의견은 적절한 자본 배분으로 보기 어려우며 (주주 제안대로)신규 자사주 매입에 현금을 투입하기보다 친환경 에너지와 바이오 사업 등 포트폴리오 개선에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안정준 기자 7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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