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가득했던 이 동네 천지개벽하겠네”…서남권 대개조, 최대 수혜지는 ‘이곳’ [부동산 이기자]

이희수 기자(lee.heesoo@mk.co.kr) 2024. 3. 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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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기자-23]
준공업지역에 아파트 지어도
용적률 250%→400% 확대
당산·양평·문래동 정비사업 탄력
과거 공장·주거 분리해 지었지만
앞으로 다양한 시설 복합개발
금천 軍부대 땅, 첨단산업기지로
서울 서남권 준공업지역 면적 [사진출처=서울시]
서울에서 공장이 가장 많은 지역이 어딜까요. 바로 서남권입니다. 영등포·구로·금천·강서·양천·관악·동작 7개 자치구 얘기입니다. 서울에 있는 준공업지역 10곳 중 8곳 이상은 이곳에 자리합니다.

공장이 마구 생겨난 건 1960년대부터입니다. 서남권은 1970년대까지 제조업과 소비업 중심지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영등포에 밀가루·맥주 공장, 구로에 공업단지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어요.

1980년 7월 동양맥주 영등포공장 전경 [매경DB]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선 각종 규제의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해지자 정부가 공장을 옮겨버리는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겁니다. 나아가 수도권에 일정 면적 이상 공장을 못 짓게 하는 공장 총량제도 도입됐습니다.

1990년대 들어선 우리나라 산업 구조도 본격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제조업이 쇠퇴하며 공장이 몰려 있던 서남권 일대도 오랜 쇠락의 길을 걷게 됐죠. 지금은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꼽힙니다.

서남권 개발 가로막던 ‘준공업지역’ 규제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철공소 전경. [매경DB]
침체된 지역이지만 여태껏 개발이 쉽게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곳이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준공업지역은 도시 안에 공업지역을 뜻합니다. 애초에 공장 지대로 정해진 땅이라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많습니다. 다른 건물을 지으면 패널티를 주는 식입니다.

대표적인 게 아파트에 대한 용적률 제한입니다. 현재 준공업지역의 최대 용적률은 400%입니다. 하지만 아파트를 지으면 용적률을 250%만 허용합니다. 용적률은 쉽게 말해 공간 밀도인데요. 용적률이 높을수록 더 많은 공간을 쓸 수 있어 사업성이 좋습니다. 결국 아파트 대신 용적률 다 쓸 수 있는 공장을 지으란 취지였습니다.

산업시설과 주거시설을 분리해서 짓도록 엄격히 규제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엔 제조업이 중심이었으니 공장과 아파트를 섞이지 않게 한 겁니다. 시간이 지나 산업구조가 바뀌며 이런 규제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IT·지식·창조산업은 굴뚝 있는 공장을 필요로 하진 않으니까요. ‘준공업지역에서 해제해달라’는 요구가 곳곳에서 생겼습니다.

서울 서남권 현황 [사진출처=서울시]
그간 서울시는 해제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막기 위한 법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해제하고 나면 새로 공업지역을 지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가령 2000년대 들어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를 준공업지역으로 지정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합니다.
준공업지역 규제 완화···아파트도 용적률 400%로
그러나 최근 서울시 입장이 변했습니다. 서남권 개발을 막던 준공업지역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지난달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서남권 대개조’ 구상입니다. 낡은 공장지대를 미래 첨단산업에 적합한 공간, 주거·상업·문화·여가시설이 어우러지는 복합단지로 개발하겠단 얘깁니다.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다시 전통 제조업으로 돌아갈 확률이 극히 낮아졌다고 봤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공동주택 용적률 규제를 풀어준 겁니다. 앞으로 준공업지역에 아파트를 지어도 용적률을 400%까지 올릴 수 있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영등포구가 수혜를 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영등포·여의도 권역이 서울의 3대 업무지구인데다 교통 요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준공업지역이 넓게 있는 영등포구가 혜택을 받을 것”이라며 “영등포에 있는 정비사업장에는 상당한 희소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달 준공업지역의 공동주택 용적률 규제를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출처=서울시]
영등포구청에 따르면 당산·양평·문래동 일대는 대부분이 준공업지역입니다. 3개동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는 총 10곳입니다. △당산동 현대3차·한양·유원제일1·2차 △양평동 현대2차·신동아 △문래동 국화·남성·진주·문래공원한신 아파트가 그 대상입니다. 대부분이 15층 안팎의 중·고층 단지들입니다. 용적률이 250%로 제한된 상황에선 사업성이 좋지 못했죠. 하지만 이제 용적률 400%도 가능해진 만큼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됩니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양평·문래동 일대 재개발 사업지가 실질적인 최대 수혜지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최 센터장은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단독 필지들이 용적률을 많이 받게 되면 수익성이 가장 크게 개선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인근 대선제분 재개발, 지하철 2호선 문래역 주변 재개발, 지하철 5호선 양평역 근처 재개발 등이 꼽힙니다.

[사진출처=서울시]
서울시는 산업시설과 주거시설을 나눠서 짓도록 한 규제도 풀겠단 입장입니다. 산업·주거·문화시설을 한 건물에 다 넣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정보현 NH투자증권 Tax센터 부동산 수석연구원은 “준공업지역 공장 부지는 필지가 널찍하다”며 “이 모양을 보면 다른 땅에 대한 규제가 풀리는 것보다 더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준공업지역 해제도 가능···영등포역 주변 ‘상업지’ 될까
준공업지역을 유지하되 규제를 푸는 것뿐만 아닙니다. 준공업지역을 아예 해제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바꾸는 길도 열렸습니다. 필요하다면 준공업지역을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 산업·공간혁신구역으로 변경하는 것도 고민해보겠다는 겁니다.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일대 전경 [매경DB]
변화가 가장 유력한 곳은 영등포역 인근이 꼽힙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영등포역 앞에 가보면 도심이라기엔 상당히 낙후돼 있다”며 “그런 지역은 상업지역에 대한 변경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준공업지역 끝자락에 있어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은 준주거지역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금천구 공군 부대 부지는 ‘공간혁신구역’으로 지정합니다. 기존 용도지역과 용적률 규제에서 벗어난 구역으로 정하겠단 겁니다. 보다 자유롭게 도시를 개발하게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약 12만㎡ 규모인 이 땅이 도심형 부대와 주택, 첨단산업·스타트업 지원공간, 호텔 등이 포함된 복합단지로 변신할지 관심이 모입니다.

서울 금천구 공군부대 공간혁신구역 구상안 [사진출처=서울시]
마찬가지로 복합개발이 필요한 지역은 ‘산업혁신구역’으로 적극 지정할 계획입니다. 산업혁신구역도 기존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건축할 수 있는 게 장점입니다. 구로구 온수산업단지·구로기계공구상가·구로중앙유통단지 등에 대한 맞춤형 개발 계획도 세울 예정입니다. 아울러 강서구 김포공항 일대는 공항 산업 클러스터로, 관악구 낙성대 일대는 벤처 창업 단지로 각각 조성합니다.
롤모델은···런던 킹스크로스역 일대 도심 재개발
규제를 풀거나 해제하는 건 알겠는데 여전히 미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 일대 도심 재개발 사례를 참고하면 좋습니다. 서울시가 롤 모델로 언급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대영제국 시대인 1850년 건립된 킹스크로스역은 한때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물류·운송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제조업 쇠퇴 등으로 1970년대엔 마약과 매춘, 범죄가 난무하는 런던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전락했죠. 이 같은 암흑기는 2000년대 들어 런던광역시가 대규모 복합 개발을 추진하며 끝이 났습니다.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역 일대 업무지구에 들어선 세계적 기업 구글 사무실 전경. [매경DB]
2006년 약 30억 파운드(4조 2000억원)를 투입해 킹스크로스역 일대 27만㎡ 용지를 복합 개발하는 마스터플랜이 나왔고 이듬해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18년이 지난 지금 킹스크로스역 일대는 업무·주거·상업·문화·교육시설이 어우러진 활력 넘치는 도시로 변했습니다. 역사 북쪽에는 구글, 메타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오피스 건물이 즐비합니다.

1850년대 석탄창고였던 콜 드롭스 야드는 복합쇼핑몰로, 물품 하차장이었던 그래너리 빌딩은 대학 캠퍼스·창업시설로 각각 탈바꿈 했습니다. 콜 드롭스 야드는 세계적인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두 개의 지붕을 엿가락처럼 늘여 양측 처마 끝이 접점으로 만나는 일명 키스하는 지붕으로 설계해 관광 명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처마 끝 접점이 만나 일명 키스하는 지붕으로 불리는 콜 드롭스 야드 전경. [매경DB]
‘구상’만 나왔을 뿐···갈 길 먼 서남권 대개조
다만 킹스크로스역 일대 개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배후 주거시설과 업무지원시설을 짓는 공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면 서남권 대개조는 이제 ‘구상’ 정도만 나온 상황입니다. 첫 발을 내딛었다는 의의가 크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합니다.

정비사업이나 복합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고 인허가 절차를 넘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례 혹은 법을 바꾸거나 국토교통부와 논의해야 할 사항도 여럿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준공업지역 일대 [매경DB]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은 이에 “연말까지 기본계획을 세우고 2026년부터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겠단 건데, 실행 여부를 떠나 왜 총선 직전에 새삼 발표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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