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밖이 더 재밌는 ‘진짜 괌’ 여행 [ESC]
괌 관광객 57%가 한국인, 4시간 거리 ‘태교·효도 관광지’로 각광
‘리버 크루즈’로 야생 생태계 감상…차모로인 전통가옥·음식도 경험
열강 거쳐 간 역사적 상흔…스페인광장 등 식민지 유적 고스란히
에메랄드빛 바다를 끼고 있는 괌은 한국인이 찾는 여행지 중에 으뜸으로 꼽힌다. 비행시간(4시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태교 여행지’나 ‘효도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괌정부관광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괌 총입국자 수는 65만명을 넘었는데 이 중에 한국인은 37만명(57%)에 이른다. 괌 방문 1위 국가가 한국인 것이다. 고색창연한 유적지가 많지 않은 괌에서 한국인들은 그동안 호텔·리조트에서 스노클링 등 물놀이로 괌을 ‘여행’했다. 하지만 최근 여행 추세는 ‘특별한 체험’이다. 괌에 해양스포츠 말고 색다른 경험을 주는 여행 콘텐츠는 없을까. 미국령이지만 본토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괌. 지난해 말 다녀온 괌에서 체험한 원주민 차모로인의 문화와 역사 현장은 괌 여행의 새 얼굴이다.
식빵에 맛들인 땅게들
괌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오렌지색과 푸른색이 해 질 녘 하늘과 용솟음치는 파도를 표현한 작품이다. 차모로인 설화를 녹인 그림이다. 검은 머리와 아담한 키, 밤하늘만큼 까만 눈동자와 구릿빛 피부를 가진 차모로인은 4천년 전 동남아에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0여년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지만, 자신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고집해온 차모로인의 삶이 괌 곳곳에 남아 있다.
지난해 12월19일 오전(현지시각) 괌 남부에 있는 탈로포포강을 따라 정글 탐험 프로그램 ‘밸리 오브 더 라테 어드벤처 파크’에 참여했다. ‘밸리 오브 더 라테’ 지역은 괌 남부에 가장 인기 있는 친환경 여행지다. ‘리버 크루즈’나 카약, 패들보딩 등으로 50에이커에 이르는 강과 일대 지역을 여행하며 야생 생태계, 원주민의 삶을 경험하는 여행이다. 괌정부관광청 자료를 보면 이 여행 콘텐츠는 2016년 괌 ‘선택 관광 투어’ 최고상을 탔다.
배에 오르자 차모로인 선장 브라이언이 승객 30여명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파데이(hafa adai), 하파데이!” 차모로어로 “안녕하세요”란 뜻이다. 유럽인과 한국인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외쳤다. “하파데이! 하파데이!” 사방이 뚫린 배에 친선의 증표로 외친 소리가 습한 바람을 타고 퍼졌다. 선장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국인 투어 매니저 이강돈씨는 배가 황토색 강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자 설명에 나섰다. “저것은 이팝나무고, 이것은 코코넛 달리는 코코야자예요. 5월은 망고 철인데 길거리에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죠.” 10여분 달리자 선장이 강가에 배를 세웠다. 이씨가 식빵을 잘라 툭 던지니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땅속에서 손가락 몇 마디 크기의 게들이 튀어나왔다. 일명 ‘땅게’(land crab)로 불리는 ‘게카르치니과’였다. 주로 늪지나 맹그로브숲에서 서식한다. 아이들도 이씨가 준 식빵을 강가에 던졌다. 휘리릭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땅게들은 식빵을 낚아채 작은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은 환호했다. “‘코코넛크랩’(야자집게)도 살아요. 야행성이라 지금은 못 봐요.” 코코넛을 집게다리로 파먹는 게라니, 듣기만 해도 신기하다. 이씨가 말을 이었다. “이곳 정글 깊숙한 곳에 2차 세계대전 말미 일본군이 탈영해 숨었는데, 전쟁이 끝났는지 모르고 살았답니다. 전쟁 끝나고 2년 뒤 필리핀 육군이 발견했는데 처음에는 짐승인 줄 알았다고 해요.” 여행객들이 묻는다. “그래서요? 어찌 되었어요?” “저야 모르죠!” 웃음이 배에 퍼졌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지만 정글을 가르는 배 위에서는 뭐든 그럴싸하다.
“호텔에만 있다 나오니 너무 좋아”
40여분이 흘렀을까, 이강돈씨가 하선을 명령했다. 유럽 축구장처럼 잘 다듬어진 땅을 밟았다. ‘라테스톤 하우스’ 지역이다. 차모로인의 주거문화를 살피고, 그들의 주식을 맛보는 체험이 준비돼 있다. 종이 두장을 맞세운 듯한 시옷(ㅅ) 모양의 지붕이 보였다. 지붕은 8개의 돌에 의지해 서 있었다. 돌 모양새가 신기하다. 약 2m 높이의 돌기둥 ‘할리기’ 위에 둥근 형태의 돌 ‘타사’가 올라가 있다. 언뜻 보면 우리네 절구 같다. 괌 중부에 있는 ‘라테스톤 기념공원’에서도 이 가옥을 볼 수 있다.
가옥 주변에는 밀림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수천년 전 고대 왕국에 도착한 듯 매료되고 만다. 이씨가 땅에 떨어진 붉은 꽃을 귀에 꽂으라고 했다. 여성들만 하란다. 영문도 모른 채 꽃을 꽂은 여성들은 이내 박장대소했다. “오른쪽에 꽂은 분들은 싱글이시네요. 왼쪽 귀에 꽂은 분들은 유부녀시고요. 양쪽에 다 꽂은 분은 처음 보네요.” 차모로인들의 고대 관습이라고 한다. “그 옛날 꽃 두개 꽂는 여성 차모로인은 없었을 텐데요, 싱글 됐다가 유부녀 됐다가. ‘능력자’시네요.”(웃음)
드디어 차모로 음식 시식이 시작됐다. 브라이언이 코코넛 열매로 즙을 내 줬다. 줄기로 모자도 만들었다. 날렵한 솜씨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브라이언과 이씨가 펼치는 코코넛 열매 불쇼도 투어의 묘미였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변덕스러운 정글 날씨다. 빗소리에 여행객들은 상념에 잠긴다. 찰나의 침묵이 대지를 점령할 때쯤 차모로식 바비큐 요리가 나왔다. 향신료 아나토(아치오테) 즙으로 붉은색을 입힌 밥이 곁들여졌다. 일명 ‘레드 라이스’다. 사슴과 돼지 사육장이 있는 마을로 가서 ‘소 타고 한 바퀴 돌기’까지 하고 나자 여행객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6박7일 일정으로 괌을 찾은 정혜경(43)씨는 “호텔에만 있다가 이렇게 나와 체험하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투몬 지역 공연장 ‘샌드캐슬 극장’에서 하는 ‘카레라 쇼’도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북미·유럽·사이판·사모아 등 여러 나라에서 모인 100여명이 펼치는 신비롭고 유쾌한 멀티미디어 공연이다. 여행객들은 배우들과 손바닥을 맞대거나 무대로 나가는 등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미디어아트, 불 댄스, 공중 곡예, 노래 등까지 곁들어져 환상의 오감 체험 쇼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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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가진 미국령
괌은 미국령이지만 태평양을 의미하는 파란색 바탕에 1948년 제정된 문장이 그려진 국기가 따로 있다. 문장은 차모로인의 용맹함과 민첩성을 상징한다. 전체 인구의 37% 이상이 차모로인인 괌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크고 작은 19개 마을로 구성된 괌은 스페인 통치, 미국과 일본의 점령 등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는 나라다. 여행객이 즐비한 투몬과 타무닝 지역보다는 수도 하갓냐(아가냐)와 인근 지역에 그 흔적이 많다.
하갓냐에는 괌 대표 역사 여행지 ‘스페인광장’이 있다. 포르투갈 출신 스페인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이 처음 발견한 괌은 300여년간 스페인의 통치 지역이었다. 그 역사가 스페인광장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현재는 스페인 총독 아내가 손님을 접대한 ‘초콜릿하우스’ 등 일부 건물만 남아 있다. 초콜릿하우스는 ‘서머하우스’라고도 했는데, 미국이 괌을 접수한 뒤에는 미국 주지사 아내가 ‘애프터눈 티’를 제공하는 사교 장소로 활용됐다. 석회 모르타르로 만든 벽과 짙은 오렌지색 지붕 등은 전형적인 스페인풍이다. 그 위로 울창한 나무 그늘이 넓게 드리워져 있었다. 고맙고 반가운 존재인 그늘. 차모로인들의 신념이나 정신 같아 보였다. 종국엔 억압했던 스페인의 상징물을 자신들이 ‘점령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광장 옆에는 아가냐대성당이 있다. 괌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무너졌지만, 1959년 재건됐다. 차모로인의 85%가 가톨릭 신자이니, 이 성당이야말로 차모로인들의 영혼의 안식처다. 평일 성당 정문은 닫혀 있는데, 뒤쪽에 있는 성물 판매소로 들어가면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있다. 하갓냐에서 차로 7~10분 가면 전망대 ‘라테 오브 프리덤’에 도착한다. 차모로인 주거 형태를 상징하는 라테스톤 모양이다. 주변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포가 있다.
괌 남쪽에 있는 우마탁 마을은 마젤란이 1521년 3월6일 상륙한 곳이다. 마을 들머리에는 상륙 기념비가 있다. 스페인 식민지 시기 유물이 곳곳에 있는 마을은 한때 괌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었다. 동물·씨앗·금속 등 여러 물자를 실어 나르는 항구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우마탁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솔레다드 요새도 역사 여행지로 제격이다. 1800년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요새는 스페인이나 유럽 범선 등을 살피는 용도로 쓰였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군이 요새로 사용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 H. 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괌의 지금을 여행하는 데 ‘과거의 이야기’만큼 요긴한 정보는 없다.
한국인 직원 50명…편안한 시간
‘롯데호텔 괌’ 10년
괌 여행객이 주로 묵는 호텔과 리조트는 섬의 북쪽 투몬비치에 몰려 있다. 50개가 넘는다. 그중에서 ‘롯데호텔 괌’은 한국인이 선호하는 곳이다. 한국 기업 소유 호텔로는 롯데호텔 괌이 유일하다. 대부분 일본계나 미국계 호텔이 투몬비치에 포진해 있다.
롯데호텔 괌이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한국인 직원이 50명에 이를 정도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 전체 호텔 직원의 25%라고 한다. ‘외국이지만 한국처럼’ 편안한 이용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영어 사용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맞춤하다. ‘효도 관광’을 목적으로 괌을 찾으려는 이들이 이 호텔을 우선순위로 두는 이유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뭘까. 역시 ‘입맛’이다. 현지식이 입맛에 안 맞으면 설렜던 여행도 우울해진다. 그런 점에서 뷔페식당 ‘라세느’는 장점이 많은 곳이다. 최영 총지배인은 다양한 한식 메뉴를 구비하기 위해 롯데호텔 서울 한식당 무궁화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승엽 요리사를 ‘모셔’왔다. 그를 중심으로 메뉴 재편에 들어간 라세느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전남 완도산 전복을 급랭해 매일 항공편으로 공수하기로 한 것. 이 요리사는 “각종 전복 요리 맛을 현지인들도 신기해하며 즐긴다”고 말했다.
잡채, 제육볶음, 김치찌개, 각종 두부 요리 등 한식도 혀를 사로잡지만, 괌 전통식인 ‘어린 돼지 바비큐’도 별미다. 이승엽 요리사가 차모로인 요리사와 함께 연구해 한국인 입맛에 맞으면서 괌 특유의 풍미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고급 식재료 랍스터 음식도 구비돼 있다. 가짓수가 80개가 넘는다. 이제 라세느는 현지인도 예약을 서두를 정도로 ‘괌 맛집’으로 통한다. 가격은 1인당 59달러(약 7만원대)다. 숙박 손님에게는 10% 할인 가격이 제공된다. 59개월 미만 유아는 무료다. ‘풀사이드 선셋 바비큐’는 호텔이 자랑하는 메뉴. 지는 해를 보며 잘 익은 각종 해산물을 먹는 재미는 일종의 별미다. 1인당 가격은 55달러(약 7만원대). 세심한 먹거리 서비스가 두번째 인기 요인이다.
지난해 태풍 마와르가 괌을 강타했을 때 롯데호텔 괌의 특별 서비스도 화제가 됐다. 한국인 여행객 수천명의 발이 묶인 상황에서 호텔은 일주일간 숙박비를 40% 할인했고 아침저녁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다.
1972년 문 연 오쿠라 괌 리조트를 인수해 2014년에 연 롯데호텔 괌은 올해로 10돌을 맞았다. 220객실을 보유한 호텔은 18층으로 타워링(150실)과 아일랜드윙(70실)으로 나뉜다. 테라스에선 투몬비치의 아침과 저녁 풍광을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 이른 아침 호텔 앞 투몬비치로 나서면 명상 수련도 가능할 정도로 고요하다. 고운 모래를 밟으며 거니는 연인이나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흔하게 본다. 파도를 타고 다가오는 바닷바람에 일상의 팍팍함이 사라진다.
괌/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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