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판다와 동물 외교

2024. 3. 1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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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선물 낙타 굶겨 죽여
日, 코끼리·원숭이 조선에 바쳐
지난 3월3일 에버랜드는 판다 푸바오(福寶)를 보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4월 초에 푸바오가 정든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갈 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푸바오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푸바오는 ‘행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뜻으로, 2020년 7월20일에 한국 최초로 자연번식으로 태어났다. 암컷이며, 자이언트판다 종이다. 아빠는 ‘즐거움을 주는 보물’ 러바오(樂寶), 엄마는 ‘사랑스러운 보물’ 아이바오(愛寶)이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판다 1쌍을 한국에 선물할 것을 약속했고, 2016년 3월3일에 에버랜드로 오게 되었다. 한중 우호의 상징이 된 아이바오와 러바오는 2020년 마침내 푸바오를 출산했고, 푸바오는 에버랜드의 마스코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푸바오가 한국과 이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중국은 세계의 모든 판다를 자국 소유로 하고 해외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푸바오 또한 한국 출생이지만 소유권이 있는 중국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푸바오는 4월3일 쓰촨성에 있는 자이언트판다 보전연구센터로 반환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성 성숙기 이전에 돌아가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판다처럼 역사 속에서도 동물이 외교사절로 주요하게 활용된 사례들이 있다. 942년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고려 태조 왕건에게 사신 30명과 함께 낙타 50마리를 선물로 보냈다. 고려와 우호적인 외교를 맺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왕건은 요나라의 사신들을 모조리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선물로 보내온 낙타 50마리를 개경 만부교 밑에 묶어서 굶겨 죽였다. 왕건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여겼고, 거란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낙타의 죽음으로 보인 것이다. 만부교 밑에서 굶어 죽은 낙타 사건으로 양국의 긴장은 고조되었고, 이후 거란의 고려 침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태종실록’ 1411년의 기록에는 태종 때 코끼리가 일본에서 건너온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일본 국왕 원의지(源義持)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斗)씩을 소비하였다.”고 하여, 일본에서 조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코끼리를 바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에 처음으로 들어온 코끼리는 엄청난 식사량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에 코끼리를 구경하러 온 사람 두 명이 밟혀서 죽는 사고까지 일어났다. 결국 코끼리는 사람을 밟아 죽게 했다는 죄로 전라도의 섬에 보내졌다. 그러나 코끼리에 대한 동정론이 일어났고, 다시 서울로 옮겨진 상황이 실록의 기록에 보인다.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順天府) 장도(獐島)에 방목하는데, 수초(水草)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하니, 왕이 듣고서 불쌍히 여겼던 까닭에 육지에 내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고 하고 있다. 이후에는 코끼리에 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에서 조선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원숭이를 바친 사실도 실록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태조실록’에는 “일본국 구주(九州) 절도사의 사자가 우리나라에서 보낸 중 범명과 함께 와서 원숭이를 바치니, 사복시에 두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태종실록’에는 “원숭이를 각진(各鎭)에 나누어 주었다. 이보다 앞서 일본국 사람들이 잇달아 원숭이를 바치므로, 명하여 사복시에 기르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복시는 조선시대 말을 먹이는 관청으로 코끼리나 원숭이를 이곳에서 기르게 하였으니, 오늘날 동물원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사복시는 원래 정도전(鄭道傳)의 집이었는데, 태종 때 이 집을 몰수하여 사복시로 만들었고, 현재 이곳에는 종로구청이 있다.

우리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판다와의 안타까운 이별을 앞두고 역사 속 동물 외교의 사례들을 소개해 보았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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